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기댄 순간
문화센터 요가 강좌를 등록했다. 모름지기 운동은 장비빨이라 하지 않던가. 인터넷으로 요가 바지와 양말, 매트를 주문했다. 단돈 몇만 원으로 요가인으로 거듭날 의지를 증명한 셈이다. 택배가 도착했다. 먼저 요가 양말을 꺼냈다. 발가락을 차례로 끼웠다. 무좀 양말처럼 보이긴 해도 베이비 핑크색이라 나쁘진 않았다. 차콜색 요가 바지도 착용해봤다. 스님 옷 같았지만 찰랑거리는 상쾌한 촉감이 좋았다. 요가 매트도 펼쳐봤다. 정중앙에 만다라문양이 희미하게 박혀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나마스떼’
개강 날이 다가왔다. 강의실로 들어서니 선생님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반겼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앉으셔서 발목부터 풀고 계세요.”
발목을 펼쳤다 구부렸다. 그리고 손목, 어깨, 목, 허리 순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수업 시작해 볼게요. 첫날이라 몸에 무리가 가는 동작은 하지 않을 거예요. 매트 중앙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볼까요? 허리는 곧게 세우고, 어깨는 귀에서 멀리, 부드럽게 끌어내려 준다는 느낌으로.”
선생님은 어깨와 귀 사이를 최대한 늘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느낌으로 정수리를 쑥 빼내라고 했다. 차곡차곡 쌓아온 승모근이 솟아올랐다. 턱을 아래로 당기니 목주름이 자글자글 씹혔다.
“이제 눈을 지그시 감고,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집중해 봅니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 긴장, 복잡한 생각들을 숨과 함께 내보낸다고 생각하세요. 스읍- 후---.”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깊게 마셨다. 콧구멍은 두 개인데 숨은 한쪽 구멍으로만 드나들었다. 비염과 함께한 지 언 30년. 코로만 숨 쉬는 게 이토록 불편한 일이었던가. 코끝이 간질 했다. 고요함을 깨고 콧물을 한번 마셨다. 그래야만 할 타이밍이었다.
“천천히 엎드려서 손바닥으로 매트를 짚어볼까요? 발은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발바닥 전체로 바닥을 꾹 누르고, 엉덩이를 번쩍 들어 하늘로 쭉 끌어 올려 보세요. 어깨에 힘 빼고, 뒷다리가 쫙 펴지는 느낌을 확인하면서. 꼬리뼈는 하늘로 더 높이. 더. 더.”
얼굴에 피가 쏠렸다. 발은 괜찮았지만, 손바닥이 미끄러웠다. (구매 리스트에 요가 장갑 추가) 선생님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엉덩이 말고 꼬리뼈를 들어 올리라고 했다. 버티기도 벅찬데 아랫배 힘은 어떻게 줄 것이며, 이미 들려 있는 엉덩이인데 거기서 꼬리뼈만 어떻게 더 들어올려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시원하죠? 허벅지 뒤쪽과 종아리가 불편하실 거에요. 그 불편함을 느껴봐야 합니다. 요가는 여러 자세를 취하면서 불편함과 친해지는 과정을 배우는 운동이에요. 손목이 아프신 분들은 주먹을 쥐셔도 됩니다.”
불편함과 친해지는 운동이라. 첫날이라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상까지 딱 5분이면 돼.’에 그간 얼마나 속았던가. 오늘도 난 어울리지 않게 순진했다. 하지만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자, *살람바 사르방가 자세를 한번 해 볼건데요. 이 자세는 ‘어깨 서기’라고 해요. 뒷목에 자극이 많이 가는 자세로 특히 갑상선이 안 좋으신 분, 하체 부종이 심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일테니 천천히 따라해 봐요.”
*살람바(Salamba)’는 ‘지지하는, 받치는’, ‘사르방가(Sarvanga)’는 ‘모든 사지, 온몸’을 의미함.
선생님의 두 다리가 허공을 향했다. 중력을 거슬러서 말 그대로 어깨로 서 있었다. 두 다리를 수직으로 곧게 뻗은 상태에서 동작을 설명하는데 목소리 톤이 두 발로 서있을 때와 똑같았다. 뒷목과 어깨가 매트에 너무도 편안히 달라붙어 있었다. 난 그 광경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감상했다. 곧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걸 오늘 한다고? 잘못하면 목 부러지겠는데?’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그녀가 읽은 모양이다. 선생님 내 다리를 살포시 잡았다.
"하나, 둘, 셋 하면 머리 위로 다리를 쭉 밀어 볼게요. 자, 하나, 둘, 세엣-"
순식간에 두 다리가 휙-하고 넘어갔다. 꼬리뼈 밑으로 선생님의 발가락이 쏙- 들어왔다.
“잘 하셨어요. 턱 당기시고. 숨쉬기 불편한 거 당연해요. 손목 말고 아랫배 힘주고 두 팔을 모아서 엉덩이를 받쳐 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두 다리를 쭈-우욱-”
그녀는 반동을 주면서 노련한 몸짓으로 내 다리를 들어 올렸다. 무를 뽑아내듯 두 다리가 딸려 올라왔다. 튼실한 두 다리가 보드라운 두 손에 의지해 허공에 세워졌다. 자그마한 두 손에 나의 숨, 안전, 생명, 미래... 온갖 것들이 달려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온전히 내 모든 걸 기댄 순간. 신비롭고 묘했다. 누군가와의 ‘접촉’이 이토록 경이로울 줄이야.
아파야만 아픔이 풀릴 수 있대요
뭉친 근육과 자신도 모르게 한 결심이
하나의 심박동을 나눠 쓰며 싸우는 것을 이젠 허락했어요
(서윤후 시인의 시 <안마의 기초> 중)
아파야, 불편해야만 풀리는 것들이 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온 뭉친 근육에게 이별을 고한다. 숱한 결심이 심박동과 지루한 결투를 벌일지라도. 아등바등 혼자 버티던 시절을 뒤로하고 과감히 중력을 거슬러 볼 테다. 한참을 꿈틀거러도 여전히 제자리인 거대한 애벌레가 될지라도. 거북목이라 슬픈 기린이 될지라도.
작고 고운 것들을 의지해 가뿐히 솟아 올라야지.
기꺼이 어깨로도 나로도 서는 날이 올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