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안 죽었으면 좋겠어.

'너희들의 영원한 우주로 나는 매일을 살아 낼 거야.'

by 아는이모




'오늘 간식은 뭐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둘째가 늘 묻는 말이다. 과자, 빵, 초콜릿을 사놓았다고 하면 번거로움도 덜고 점수도 딸 텐데 그러지 못한다.


굳이 사과를 깎고, 고구마를 구우며 괜찮은 엄마라 우긴다. 오늘도 사과를 깎고 있는데


'엄마, 사과 말고 다른 간식 없어?'

라고 묻는 말에 앙칼지게 답하고 말았다.


'너, 몸에 해로운 거 먹고 싶어서 그런 거지? 오늘은 없어.'


아이의 시무룩한 얼굴을 봤지만 모른 채 했다.

주방 주위를 맴돌던 아이는'이거 뭐야? 맛있게 생겼다.'

식탁의자 위 몰래 먹다 둔 초콜릿을 아이가 찾아냈다.


사실 몸에 해로운 건 내가 더 많이 먹는다. 쿠앤크 크림이 들어간 초콜릿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진다.


'예전에 선물 받은 건데 엄마가 먹다가 여기 뒀었네, 맛볼래?'


비밀을 들켜버린 탓인지 마음이 후해졌다. 아이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응'이라 대답했다. 좋아하는 건 제일 마지막에 먹어야 한다는 소신대로 사과 4쪽을 먹은 후에야 아이는 초콜릿을 오물오물 녹여먹었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이제껏 먹어 본 초콜릿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는 아이의 말에 괜히 미안해져 참맛실 속 삼겹살을 꺼냈다. 달래를 넣은 양파 초간장을 만들고, 배추를 씻고 묵은지를 꺼냈다. 어머님표 시골 쌈장을 덜고 접시에 바삭하게 굽힌 삼겹살을 담아 후추를 뿌렸다. 갓 지은 흰밥을 수북이 퍼서 아이들을 불렀다.


'저녁 먹으러 나오세요.'


이른 만찬이 시작되었다. 아삭한 배추에 바삭한 삼겹살의 조합은 늘 옳다. 아이의 젓가락이 빨리 움직일수록 고기가 줄어든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프라이팬 앞에 섰다. 접시에 마지막 고기가 사라지자마자 방금 구운 삼겹살을 듬뿍 쌓아줬다. '와~'하는 아이들의 탄성이 들린다.


모두가 흡족한 저녁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는데 둘째가 왔다.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과 두 눈을 한 채.


'엄마, 엄마 죽으면 어떻게, 나는 엄마가 죽는 게 싫어, 엄마가 죽을까 봐 무서워.'


맛있다는 탄성을 지르며 밥을 먹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세상 슬픈 표정으로.

유독 아이들의 슬픔은 전염이 강하다. 목구멍 넘어 차오르는 울음을 참고 최대한 자연스레 말했다.


'엄마, 힘센 거 알지? 정말 튼튼한 거 알지? 150살 넘게 살 거야. 그리고 사람은 죽어도 다시 태어난 데, 영혼은 안 없어지고 영원히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어, 걱정 마. 엄마는 죽어도 OO이 안 잊어버릴 거야.'


돌아서서 행주를 빨며 생각했다.


'나도 그거(죽음) 뭔지 몰라, 무서워. 그래서 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대답을 듣고도 개운치 않았던 아이는 식탁에 엎드렸다. 어떻게 해야 그 아이의 본능적 공포를 잠시라도 꺼트릴 수 있을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OO아, 벌어지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건 어리석은 거야, 그럼 오늘 하루가 다 날아가 버리잖아, 지금 엄마가 아픈 것도 죽을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오늘을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게 중요해. 미리 걱정하는 마음 대신 지금 재밌게 보낼 생각을 해봐, 젤리 하나 먹을래?'


젤리로 급한 불은 껐다. 아이는 눈물을 닦고 밝게 웃었다. 이해가 된 모양이다. 나는 안다. 완벽한 이해가 아닐거란걸. 앞으로도 문득 여전히 무섭고 불안할 것이란 걸.


몰래 먹는 해로운 음식을 줄여야겠다. 혼자인 시간의 해방감을 느끼려고, 감정조절을 못한 나에게 벌을 내리려고 달고 짠 과자를 혀가 어리도록 씹고 삼켰다.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 몸을 대했다.


나의 몸이 오롯이 내 것이 아니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아이와 남편)을 핑계로 소중히 돌봐야 하는 나의 몸을 학대했다. 그래 이제 그러지 말자. 아이와 약속한 150살 까지는 살아야 되니까.






7살쯤이었다. 나도'죽음'이란 단어의 의미를 알아버렸다.


'내가 죽으면 내가 없어지는 건가?'


벽에 얼굴을 묻고 돌아서 울었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죽는 게 무섭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물어볼 이도 없었다. 나의 표정을 살 필만한 어른이 집에 없다는 게 그땐 다행이었다.


그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가 나에게도 있었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 공포가 9살 나의 아이에게도 찾아왔다.


쓸데없이 씩씩해져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엄마도 사실 겁쟁이지만 너 앞에서 만큼은 더 용감해질 것이라고'

바퀴벌레가 가장 무서운 사람이지만 그깟 벌레쯤은 무쇠 다리로 짓밟을 수 있고,

귀신도 도둑도 두 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고,

널 무섭게 하거나 괴롭게 하는 건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거친 다짐을 한 후, 아이의 눈을 보며 말했다.


'죽는 것도 귀신도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지켜줄게'


세 남자의 끼니와 청결을 책임지는 게 전부라 여겼던 나는 아이의 전부였다. 아이의 우주였다.


서로의 부재를 감히 앞서 생각해 보는 일은 공포 중의 공포, 슬픔 중의 가장 큰 슬픔일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나를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다는 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이 기적임을 글로 박으며

남은 삶의 성의도 다짐해본다.



너희들의 영원한 우주로 나는 매일을 살아 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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