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원자
-강원국-
독기품고 달려들고 싶었지만 태생부터 나약한 영혼인 나는 몇 번이나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평소의 습성대로 나의 '구원자'를 찾아다녔다. 나의 구원자는 항상 집 밖에 있었다. 가족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나에게 도움을 줄 것 같은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려는 습성이 있다.
나의 본능적인 습성 덕분인지 붙임성 있는 싹싹한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미처 검은 속내를 내보이지 못한채.
작가란 꿈을 한번도 꿔 본적이 없던 내가 문득 책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는 글쓰기 강의를 찾아다녔다. 우연히 본 유트브 영상 속 글쓰기 선생님은 작가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다음 문장으로 말했다.
책 출간을 위해 필요한 글의 스킬이나 투고하는 팁. 그리고 출판사와의 미팅에서 기죽지 않는 법. 뭐 이런 내용을 기대했건만 그분은 뜨거운 심장과 따뜻한 태도와 눈빛을 연달아 남발했다. 혹시나 싶어 다른 영상도 몰아보기를 했지만 핵심 메세지는 동일했다.
하... 이거 전부인건가. 정말? 이게 다야?
김빠지는 채로 나는 무료특강을 찾아 다녔다. 오디오클립도 찾아듣고, 글쓰기 책도 읽으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할 수 있는건 다 해봤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던 찰나 쪽집개 강사처럼 나의 글을 첨삭해 줄 수 있다는 분을 만나 3개월 동안 첨삭도 받아봤다. 극한체험이었다. 그만큼 도움되었다는 얘기다.
자신의 일기장을 매번 검사받는 일. 첫째의 일기장을 지우개로 문질러 지우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감히 아들의 글을 지울 군번이 되지 않았다. 나의 글에는 사족이 흘러넘쳤다. 작가처럼 보이고 싶어 꾸며낸 말들이 독처럼 퍼져 있었다. 써도써도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좌절하길 수백 번. 그렇게 3개월을 극한체험을 견뎌내니 드라마틱하게 책이 한권 뚝딱 나오긴 했다. 매의 눈으로 산으로 들로 가는 글의 방향을 잡아준 나의 첫 글선생님이다.
그렇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나였음에도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그 다음 책을 쓸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또 떠돌게 되었다. 나의 '구원자'를 찾아서. 그새 뜨거운 심장이 반응하고 있었던 거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그 '글'을 엮어 한 권의 '책'을 또한번 세상에 내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그녀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지는 사실 가물가물하다. 정말 우연히 듣게 되었고 마침 그녀도 그 강의가 생애 첫 강의라고 했다. 목에 사레가 걸려서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또박또박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쓰는 재능은 타고난 거라고 시크하게 말하는 그녀가 있어보였다.
'앗, 혹시 나의 구원자?'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그녀의 스토커가 되기로 했다. 그녀의 블로그 글을 읽기 시작했고 그녀가 쓴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했다.
누군가를 궁금해 한다. 닮고 싶어한다. 그렇다. 덕질은 삶을 더 의욕적으로 살게 한다.
두번, 세번 그녀를 만나면서 그녀 또한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상하다. 있어보이고 당차보이는 그녀가 나에게 그러한 신호를 보낸다니. 짧은 기간 동안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그녀의 주파수가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나 또한 느꼈다.
삶의 처절함을 도려내 담담히 써낸 작가들의 글을 보며 위로 받던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위로받고 있다.
그래서 일까, 내가 받은 것 만큼 나도 주고싶었다. 내가 간직한 감정과 흘러왔던 시간들을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도 내가 느꼈던 그 무언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적인 생각은 역시나 지속력이 짧았다. 나의 손가락에서 나온 한 문장이 그들의 삶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돌이 나에게 던져지는건 아닐까.
쓸까, 말까. 쓸 수 있을까, 쓸 수 없을까. 써도 될까, 쓰지 말까 를 원점으로 돌아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그렇다.
감정과 표현의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믿고 일단 쓰면 된다.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구원자'가 될 수 있게 한다.
두 번째 글 선생님, 나를 구원자로 만든 그녀를 지금 만나러 가는 길이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