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직당하고 싶다. 집구석에서
남편의 회식자리가 눈에 띄게 줄었던 요즘.
오랜만에 한잔한다고 한다. 나도 아는 그 형님과.
회사 고객으로 만났지만 크리스 마스 선물로 닌텐도를 건네는 특별한 관계가 된 형님. 알고티비 유튜브 애청자이기도 하고 나의 인스타 인친이다. 그 형님은 금수저다. 우리가 부러워 하는 백 억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점이라곤 국밥을 좋아하는 소박한 취향과 두 아들을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다.
모 대기업의 연구원인 그는 시외로 출퇴근을 한다. 출퇴근을 하면서 남편과 모닝콜을 주고 받는 사이다.
남자들도 술이 아닌 수다를 좋아하는 동물이었다.
그에 대해 익히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로열 계급의 고충을. 더 많이 가지면 더 빠른 속도로 자산을 불려야 하는 것이 그들의 세상에서 룰이었다. 남보다 빠른 속도로 불리지 못하면 남보다 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결핍을 그들도 느낄 수 밖에 없다.
있는 세상이나 없는 세상, 두 곳다 결핍은 있었다.
더 많이 가졌으면 더 많이 나눠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가족 모두가 자본주의 세상에 낙오되지 않는 것이 남은 생의 목표라고 했다. 가족이 풍요롭지 못하고 안정되있지 않으면 그에게 항상 무언가를 바라고 있을테니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 '부담'에서 언젠가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백 억대의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누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소고기 특수부위를 먹고, 장인이 만드는 초밥을 우리보다 조금 더 자주 먹을 뿐.
리조트나 풀빌라에서 우리보다 더 자주 묶을 뿐.
그가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감은 그의 자산에 비례하진 못했다.
그런 그가 이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한다고 한다. 남편이 바라던 그 꿈을 먼저 이루려고 한다.
현재 그는 자신의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 회사 분위기가 몇 년전 부터 안 좋은 것을 알고 준비했던 모양이다. 아시다피 요즘 세상에 건물 한 채 있다고 남은 여생을 공으로 보낼 순 없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 취미가 있다면 모를까. 그 취미가 돈이 되면 그만한 것이 또 없겠지만.
남편이 농담으로 이야기 한다.
- '형님 옥탑방에서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나도 그리로 출근하면 안 될까?'
농담에서 진심을 느껴졌다. 그래서 나의 진심도 말해줬다.
- '내가 전화 받고 사무 볼 게. 감시할 사람 한 명은 있어야지 안 되겠어?'
놀고 먹지 않겠지만 일단 발하나 넣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번듯한 건물주가 될 형님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또한 이해되기에 선뜻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 없었다. 20년 가까이 몸담은 직장에서 '당신은 이용가치가 없어졌어, 이만 나가줘도 되겠어.' 라는 통보를 받게 되면 어떨까. 차이는 사람보다 차는 사람의 마음이 더 편한 것처럼. 애증의 대상이 나와의 연을 먼저 끊자고 한다면 복잡미묘할 것이다.
그동안의 의리와 피땀눈물. 그걸 버틴 댓가가 고작 이거냐며 분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실적과 연구성과를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아랫사람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되고 윗사람의 눈치도 안봐도 된다.
생체리듬에 따라 출근과 퇴근시간을 정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내가 정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투자처에 대해 고민할 시간도 충분하다.
회사를 위해 제공했던 노동력을 '나'를 위해 일단 쓰면 된다.
먼 미래를 앞서 걱정하기 보다 그간의 사회생활을 버텨냈던 내공으로 '나'를 돌보다 보면 분명 길은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세상 부러울 것 같은 사람들도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산다.
세상 부러웠던 형님의 고민을 전해들을 때 마다 내가 가진 좁은 생각들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의 새로운 시작을 몰래 응원해 보려한다. 내가 두 번째 스무살을 준비하고 있듯 그에게도 두 번째 사회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사회초년생 보다는 유리한 조건임은 분명하다. 방황도 일탈도 어느정도 해봤을 터이니 몇 템포 쉬고 직진할 일만 남았다. 그러니 당당하게 박수받으며 두번째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으면 한다.
남들의 부러운 시선에 압도되어 정작 자신의 고민과 걱정을 널어놓을 곳이 없었던 형님에게 남편을 자주 빌려줘야 겠다. (옥탑방 월세를 저렴히 해 달라는 조건으로)
그러면서 나 또한 몇 번째가 될지 모를 또다른 사회생활을 기획해 본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