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 필요한 순간
눈을 뜨자 마자 아이를 깨우면서 시작되는 아침 일상.
수저와 물통을 챙기고 밥솥을 열어 밥의 양을 확인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아이가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꺼내놓고 나도 얼른 ‘세수’란 걸 해본다.
스킨과 로션을 바르면서 아이가 식탁에서 눈을 뜨고 밥 숟갈을 뜨고 밥을 먹는 지 확인을 한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도 옷을 입기 시작한다. 준비물은 없는지 오늘의 스케쥴을 어떠한지 서로 이야기하고는 첫째가 먼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둘째가 영어책 2권을 오디오 북으로 듣는 동안 나도 아침을 먹는다. 둘째의 배변활동이 시작되면 나는 양치를 하며 옷을 입고 노트북과 읽을 책을 가방에 넣는다. 함께 현관을 나서며 나의 하루도 시작된다.
‘오늘은 어디까지 데려다 줄거야.?’
혼자가고 싶은 마음과 혼자 가기 싫은 마음이 공존하는 이 녀석의 마음을 난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 데려다 줄까? 오늘은 치킨집 까지?’
학교 정문까지 꼭 데려다 달라던 녀석은 요즘에 엄마의 시간을 위해서 용기를 내고 있다.
‘아니야, 엄마 빨리 가야 하니까, 오늘은 커피집 까지.’
커피집 앞에서 손을 흔들며 둘째를 보낸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구간이라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꽤 오랫동안 본 후에야 등을 돌린다.
작은 아이가 더 작아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걸음마가 느려 걱정했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 사이로 총총 뛰어가는 녀석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는 새롭게 생산되는‘걱정’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뉴스를 들으며 파워워킹을 해본다. 뉴스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계절을 잘 버무려놓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늘 지나던 주유소 앞에서 나는 두유 라떼를 주문한다. 스마트 오더, 서로 불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직원 앞에서 ‘뭐 마시지?’ 내적 갈등을 내보이지 않아도 된다. 이상하게 그들의 앞에만 서면 늘 먹던 음료 말고 다른 음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스마트 오더로 3분을 아낀 나의 스마트함에 으슥해하며 ‘OO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준비됐습니다.’
목소리가 들리면 커피를 받아 3층 창가자리에 가방을 내려 놓는다.
오늘은 무엇부터 할까?
사실 얼마전 부터, 일이 엉킨 채 들어와 하나씩 실마리를 풀고 있다. 이 바닥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이 보면 같잖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1권의 책을 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초보 작가이고 강의 경력도 2년이 채 되지 않은 초짜 강사이다.
나의 행동과 언어는 살림만 하던 ‘주부’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특유의 편안함과 솔직함이 좋다고.’ 한땀 한땀 일궈가는 나의 모습이 마치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것 마냥 애틋해 보여 그런 건 아닐까. 감사한 일이다.
꾸밀 수도, 있어 보일 수도 없는 게 현재의 ‘나’라서 가능한 일이다. 화려한 스팩과 자산으로 치장하기에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아니, 화려한 스팩과 자산을 가졌다 할 지라도 나는 여전히 불완전한 사람일 것이다. 세상이 납득할 만한 조건을 채운다 한들 나는 여전히 스스로 완벽하다 생각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대단해 보였던 사람도 ‘나와’ 별반 다른 게 없다는 걸 드러내고 싶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채 끌려다니는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이것을 ‘겸손’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나 찌질한 과정을 마주하며 변화의 계기를 찾고 있다. 멋드러진 글을 써내지 않아도 매일 찰기 적당한 밥을 지어내며 끊임없이 타인의 생명 연장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반복된 삶에서 고단함이 묻어나도 기꺼이 털어낼 준비를 하며 내일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인정’ 받기 위해 늘어짐을 경계하며 나만의 시간에 공간을 찾아 왔다. 이제 진짜 ‘일’을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