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질주

휠체어 타고 돈키호테

by 아는이모

“6개월 동안은 조심하셔야 해요. 절대 움직이시면 안 돼요.”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행히 뼈는 괜찮았다. (배드민턴을 치다 발목을 접질린 상태) 다리에 반깁스가 채워졌다. 인대가 제대로 붙을 때까지 잘 때도 차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와서 처방받은 소염제를 먹고 찜질도 했지만 붓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종아리까지 퉁퉁 붓기 시작했다. 바닥에 누워 소파 위에 다리를 올렸다. 한결 나았다. 휴대폰을 들어 일정을 확인하는데 한숨이 터져 나왔다. 힘없이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리가 이 모양인데 갈 수 있을까? 취소하긴 아까운데... 아... 어쩌지?”

“걷지도 못하는데 취소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거 제대로 치료 안 하면 엄청 고생해.”

내 마음과 다르게 남편은 단호했다.

“엄마가 엄청 기대하고 있단 말이야. 나 빼고 그냥 셋이 가라고 할까? 출발 4일 전이라 취소 수수료도 엄청 나오는데... 아... 진짜 어쩌지?”

“난 안 가는 게 맞지 싶은데, 장인 장모님한테 잘 말씀드려 봐.”


엄마 칠순기념으로 일본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것도 엄마, 아빠, 나, 여동생 이렇게 넷이서. 20년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각각 바람막이와 등산바지를 사고, 난 돈키호테에서 살 구매목록을 체크했다. 동생은 면세점 쿠폰으로 가방을 주문했다.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들떠 있었다.


7월의 북해도 날씨는 한국과 다르게 습도도 낮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해 인기 있는 여행지였다. 게다가 라벤더 꽃이 만개할 시즌이라 딱 이때만 지방출발 전세기가 뜬다고 했다. 여러 이유로 취소하긴 아까운 여행이었다. 나 빼고 셋이서 잘 다녀오란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다친 딸을 두고 가는 그들 역시 마음이 편할리 없기에(어디까지나 내 생각) 마음을 굳혔다.


“아, 몰라. 그냥 갈래. 갈 거야. 아파도 거기서 아플 거야.”


남편은 혀끝을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여행사 직원에게 톡을 남겼다.


‘제가 갑자기 발목을 다쳐서요. 혹시 투어 일정 중 걷는 코스가 많을까요?’

‘고객님이 예약한 상품은 버스 이동 시간이 긴 편이라, 걸어서 관광지를 둘러보는데 큰 불편을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걷는 시간보다 버스 타는 시간이 길다는 말이었다. 희망이 보였다. 난 파스와 진통제, 그리고 발목 보호대를 종류별로 캐리어에 담았다.


드디어 출국 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오지랖 넘치는 기사 아저씨는 나에게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보라며, 그 다리로 여행을 갔다간 평생을 후회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난 어마무시한 말을 가볍게 넘겼다. 진통제 때문인지, 남편과 아들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퉁퉁 부은 다리는 의외로 가볍기만 했다.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캐리어를 목발 삼아 절뚝거리며 다가갔다.


“서프라이~~~ 즈”

그렇다. 난 다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일찍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좋을 것도 없었니까.


“니 다리가 와 이라노. 뭐 하다 다친 노. 못 산다. 그라고 갈라고.”

엄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니 아빠가 거들었다.

“다리도 많이 부었네. 코끼리 다리처럼 됐노. 그래가 우예 걸어 다닐라고.”

“괜찮아. 이때 아니면 또 언제가. 그리고 얘~ 있잖아. 이 언니를 좀 부탁한다.”


난 동생을 쳐다보며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여섯 살짜리 아들을 겨우 떼놓고 와서 마흔한 살 어른 시중을 들게 된 비운의 그녀. 난 여행 내내 그녀의 허벅지를 무상으로 대여했다. 반깁스를 찬 종아리는 수시로 팅팅 부었다. 그럴 때마다 난 그녀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내가 끙끙거리면 그녀는 손바닥으로 한쪽 허벅지를 찰찰 쳤다. 다리를 올리란 신호였다. 비행기, 버스, 여객선, 심지어 식당에서도 난 그녀의 허벅지를 찾았다. 다리를 올려놓아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그녀의 허벅지 덕분에 여행은 순조로웠다. 절뚝거리는 날 보다 못한 가이드는 버스 맨 앞자리를 전용석으로 내주었고, 관광지에 들릴 때마다 벤치나 의자 앞에서 서성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무심한 듯 따뜻한 배려를 받으며 이틀을 보냈다. 어느덧 우리는 북해도 시내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뭔가 아쉬웠다. 그렇다. 아직 돈키호테를 가지 못했다. 아사히 맥주를 들이켜던 동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돈키호테 갈래? 이대로 가긴 아쉽다.”

“언니, 여기서 20분이나 걸어야 하는데 갈 수 있겠어?”

“호텔에서 휠체어... 빌려서 타고 가면 안 될까?”

"헐... 진심이야?"


진심이었다. 난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그리고 안내데스크 앞에서 정중하게 파파고 화면을 내밀었다.


다리를 다쳐서 그런데 휠체어를 빌릴 수 있을까요? 금방 쓰고 다시 갖다 놓겠습니다.

>> 足にけがをしたのですが、車椅子をお借りできますか? すぐ使ってまた置いていきます。


곧 엄마와 아빠, 동생이 내 호출을 받고 내려왔다. 그들은 휠체어를 탄 내 모습을 보고 차라리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아기자기한 간판과 거리에 울려 퍼지는 J-pop이 조화로웠던 밤. 시원한 바람이 가로등 불빛에 부딪혀 흩날렸다. 우린 당당히 북해도의 밤거리를 누볐다. 여행 내내 뒤돌아보며 내 위치를 확인하던 그들은 이제 나를 앞세우고 걸었다. 깜빡이는 초록 불도, 길 가의 턱도 게의치 않았다. 휠체어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난 소리를 질렀다.


“아빠, 좀 살살 좀 몰아. 나 무섭단 말이야. 이건 안전벨트도 없어!”

뒤따라 오던 엄마가 소리쳤다.

“보소, 내가 할게. 이러다 어디 갖다 박겠구먼.”

“뭐라카노, 내가 이래 봬도 무사고 30년 아이가.”

“휠체어 전문은 내다. 이것도 다 요령이 있는 건데.”


어릴 적 난 엄마 손 대신 휠체어 한쪽 손잡이를 잡고 걸어야 했다. 엄마는 여행 내내 ‘딸이 둘이나 있어서 좋겠어요.’란 말을 들었다. 그렇게 가끔 언니는 있다가도 없는 사람이 된다.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일이다. 애써 언니의 흔적을 지우고 떠난 여행에, 난 언니의 전유물인 휠체어를 타고 말았다.


돈키호테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린 바구니 세 개를 가득 채우고 챙겨온 엔화를 탈탈 털어 썼다. 휠체어에 올라타 무릎 위로 포대 자루 같은 쇼핑봉투를 켜켜이 쌓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를 서로 밀겠다고 티격태격하는 소리만 들렸다.


난 짐을 꼭 끌어안았다. 광란의 질주가 다시 시작됐다. 시원한 바람이 달빛에 부딪혀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잊지 못할 밤이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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