엄마 추억 탕

백 년 식당 추어탕만큼이나 맛난 엄마표 추어탕

by 아는이모

몇 년 전, 엄마와의 통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참고로 엄마는 원하는 대답을 정해놓고 모른 척 묻는 게 특기다.


“엄마, 이번 주말에 갈까?”

“코로나(또는 독감)도 유행인데 신경 쓰여. 그냥 오지 마.”

“그런가? 그럼 담에 갈게.”

(다음 날)

“이번 주 주말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해서 집에서 쉬려고 했지.”

“넌, 오지 말란다고 진짜 안 오니?”

“알았어, 오후 늦게 가서 저녁 먹고 오지 뭐.”

“애들이랑 자고 가지, 왜.”


콧물이 줄줄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집을 들어서면, 엄마는 그렇게 보고 싶다던 손주 얼굴도 볼 겨를 없이 싱크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물에 젖은 휴지처럼 소파에 축 달라붙은 나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찬찬히 감상한다. 온몸의 스위치가 내려가는 느낌을 반기며, 아늑함과 편안함을 선사하는 친정 소파에서 기절한 듯 잠을 청한다.


압력밥솥이 돌아가는 소리에 잠이 깨 눈을 떠보면, 엄마는 여전히 주방을 떠나지도 앞치마를 벗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어슬렁어슬렁 싱크대 앞으로 향하면 뜨거운 국자를 후후 불며 간을 보라고 한다.

‘크흐- 맛있다. 국물이 깔끔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요리의 탄생과정을 전한다.


아빠와 함께 재래시장 생미꾸라지와 단 배추를 사 왔다고. 그리고 파닥파닥 튀어 오르는 미꾸라지를 소금으로 기절시켜 물에 빡빡 씻어 압력솥에 푹 삶았다고. 삶은 미꾸라지를 체에 걸러 형체를 없애고 단 배추, 간장, 된장을 넣고 푹 끓였다고. 잔인한 조리과정 대비 맛은 경이롭기 그지없는 엄마표 추어탕을 난 사랑 한다.

삼계탕 말고 ‘탕’이란 글자가 들어간 음식을 즐기지 않던 내가 추어탕을 먹게 된 건 스물여덟, 첫째 아이를 가졌을 무렵이다. 입덧이 심해 기운이 없던 난, 남편 손에 이끌려 이름 모를 허름한 식당에 들어왔다. 봄동 배추가 곳곳에 전시된 식당은 백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맛집이었다. 남편은 뱃속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딱 한 숟갈만 먹어보라고 사정을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그릇을 앞에 두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다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뭔가 모를 믿음이 생겨 숟가락을 들었다. 웬걸 흐물흐물한 배추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니 메슥 거리던 속이 잠잠해졌다. 임신한 이후 처음으로 밥 한 공기를 비웠다.




시간이 흐른 뒤, 두 아들을 데리고 골목 안 그 추어탕 집을 찾았다. 국물에 만 밥을 야무지게 씹어먹는 어린이를 보며 손님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녀석들 추어탕도 먹을 줄 알고 대단한데?”


태아 시절부터 먹어본 익숙한 음식이라 그런지, 아니면 어른이 된 듯한 기분에 취해 그런 건지는 몰라도 두 아이는 나란히 추어탕 두 그릇을 해치웠다. 그 이후로 아이들도 나도, 몸이 으스스하거나 입맛이 없을 때마다 추어탕을 찾았다.


추어탕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엄마 귀에 흘러 들어갔고, 엄마는 명절이든 생일이든 아무 날이든 내가 간다고 하면 추어탕을 끓여줬다. 그때마다 철없는 말을 내뱉으며 커다란 스텐용기에 추어탕을 옮겨 담았다.


“엄마는 친정이 없어서 어떡해. 엄마 고생시키는 거 같아서 자주는 못 오겠다. 담엔 진짜로 시켜 먹자. 이제 추어탕 좀 그만 끓여.”


개념 없는 여자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딸이란 이유로 칠순을 앞둔 노인을 부려먹으면서도, 맘에 없는 말을 하며 체면을 차리려 하니 말이다. 가까스로 가져온 엄마표 추어탕은 일주일 내내 식탁을 책임지는 일등공신이다. 흐물대는 배추와 담백하고 걸쭉한 국물이 속을 데우면 목젖 가득 기운이 펄펄 솟아난다.

숟가락 가득 국물을 삼킬 때마다 엄마의 뒷모습을 추억한다.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 영원토록 나의 친정이 되어주기를. 작고 고운 나의 엄마가 철딱서니 없는 환갑의 딸과 함께 백 살 가득 채워 살아주기를.



*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wiseegg88/22325532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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