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집념

생애 첫 경기

by 아는이모


한 달에 두 번 배드민턴 레슨을 받았다. 세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나, 둘, 셋’ 기본 스텝을 배우고 있다. 시간의 힘 덕분인지 셔틀콕이 날아와도 이젠 얼음이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서든 셔틀콕을 쳐보겠다는 집념이 생겼다. 셔틀콕을 따라 종종걸음 치다 보면 그간 배운 스텝이 엉망으로 꼬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한낮기온이 30도를 가뿐히 넘은 날 강당에 도착했다. 바깥은 여름이었지만 강당 안은 제법 선선했다. 슬리퍼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오래 신어서 귀퉁이가 닳았지만, 그것도 멋스러워서 버리지 못해 신고 다니는 신발,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러닝화였다. 준비운동을 간단히 하고, 레슨을 받기 전 친한 언니와 함께 난타를 쳤다. (콕을 주고받는 연습을 난타라 함)



“현아, 실력이 좀 는 거 같은데? 이제 자세가 좀 나와.”

“아니야, 아직 멀었어. 언니 말 시키지 마.”

“아니야. 봐 이렇게 높이 치는 것도 되잖아?”


어라. 말을 하면서도 셔틀콕을 칠 수 있다니. 놀라운 발전이었다.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 팔을 더 높이 뻗었다. 라켓에서 뻥! 경쾌한 소리가 났다. 순간 라켓이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꽉 붙잡은 손잡이에 힘을 빼기 시작했을 때부터 두 발이 페달에 착 감겼다. 힘을 빼야 할 곳에 빼고 줘야 할 때 제대로 주는 것. 그걸 배우는 게 운동이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 힘을 어디에 어떻게 쏟느냐를 배우는 게 어쩌면 나이 듦의 과정이 아닐까.

라켓을 고쳐 잡았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에 힘이 실렸다. 전보다 손목에 힘이 덜 들어갔다. 그랬더니 용써서 들려고 했던 팔꿈치가 절로 들렸다. 높이 날아오는 셔틀콕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뻥! 찰진 소리가 났다. 난타를 칠 때면 바닥에 떨어진 콕을 줍기 바빴는데, 콕을 받아치는 횟수가 제법 늘었다.


“오늘은 레슨 대신 넷이서 게임해 볼까요?”

코치 선생님이 나를 가리켰다. 같이 편을 하자는 얘기였다.

“선생님, 제가 끼어도 될까요? 아직 실력이 많이...”

“괜찮아요. 자기 앞에 오는 공 똑같이 친다고 생각하면 돼요. 게임 룰은 대강 아시죠?”


반대편 코트에 있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고개를 가로 지었다. 선생님은 서브 넣는 쪽과 아웃과 인을 가르는 선, 점수 세는 방법을 설명했다. 내 눈동자는 점점 초점이 흐려졌다. 이를 본 선생님이 맑고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명 들어도 어렵죠? 룰은 게임하면서 익히는 게 제일 좋아요. 제가 다 받아칠 테니까, 현아 선생님은 자리 잘 지키고 앞에 오는 것만 잘 쳐내면 돼요. 알겠죠?”


역시나 그는 친절했다. 제가 다 받아칠 테니까. 아홉 글자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셔틀콕이 부웅- 떠올랐다. 나는 앞자리를 지켰다. 뒤에서 끽끽 소리가 났다. 오른쪽 왼쪽으로 사정없이 날아오르는 콕을 선생님이 혼자서 받아내는 듯했다. 난 절대로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는 말(다칠 수도 있다고 했다)에 자세를 낮춰 앞만 바라봤다. 드디어 내 앞에 콕이 날아왔다. 나는 라켓을 들고 오른발을 쾅 딛으며 콕을 받아냈다. 콕은 간신히 네트를 넘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 현아샘 진짜 잘하셨어요. 1점 내셨어요!”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라켓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 위로 라켓을 포갰다. 게임도 득점도, 라켓으로 하는 파이팅도 처음이었다. 심장박동수가 올라갔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건 그였으나, 내 심장도 그 못지않게 뛰었다. 욕심이 생겼다. 콕을 기다려선 안 됐다. 나도 콕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한번 두 번 콕을 받아낼 때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아샘, 좋아요. 계속 그 템포로 하시면 돼요.”


그의 목소리에 신이 난 나는 몇 번이고 콕을 더 받아냈다. 등줄기 위로 땀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 정신인가! 득점을 위해, 엄밀히 말하면 팀을 위해 땀을 흘리는 내 모습이 낯설고도 기특했다. 코치 선생님의 티 나지 않는 배려로 경기는 박빙으로 이어졌다. 내 발도 바쁘게 움직였다.


“악!”

콕을 향해 몸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욕심이 앞서 스텝이 꼬여버렸다. 내 무게 중심은 한쪽 발목에 실려 버렸고 오른쪽 발등이 꺾인 채로 바닥을 찧었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모두 괜찮냐고, 걸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집중되는 시선이 부끄러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살짝 삐끗한 거 같아요.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곧 남편이 차를 몰고 왔다. 발목은 보라색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를 본 남편은 할 말이 많지만 참고 있다는 표정으로 쯧쯧거렸다. 난 낡은 운동화 탓을 하며 절뚝거리며 차에 올랐다. 내 생애 첫 경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다 인대를 앗아 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꽃송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