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이모 Feb 08. 2024

작가는 바쁘지 않나요?

사실은 기다리느라 바쁜 거예요.

'작가'란 타이틀이 붙고 나서 주변인들이 나에게 안부를 물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요즘 바쁘지?"

"너 바쁜 거 같아서..."

"바쁜 건 좀 끝났니?"


단연코 난 바쁘다는 이유로 약속을 미루거나 거절하지 않았다. 먼저 안부를 묻거나 약속을 잡는 성향이 아닐 뿐. 다시 말해 약속이 잡히길 기다리는 쪽에 더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불쑥 만나자는 연락이 줄었다. 서운한 건 아닌데 가끔은 외로웠다. 오래되고 편해서 익숙해져 버린 인연만 티끌만큼 남았다.


 '왜 작가는 바빠 보일까?'  '언제부터 난 바쁜 사람이 되었나?'를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안고 사는 몹쓸 감정들 때문이었다.


- 읽고 쓰지 않은 날의 불안

- 아무것도 못 쓴 날의 자책

- 쓰고 고치는 날의 고통

- 투고 후 기다리는 날의 초조 등


읽고 쓰지 않은 날이 지속되면 힘겹게 일궈낸 것들이 한순간에 증발 돼버리는 느낌이다. 마치 수십 년 간 44 사이즈를 유지하던 슈퍼모델이 66 사이즈가 돼버렸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달까.

 

그렇다고 읽고 쓰는 날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난 왜 이런 글을 못 쓸까?'란 자기 비난과 부러움에 수시로 빠져 버리니까. 얼굴이 저리고 손목이 찌릿할 정도로 원고를 고칠 때면, 신이시여- 내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건가요! 라고 외치다가도 투고 후 출판사의 회신을 기다릴 땐 고통의 시간들이 그립다.


몇 달에 걸쳐 쓴 원고가 폴더 속 화석이 되었다 휴지통으로 옮겨지기는 건 또 다른 고통이기에. 차라리 익숙한 고통이 낫겠다며 출간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자는 회신을 바라고 또 바란다.


겉으론 그럴듯해 보이는 '작가'란 사람의 속은 이처럼 얄팍하기 그지없다.  (어디까지나 나와 같은 초보작가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니 오해 없길...)


바쁘지 않은데도 바쁜 척. 고상하지 않은데도 고상한 척. 나를 위해 또는 출간하기 위해 글을 썼음에도 타인을 위해 썼다고 둘러댈 때 수시로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두렵다. 감추고 있던 나의 얕음을 들켜버릴 것만 같아서.


불안, 자책, 초조, 고통이 뒤엉켜 마음만 바쁜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게 일이다. '내가 쓴 글이 별로 인가? 2주가 지났는데 왜 출판사 회신이 안 오지? 이걸 접고 다른 주제로 써봐야 하나? 공모전에 다시 넣어볼까? 그럼 기다리는 시간이 또 길어지는데......'


이런 생각을 외면하는 수단으로 만만한 게 유튜브다. 유튜브 세상에서 4시간은 40분처럼 흐른다. 한 곳을 4시간 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원고를 쓰고 고칠 때만큼이나 어깨가 뭉치고 허리가 뻐근하다. 소파에 일어나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티브이 앞을 지키느라 허리를 내준 나를 용납할 수 없어서. '어차피 아플 몸이라면 읽고 쓰느라 아픈 게 나은데...'라는 해봤자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오는 후회를 어김없이 또 해 버린다.


동화를 쓸 때도 에세이를 쓸 때도 몸은 바쁘지 않다. 단지 안 해도 될 것들을 하느라 마음에 틈이 없을 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주위에 글 쓰는 친구가 있으면 '요즘 바쁘지?'라고 안부를 묻는 것보다 '냉큼 나와! 맛있는 커피집 알아놨어.'라며 불쑥 불러내도 된다는 얘기다.


배려한답시고 둘러둘러 뜸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럴수록 작가란 사람은 몸보다 마음이 바쁘게 움직이니까. '어제도 못 써서 오늘은 써보려고 했는데, 하필 오늘 연락이 온 거지? 나가도 될까?'란 생각이 스멀스멀 발목을 잡아버리니까.


맛있는 커피를 친구에게 먹였다면 한 가지만 더 해보자,  바로 박완서 선생님처럼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는 거다.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네게 말하고 싶어.




쓰지 않고 그냥 살아온 시간도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분명 그 친구는 개운한 마음으로 휘몰아치게 원고를 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 힘이 돼준 친구 **에게 감사를 전합니다>라며 당신을 언급하게 될지도.


'우리가 이런 사이였나?'를 의심할지라도 믿으면 된다.

그 순간, 그때, 그 말이 진짜 힘이 됐던 건 맞으니까.




+ 항시 연락을 기다린단 말.

+ 항시 커피가 마렵다는 말.

+ 항시 듣고 싶은 말.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의 말을 떠올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