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야 말로 꽃인 것을

자본주의 너란 녀석

by 아는이모




상처가 꽃이다.

- 유안진-



어린 매화가 꽃 피느라 한창이고

사백 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

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 섰다


등치도 가지도 꺾이고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진물은 얼마다 오래 고여 흐르다가 말라 붙었는지

주먹만 틈 굵다란 혹이며 패인 구멀들이 험상 궃다

거무죽죽한 혹도 구멍도

모양 굵기 깊이 빛깔이 다 다르다


새 진물이 번지는가 개미들 바삐 오르내려도

의연하고 의젓하다

사군자 중 으뜸답다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

상처 깊은 이들에게는 훈장으로 보이는가

상처 도지는 이들에게는 부적으로 보이는 가


백 년 못 된 사람이

매화 사백 년의 상처를 헤아리랴마는

감탄하고 쓸어보고 어루만지기도 한다


만졌던 손에서 향기까지 맡아본다

진동하겠지 상처의 향기

상처야 말로 더 꽃인 것을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



누군가는 말한다.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이며

삶을 위로 하지도 치유해 주지도 않지만

나를 연민하고 생을 회의하게 하는 것이라고.



뚝뚝 끊어 놓은 말 사이 오고 가는 생각에 빠진다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6.480시간이 지남 나도 마흔.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쓸린 손 등의 상처가

시를 읽고 나서 보니 유독 커 보인다.

새 살이 더디게 올라오는 걸 보니

나의 노화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사백 년을 산 매화나무만큼 오래된 것만 상처가 있지 않다.

삶에 가느다란 뿌리 하나 내리고 사는 우리의 모습도

실은 상흔이 범벅이다.


나의 손등도, 발꿈치도

갓 태어난 아기의 숨구멍도

판교 신혼부부가 되지 못한 수많은 청춘들도


제 각기 상처는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한 영상에서 박탈감을 논한다.

판교 신혼부부란 키워드를 앞세워 금수저를 찬양한다.

자본주의 때 국물이 청춘들의 상처에 맺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상처가 꽃이다.


오묘하게 닮은 두 문장.


시를 떠난 현실에선

상처는 꽃이 될 수 없고, 아픔은 청춘일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꽃과 상처를 넘나들며 이 봄을 당당히 누리는 일.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보기.

오늘도 그 발악은 계속이다.


봄이고 꽃은 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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