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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이모 Jul 14. 2022

아들의 첫 야구장 나들이

엄만 요즘 네가 퍽 든든해 졌어.


지난 일요일, 

열두살 강똘똘군은 그의 베프 제이와 

참치와 함께 야구를 보러갔다.




생애 첫 야구 경기 관람.



야구할 줄도 모르는 강똘똘군이 

야구를 보러 간다니 의외다.



"야구 볼 줄은 아니? 생각보다 지루할 수도 있는데..."


"엄마, 요즘 체육시간에 발야구 해, 

손으로 하는 야구랑 규칙 똑같던데?"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야구는 안 해봤지만 

발 야구는 해 본적 있다.




발로 뻥. 냅다 전진. 스트라이크의 쾌감. 

오래 잊고 있었다.




집에서 야구장까지의 거리는 차로 25분. 

버스로는 40분.

아이들끼리 가기엔 먼 거리다.




"너네 진짜 버스타고 갈꺼야? 꽤 먼데...

가는 버스번호랑 노선 알고 있어?"

"제이가 버스노선 알아본다고 했어, 

가서 참치랑 저녁도 먹고 올거야"



저녁까지 먹는 단다. 몇 번 가본 제이의 말에 의하면

야구보면서 객석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애구장 매점에는 안 파는 게 없단다. 





가기 전날, 똘똘이가 말한다.




"엄마, 오후 4시까지 주차장에서 보재. 

아마 제이 아빠가 같이 갈 건 가봐."

"그래? 다행이다. 너네끼리 간다기에 안그래도 

걱정됐는데, 날씨도 더운데 잘 됐다."



티켓 예매를 대신 해 준것도 모자라 

아들의 친구까지 데리고 

체감온도 37도의 날씨에 야구장을 가는

옆 동 제이군의 아버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커피와 음료수라도 사드려야 할 것 같았다.



"똘똘아, 엄마 올 때까지 나가지마, 

제이 아버님 너네들 때문에 고생하시는데 

커피라도 사드려야지."



주섬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똘똘이가 말한다.



"엄마, 그정도 센스는 나한테도 있지, 내가 사드릴게. 

안 그래도 편의점 들렸다 가려고 했어."


('어머, 얘 뭐지? 언제 이렇게 컸지?')



"그래 그럴래? 그럼 엄마 안 나간다. 

제일 크고 제일 맛있는 커피로 사드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예의 바르게 알지?"



"알았어, 알았어, 내가 밖에선 한 '예의' 하거든. 

나 간다. 다녀오겠습니다."




오후 4시에 나간 강똘똘군은 밤 9시 30분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야구방망이 모양의 응원 도구를 목에 걸고 

한 껏 흥분된 채.



참치는 센스없게 빈손으로 왔었고.

야구는 졌지만 응원이 너무 재밌었다고.

치킨과 떡볶이를 먹었는데 매웠지만 아주 맛있었다고.

응원가를 외우고 싶었는데 

차에서 내리니 생각이 안 난다고.


그러게 뭔가 흥얼거리는데

노래는 아닌데...응원가였구나.



열 두살 한 여름밤의 야구장 추억하나가 

똘똘이의 마음 한 켠 저장되었으리.

엄마 아빠 동생이 없는 

친구들과 친구 아빠와의 추억.


매운 치킨과 떡볶이를 먹느라

땀은 뻘뻘 났겠지만


목청껏 소리도 질러보고

수 많은 인파속에서 깔깔 거리면서

웃기도 했겠지.




엄마도 그래.

너 만할 때 친구들과 처음 갔던 놀이공원의

추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깜깜한 밤이 되서야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마법의 성'노래를 그렇게 불렀어.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나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 걸.

공주처럼 살 줄 알았는데. 풉. 



그 친구들은 잘 있나 모르겠네.

이젠 이름도 얼굴도 희미해진 친구들.




그나저나 

야구장 비용도, 제이 아빠 커피값도 

엄마한테 달라고 하지 않고

용돈으로 쓰다니, 칭찬해. 칭찬해.


엄만 요즘 네가 퍽 든든해 졌어.

너의 미래를 한 껏 기대중이야.

하지만 티내진 않을려고 해. 


네 날개가 가벼웠으면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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