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선물, 소고기 찌게

열 살 남자에게 받은 뜨거운 사랑 고백

by 아는이모


궁금한 게 많은 둘째는 자신이 제일 세상에서 귀여운 줄 안다. 불리할 땐 어디서 배웠는지 혀 짧은 소리를 낼 줄도 안다. (엄마를 닮지 않았다.) 토실한 두 볼과 어울리는 하얀 솜털이 아직도 고스란히 얼굴에 박혀있다.


"엄마, 오늘 간식 뭐야?"

"오늘 저녁은?"

"혹시 고기야?"

"간식 하나만 더 먹으면 안 돼?"

"오늘은 귤 10개만 먹고 안 먹을게."


늘 무엇을 먹을지가 궁금하고 먹는 양 때문에 나와 실랑이를 한다. 10킬로 귤 한 박스를 사두면 3일을 채 못 넘긴다. 손톱 밑이 노래질 때까지 까먹고, 귤 똥을 싸기라도 하면 화장실에서 실시간 중계를 한다. 그런 건 굳이 얘기 안 해도 된다고 정색하면 씨익 웃고만다.


<국거리 9900원> 할인 행사를 놓치지 않으려 부리나케 식육점을 다녀왔다. 둘째가 좋아하는 소찌게를 끓일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오자마자 무와 호박, 버섯, 두부를 썰고 마늘을 다졌다. 무랑 소고기를 함께 볶은 후 고춧가루를 찰찰 뿌렸더니 중화요릿집 냄새가 났다.


"엄마, 혹시 오늘 저녁 소찌게야?"

"응, 고기 많이 넣어서 해줄게."

"앗싸, 그 꼬들꼬들한 고기도 넣어서 해주는 거지?"

"응?... 그건 못 사 왔는데."


녀석이 말하는 꼬들꼬들한 고기는 소 뼈에 붙어있는 기름과 살을 삐져낸, 상품성은 떨어지나 비교적 맛은 훌륭한 부위를 말한다. 모양이 별로라, 기름이 많아서, 잘 안 팔려서 등의 이유로 식육점 냉동고 속에 쿡 박혀 있는 고기. 쉽게 손이 안가던 그 고기를 단골 식육점에서 서비스로 받아 맛 본 이후 종종 찌개로 끓여주곤 했다.


아무리 꼬들고기를 좋아한다지만, 한 팩에 3천 원인 고기를 먹이는 내 맘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뭔가 미안했다. 언젠가 살코기를 듬뿍 넣어 끓여줘야지 벼르다 실천에 옮긴 날, 돌아온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난, 그 고기가 좋은데, 그게 씹혀야 구수한데. 힝."

"엄마가 나중에 사서 또 끓여 줄게. 오늘은 그냥 이걸로 먹자. 대신 살코기 많이 넣었어."

"엄마, 여기 국물에 된장 넣었지?"

"어?! 어떻게 알았어?"

"국물 색이 다르잖아, 맛도 다르고."


질겅질겅 고기를 씹는 입모양이 내가 바라던 움직임이 아니었다. 쩝쩝- 호로록- 냠냠- 입모양이 다채로워야 하는데 영 시원찮다. 둘째가 원한 소찌게는 일주일 뒤 꼬들고기 두 팩을 사 온 날에야 끓일 수있었다.


살코기 반 꼬들 고기 반을 넣어 된장을 풀지 않고 액젓으로만 간을 했다. 새송이 대신 양송이를 넣고 물컹해지는 호박은 있는 듯 없는 듯할 정도로만 넣었다. 듬뿍 넣은 무가 투명하게 익어갈 때 쯤 국물 위 빨간 기름 거품을 걷어냈다. 소기름을 먹이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 보려고. 둘째의 뱃살이 한겹 더 접힐 까봐.


소찌게를 한 솥 끓여놓고 저녁약속이 있어 나가는 데 둘째와 마주쳤다. 멀리서 걸어오는 실루엣이 딱 그 녀석이다. 칼바람을 뚫고 학원을 오가며 떨었을 걸 생각하니 절로 몸이 먼저 나갔다. 뛰어가서 꼭 안았다.


"엄마가 소찌게 끓여놨어. 꼬들고기 듬뿍 넣어서."

"정말? 와- 엄마... 사랑해."

"응? 뭐라고."

"엄마, 사랑해. 사랑해."


녀석은 한 동안 내 품에 안겨 두 볼을 비벼댔다. 길바닥에서 나의 심장을 무참히 폭격한 후 "이제 갈게. 엄마 잘 갔다 와." 하곤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열 살 남자에게 이렇게 심장을 빼앗겨도 되는가. 소찌게가 그렇게 위대한 음식이었던가.


남자는 여자의 고맙다는 말에, 여자는 남자의 사랑한다는 말에 모든 걸 내어놓는다 했다. 열 살 남자에게 받은사랑 고백의 여운은 언제쯤 식으려나. 앗! 뜨거워!


PS. 아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말해줘서 고마워. 엄마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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