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이 좋은 열두 살

귤의 계절이 돌아왔다

by 아는이모

이 글의 제목을 '귤 킬러의 일상'이라 붙이고 싶었지만, 킬러라는 단어가 새삼 잔인한 것 같아

(피 터지고 잘리고 그런 거 못 봄) 올해 출간된 경제동화 <돈이 좋은 열한 살>에서 가져왔다.

시작부터 T.M.I ^^ 브런치는 오랜만이라.


녀석의 나이는 열두 살.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하고 틈틈이 종류대로 바지런히 챙겨 먹는다. 특히 식사 전후 간식이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


학원 가기 전 시간이 10분 이상 비면 꼭 집으로 와서 무언갈 먹고 간다. 뜯긴 봉지와 개수대에 담긴 그릇을 보면 그날 녀석이 무얼 먹고 나갔는지 추리가 가능하다. (냉동 삼각김밥부터, 떡, 빵, 과자, 주스, 바나나 등)


녀석은 칼로리에 민감하다. 어차피 다 먹을 거면서 봉지에 적힌 칼로리를 꼭 확인한다. 아마도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오르막 걷기를(녀석이 하는 유일한 운동이다)하면서, 300칼로리를 태우는 데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지 깨닫고 나서부터인 듯하다.


게다가 아토피가 있어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한 몫한다. 대체로 칼로리가 낮은 것들이 건강(피부)에 좋다고 인식한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먹어도 되는 간식은 주로 과일 종류인데, 포도는 껍질 채 먹는 샤인 머스켓을 선호하고 먹기 편한 바나나을 아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귤에 대한 집착은 남다른데...


녀석은 평소 현관에 쌓여있는 택배박스를 본체만 체하나, 귤이 배달 온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제도 그랬다. 집에 들어가니 택배상자에 붙어있던 테이프가 처참히 뜯긴 채 바닥에 뒹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귤이 배달 왔고 녀석이 상자를 뜯어서 그 자리에서 귤을 까먹은 것이다. 귤의 잔해는 식탁과 소파 등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오물오물 귤을 씹으며 녀석이 몇 번이고 말한다.


"엄마, 난 손톱 밑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는 게 좋아. 그러면 손에서도 귤 냄새가 나거든."


밥을 먹고 후식으로, 숙제를 하러 들어갈 때, 심지어 욕조에서 물을 받아 목욕할 때도 귤을 찾는다. 오늘 아침엔 책상과 이불에서 귤껍질이 나왔다. 곧 책가방과 옷 주머니에서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밀린 용돈을 정산받고 (요즘 기억력이 쇠퇴해 제때 용돈을 주지 못했다), 사고 싶은 게 있냐 물으니 녀석은 참 한결같았다.


"내 돈으로 귤 한 박스 사도 돼? 이거 금방 다 먹을 거 같아."


녀석의 귤 사랑에 웃음이 터졌다. 귤 정도는 내가 사줄 수 있다 말해도 자기 용돈으로 사서 방에 쌓아두고 먹고 싶단다. 그러면 귤에 곰팡이가 필 수도 있고 물러질 수도 있다고 말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 날 뭘로 보는 거야. 물러지기 전에 당연히 다 먹지."


5킬로로는 감당이 안 된다. 어서 20킬로로 주문해야겠다.

주먹만 한 크기에 껍질이 얇고 신맛과 단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서귀포 타이벡 감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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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 광고와는 무관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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