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그래 피었다가 사라졌구나
배드민턴 치자고 꼬셔
커피 한 잔 하자고 불러
동네 한 번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_ 버스커버스커)
친한 언니가 배드민턴을 같이 배우자고 꼬셨다. 난 단숨에 거절했다. 커피나 동네 한 바퀴는 언제든 해 줄 수 있지만, 운동은 아니었다. 난 몸으로 습득하는 감각이 무딘, 운동 DNA가 소실된 사람이다. 게다가 방향감과 순발력도 없어 20년째 장롱면허를 고수하고 있다. 당연히 박자감과 리듬감도 없다. 춤도 젬병이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건 기껏해야 새천년 건강체조 정도가 최선이다. 내가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은 걷기 뿐이다.
나의 거절에도 그녀는 꾸준히 나를 유혹했다. “같이 하면 더 재밌을 텐데, 코치 선생님도 잘 가르쳐줘.” 그럴 때마다 난 ‘내 몸뚱이로는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시속 5.5킬로 40분 걷는 게 최선이야.’라 받아쳤다. 그녀는 굴하지 않고 나를 계속 꼬셨다.
라켓에 셔틀콕이 뻥 맞을 때의 기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1시간만 쳐도 땀이 주룩주룩 나서 허벅지 안에 셀룰라이트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얼굴이 터질 정도로 땀을 빼고 나면 몸이 정말 개운하다고.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참, 코치 선생님이 20대인데, 사람이 참 맑고 고와.”
그녀의 끈질긴 설득에 끄떡도 없던 내가 돌아섰다. 난 배드민턴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치는 효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맑고 곱다는 20대 강사가 궁금했다. 일종의 호기심이랄까. 40대 아줌마의 시커먼 호기심은 곧 부끄러움을 무릎 쓸 용기로 탈바꿈했다.
꽃송이 대신 낙엽이 흩날리는 날, 강당으로 들어섰다. 셔틀콕이 공중부양을 해댔고, 끽끽 바닥이 쓸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맑고 고운 강사님은 레슨이 한창이었다. 뽀얀 얼굴에 다부진 체격, 쌍꺼풀 없는 순한 눈, 힘 있고 다정한 말투까지, 그가 풍기는 아우라 하나하나를 포착했다. 왠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운동을 아니, 배드민턴을 좋아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거두고 손목과 발목을 휘휘 돌렸다. 몇 년 만에 해보는 준비운동이었다. 드디어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꽁꽁 감춰둔 소녀본능이 해제되었다.
“현아 선생님은 운동을 배워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처음이에요. 호호홍”
물론, 20여 년 전 수영과 요가를 배워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고려하여 대답하는 게 마땅했다.
“자, 라켓은 악수하듯이 잡으시면 되고 양발을 어깨너비로 벌려보세요. 좋습니다. 그럼 팔을 들어 볼까요? 양손으로 삼각형을 만든다 생각하면 쉬워요.”
그가 쉽다고 하는 건 하나같이 어려웠다. 역시나 내 팔다리는 갈 곳을 잃고 혼란에 처했다.
“이... 이렇게요?’ 아, 왜 안 되지?”
‘하나, 둘, 셋’에 맞춰 기본 스텝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몸을 돌리면서 반동을 실어 팔을 휘둘러야 하는데 골반과 팔이 따로 놀았다. 반동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었다. 팔꿈치도 마음대로 굽혔다 펴지지 않았다. 셔틀콕만 날아오면 난 얼음이 되었다. 고장 난 로봇처럼 어쩔 줄 모르는 내게 그가 말했다.
“처음 해보는 동작이라 어색해서 그럴 거예요. 기본 동작을 제대로 익히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자세 잡는 게 그만큼 중요해요.”
그는 몇 번이고 똑같은 동작을 내게 알려 줬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말랑해진 마음 때문인지) 뻣뻣하던 자세가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좋아요. 다시 한번 더 해 볼까요? 현아 선생님, 왼팔을 더 쭉 뻗어야 해요.”
“아... 이렇게 주욱-이요?”
그는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선한 미소도 빼놓지 않았다. 미소의 킥은 한쪽 입가에 파인 보조개였다. 내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이... 르케요? 이러케 맞아요?’라 물을 때마다 그의 웃음은 더 짙어졌다. 덩달아 내 심장박동수도 올라갔다. (숨이 차서가 아니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해두자.)
첫 레슨을 끝내고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고 땀에 젖은 머리를 손질하는데 하품이 나왔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아... 함... 앗!!!’
오 마이갓. 커다란 대문니 위에 코랄 핑크색 립스틱이 뭉쳐 있었다. 유독 환한 그의 미소가 이제야 이해되었다. 안 바르던 립스틱을 바른 게 잘못이었다. 그것도 한 번만 바르면 될 것을 지워질까 싶어서 몇 번 덧바르기까지 했으니. ‘이게 왜 안 되지’하며 앙탈을 부리지나 말걸. 그러면 입이라도 덜 벌렸을 텐데. 난 손가락으로 세차게 앞니를 문지르고 조용히 강당을 떠났다.
멀리서 맑고 고운 음성이 들렸다.
“현아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 주에 뵈어요.”
“아... 네.”
난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까딱했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잠시나마 남몰래 피웠던 꽃송이가 그렇게 사라졌다.
https://youtu.be/tHkMjexi2_Q?si=_PzgOHiiQtrwWkj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