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걸 알지만 기꺼이 쓰고 만 이야기
스무 살이 되기까지 자기소개란에 취미는 영화 감상, 특기는 없음이라고 적었다. 그럴듯하게 적고 남몰래 부끄러워하는 것보단 나았기에 특기가 없다고 하는 게 떳떳했다.
시간이 흐른 후 내 특기는 빠르게 청소하기와 밥 차리기가 되었다. 15년 차 주부가 되니 손과 발에 저절로 모터가 달렸다. 떳떳하게 밝힐만한 특기가 생겼지만, 아쉽게도 내 특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서 영화를 보는 걸 20년전도,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특기를 내세울 만한 계기는 없었다. 게다가 SNS나 유튜브를 보면 기껏 찾은 특기는 한없이 초라할 뿐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건 특기라 하긴 애매했다.
자기소개글에 특기란을 마주한 꼬꼬마 시절부터 여전히 난 특기를 발굴 중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입증할 재주가 내겐 있긴 한 걸까.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면 재밌냐?"
바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물었다.
"어? 내가 그랬다고?"
"쉬지 않고 계속 혼자 말하던데."
"정말?"
"어, 자주 그러는 데 몰랐어?"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리고 있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난 어디서 배운 적도 연습한 적도 없는 혼잣말을 꽤 오래동안 꾸준히 해왔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길을 가다 혼잣말을 해놓고 혼자 놀라서 슬며시 주위를 살피고 걸었던 적이 많았다.
일곱 살쯤이었던가, '죽음'이 던진 물음표에 답을 찾다 벽을 보고 울었다. 열여덟 살쯤에는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고, 스물세 살쯤에는 독서실 책상 앞에서 이렇게 살아도 후회 없냐고 질문했다.
굵직한 혼돈의 시간을 건너며 끊임없이 계획을 되뇌고 잘못을 타박했다. 후회와 자책을 하는 만큼 엉뚱한 상상과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 벽 보고 이마를 찧다가도 벽의 재질이 궁금했다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가도 땅밑 세상이 궁금했다. 다행이었다.
궁금하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머릿속을 회오리 치던 말을 가두지 못하고 입이 중계했고 종종 그 행위를 주변에 들켰다.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봐도 그냥 웃으면 끝이었다. 더군다나 요즘은 혼자 구시렁대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혼자서 뛰든 말하든 춤추든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이상함'의 범주가 꽤 넓어졌다고나 할까. 무관심 속 허용이 쓸쓸하지만 때론 자유롭다. 아무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혼잣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당분간 혼잣말을 특기라 우겨 볼 생각이다. 내 귀에 이어폰을 드러내지 않고도 당당히 혼잣말을 하는 기세! 그래 그걸 길러봐야겠다.
...
하지만 내 혼잣말은 이런 상황에서 자주 발생한다.
- 냄비를 태운 아들에게 한껏 잔소리한 다음 날, 휴대폰을 보다 냄비를 태워먹은 나.
나 : 아오. 이 바보. 내가 미쳤지. 못살아. 얼마 만에 끓인 국인데. 심심하니 딱 맛있었는데. 아까워라. 소고기를 이렇게 많이 넣었는데. 이 바보. 내일 아침에 밥 말아먹으려 했는데.
아들 : 탕국 이번에 맛있었는데. 아까비. 근데 엄마도 나랑 똑같네 (웃음)
나 : 괜히 데웠어. 안 데워도 안 상했을 건데. 괜히 부지런을 떨어가지고. 그냥 냉장고에 넣을 걸. 냄비 닦고 나면 수세미도 버려야겠네. 일찍 설거지 끝내고 좀 쉬려고 했더니. 아오.
아들 : 엄마, 그만해.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야.
나 : (식초 콸콸 초록 수세미 박박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