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건넨 초록 잎사귀
여름이 좋다. 특히 여름밤이 그렇게나 좋다. 맹렬히 빛났던 태양은 하늘에 온갖 미련을 뿌리고 저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여지없이. 진초록 바람이 어둑해진 하늘을 훑고 지나가면, 청춘의 내음이 귓가와 이마를 살랑인다. 들킬까 부끄러워 아무도 없는 밤에 몰래 꺼내 보는 싱그러운 초록. 싱그러운 초록을 품에 안고 여름밤을 걷는다. 진하디진한 그 밤에 나는 자주 마음을 내어주었다.
여름밤의 낭만을 질투하는 것이 있다. 그 이름은 습기. 여름의 습도는 스티커다. 먼지 대신 땀, 냄새, 짜증을 붙이고 다닌다. 습기가 몰고 오는 것 중 곱슬 대는 잔머리와 쩍쩍 달라붙는 방바닥은 참을 수가 없다. 빨래 바구니 속 냄새도, 빨갛게 불이 들어온 전기세도 참기 어렵다.
때때로 외로움과 공허함도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그러다 거센 비가 쏟아져 내리고 바람이 송두리째 앗아갈 듯 휘몰아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일궈둔 모든 걸 물에 빠뜨리며 언제 마를지 모를 슬픔에 잠긴다.
수많은 여름을 보내며 알았다. 만물이 오롯이 선명해지는 계절. 삶을 농축시킨 계절이 있다면 여름이 아닐까. 희로애락의 결정체, 여름. 이 계절만큼 쨍하고 맑았다가도 장대비가 쏟아지는 하루가 아무렇지 않다.
쏟아지는 비에게 투정과 어리광은 통하지 않는다. 하염없이 묵묵하게 비가 내리는 걸 바라볼 뿐. 빗물에 깨끗이 씻겨 내려가면, 쥐고 있던 맑은 추억을 하나를 펼쳐놓는 고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품 안에 초록을 숨겼다, 씻었다, 펼쳐놓고,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더 이상 크지 않을 것 같은 품이 조금은 자라 있다.
생기 있고 찐득한 여름을 닮은 글을 쓰고 싶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싱그러운 초록 잎사귀 하나를 건네고 싶다. 살이 튼튼한 우산은 아닐지라도, 잠깐의 비를 피하는 기쁨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