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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이모 Jun 02. 2022

빚을 권하는 사회

내 집 마련의 늪에 빠지다.


‘나 때는 말이야...... 월급의 80%를 적금에 넣고 종잣돈을 모았어. 그럼 1년에 천 만원정도는 쉽게 모았지. 1년 정기예금 이자가 5%대 였으니 말이야, 예 적금 만으로도 신혼집 전세자금 정도는 마련하기 수월했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아니고 불과 십 여년 전 내 얘기다. 때는 2007년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은 채 200만원이 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당시 은행원 남자친구(현재 남편)의 조언에 따라 월급의 80%를 적금에 가입했다. 그렇게 3년동안 모은 돈으로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자금을 마련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20평대 전세는 8천만원, 매매는 1억 대 초반이었다. (2010년, 대구 기준)      



집을 살 최적의 기회를 놓쳤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빚 없이 성실하게 벌고 모으면 노후 걱정 없이 살 거란 어른의 말에 10년간 집 없이 떠돌며 누굴 탓하지 않았다. 그 사이 집값은 고공행진. 남편과 내가 몇 년간 모은 돈을 단 몇 달만에 버는 주변인을 보고서야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 ‘빚’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배우는 일종의 ‘수업료’였다. 더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집 판돈으로 주식투자를 했다. 생애 최초 과감한 선택이었다. 전 재산이 걸린 투자였기에 하루도 돈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졌고 남들이 말하는 위기가 우리에게는 기회로 찾아왔다. 집이 없던 시절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이 그제 서야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만난 B씨. 30개월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이자, 중소기업을 다니는 외벌이 가장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둘째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왜 둘째를 포기한 것일까?     



30대 중반, B씨는 외각 지역 구축 2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옆 동네에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자 30평대 시세도 덩달아 뛰어버렸다. 대출은 없지만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B씨. 그의 실수령액은 200만원대 초반. 세 식구 생활비, 각종 공과금, 보험금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 최근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한 B씨. 매월 받는 각종 수당을 모아 적금통장에 넣고, 종잣돈 천만 원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서 정보를 얻고, 투자한 종목이 10%정도 오르면 매도해 수익을 실현한다고 한다. ‘잃지 않는 투자’를 위해 터득한 방법이라는데 글쎄, 그의 계좌는 이미 파란 숫자들로 가득하다. B씨의 투자방법, 이대로 괜찮을까?   



   

사춘기 남매를 위해 집을 넓히고 픈 J씨. 월세로 살면서 집 판돈으로 투자해도 괜찮을까?     



사춘기 남매를 양육하고 있는 결혼 15년 차 주부 J씨. 최근 큰 평수로 이사를 계획 중이다. 원래는 30평대 아파트를 처분하고 대출을 받아 큰 평수로 옮기려 한다. 하지만 재테크에 성공한 주변인들의 말 때문에 결정을 미루고 있다. ‘집값이 내릴 수도 있으니, 월세로 살면서 집 판돈으로 투자해 보는 건 어때?’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편 덕분에 별다른 재테크를 하지 않아도, 내 집 마련을 하고 생계유지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 남편의 퇴직 후 생활비와 아이들의 학비까지. 준비해야 할 자금이 늘었다. 예금과 적금만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각자 방을 꾸며주겠다고 약속한 J씨, 정말 집 판돈으로 투자해도 괜찮을까?     






B씨와 J씨의의 고민 해결에 앞서 두 사람의 공통점을 알아보자.


1. ‘넓은 평수’로의 이사를 위한 목표가 있(었)다.

2. 유튜브와 주변인의 정보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며, ‘투자’에 대해 긍정적이다.

3. 적금을 포함해 안전 자산에 투자 비중이 크다.     



일확천금을 위해 투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크고 쾌적한 집에 살며, 노동의 대가를 체감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집을 사는 데 ‘빚’을 활용한 사람들이 자산을 급속도로 증식해나갔다. 이제 ‘빚’은 가난한 사람들이 지는 게 아니다. 집이 필요한 사람,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이 져야 하는 것이 되버렸다.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 지금 투자해도 괜찮을까?     


B씨와 J씨가 원하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40년 동안 대출을 갚는다고 생각해보자. 40년 뒤 내 집은 생기지만, 그 외 자녀 학비, 여가비, 노후준비 자금을 마련하기는 힘들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427153000002?input=1195m 40년 만기 주택대출 확산. 2022.4.27.)      


B씨와 J씨처럼 본격적으로 재테크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현금, 주식, 부동산 중 가장 빨리 녹아내리는 자산이 바로 ‘현금’이란 사실이다. 100억대 자산가가 아닌 이상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위험하다. B씨와 J씨 또한 그간 적금에 의존해 돈을 불려 나갔다면 이제는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물가상승 폭이 커지고 있다. 급한 불을 끄려고 미국과 한국 모두 금리 인상을 한다지만, 떨어진 화폐 가치가 단번에 오르긴 힘들 것이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 이게 말이 돼?     



집을 사지 않아도 ‘빚’에 의존해 사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갑자기 튀어 오르는 물가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도 힘들게 한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악화 등 악재로 기업의 경영난도 심각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메타(옛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우버 등은 마케팅 비용과 인센티브 지출, 인력 채용을 줄이며 본격적으로 비용 절감에 돌입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65WZR1WKW)     


이렇듯 위기에 처한 기업은 보수적인 경영을 하며 소비자에게 물가 상승분을 전가해 위기를 극복한다. 오른 물가만큼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면, 생활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화폐 가치 하락으로 받는 타격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먹고 사는 생계가 걸린 문제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어불성설 될 뿐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4960766?sid=101 4600만원 벌어 4500만원 빚 갚는다. 20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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