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질문과 희망을 물려주는 일

by 아는이모


“여러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는 일생을 바쳤습니다. 잔혹하고 난폭한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아름다운 것들을 그렸고,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귀여운 것들을 그렸습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저는 지쳤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합니다.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여러분도 그 질문에 답해보시겠습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 제게 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작품을 만들 때쯤 자신에게 대답하면 됩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요. 답을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인터뷰 중-




어떻게 살 것인가? 의 답은 늘 어렵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며 맞닥뜨리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본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글쓰기가 유일하다.


쓰다 보니 알게 됐다.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가닿기 위해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인 것을.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잊고 있지는 않은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하지 않을지, 마지막 순간에 바라봐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니 백지 앞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글쓰기는 두렵지만 해봄직하다. 네가 무얼 쓰고 싶은지 묻는 질문 앞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확인한다. 한 줄 한 줄 문장을 채우며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방법도 깨닫는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다.


쓰기는 이야기와 만나면 더 풍성해진다. 이야기는 저절로 떠오르지 않는다. 글이나 영상, 공연과 음악 또는 그림을 통해 물꼬를 트고 들어온다. 문득 이야기가 쏟아진 날이면 마음이 젖는다. 흐물거리는 마음에 툭 건들리는 곳에 숨어 있는 걸 캐내면 그리 시원하다. 쓰는 행위에 의미가 더해진다. 고작 끄적 되는 정도가 아닌, 하지 않으면 인생이 의미 없어질 정도의 일이 된다. 이상한 일이다.


이야기는 전한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혼자 이기는 생각보다 함께 이길 생각을 하라고. 그러면 결국 모두가 좋은 쪽으로 흐르게 돼있다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은 꼭 되돌아온다고. 우리가 기꺼이 착해질 수 있다고 전한다. 그렇게 믿는 마음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감상하며 싹튼다. 이야기에는 그런 마음들이 숨어있다. 오늘을 배웅하고 내일을 마중 나가는 일상 속에서도 이야기는 늘 숨 쉬고 있다.


김중혁 소설가는 <영화 보고 오는 길에 썼습니다>에서 글에 마음을 담는 비법을 말한다. ‘따뜻한 감성과 차가운 지성을 한 컵에 서로 섞이지 않게 해서 나란히 담고, 풍미가 있는 문장을 젤리 형태가 되도록 잘 다듬고, 그 안에 작은 은유들을 만들어 읽을 때 뇌 속에서 톡톡 터지게 하고, 한 시절을 동결 건조한다.’ 요리나 글쓰기나 마음을 담는 일은 언제나 참 힘들다. (...) 여전히 처절하고 더럽고 비열하고 안쓰러워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에 더 많은 이야기가 추가될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더욱 넓어진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다.”


글을 쓰며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을 때의 마음을 느껴보자. 그런 마음은 분명 읽은 이에게도 전해진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마음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질문을 남기고 결국 선해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것이 어쩌면 희망이다. 질문을 하고 희망을 남기기 위해 나는 이야기를 쓴다. 아니, 쓰려고 한다. 난 그렇게 살고 싶다.



P.S.

<폭싹 속았수다> 애순이와 관식이의 이야기에 흠뻑 젖은 주말.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관식이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애순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망을 어깨에 걸치고 몇번이고 되돌아보는 관식이의 얼굴도.


아오. 어떻게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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