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만 요즘 네가 퍽 든든해 졌어.
지난 일요일,
열두살 강똘똘군은 그의 베프 제이와
참치와 함께 야구를 보러갔다.
생애 첫 야구 경기 관람.
야구할 줄도 모르는 강똘똘군이
야구를 보러 간다니 의외다.
"야구 볼 줄은 아니? 생각보다 지루할 수도 있는데..."
"엄마, 요즘 체육시간에 발야구 해,
손으로 하는 야구랑 규칙 똑같던데?"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야구는 안 해봤지만
발 야구는 해 본적 있다.
발로 뻥. 냅다 전진. 스트라이크의 쾌감.
오래 잊고 있었다.
집에서 야구장까지의 거리는 차로 25분.
버스로는 40분.
아이들끼리 가기엔 먼 거리다.
"너네 진짜 버스타고 갈꺼야? 꽤 먼데...
가는 버스번호랑 노선 알고 있어?"
"제이가 버스노선 알아본다고 했어,
가서 참치랑 저녁도 먹고 올거야"
저녁까지 먹는 단다. 몇 번 가본 제이의 말에 의하면
야구보면서 객석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애구장 매점에는 안 파는 게 없단다.
가기 전날, 똘똘이가 말한다.
"엄마, 오후 4시까지 주차장에서 보재.
아마 제이 아빠가 같이 갈 건 가봐."
"그래? 다행이다. 너네끼리 간다기에 안그래도
걱정됐는데, 날씨도 더운데 잘 됐다."
티켓 예매를 대신 해 준것도 모자라
아들의 친구까지 데리고
체감온도 37도의 날씨에 야구장을 가는
옆 동 제이군의 아버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커피와 음료수라도 사드려야 할 것 같았다.
"똘똘아, 엄마 올 때까지 나가지마,
제이 아버님 너네들 때문에 고생하시는데
커피라도 사드려야지."
주섬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똘똘이가 말한다.
"엄마, 그정도 센스는 나한테도 있지, 내가 사드릴게.
안 그래도 편의점 들렸다 가려고 했어."
('어머, 얘 뭐지? 언제 이렇게 컸지?')
"그래 그럴래? 그럼 엄마 안 나간다.
제일 크고 제일 맛있는 커피로 사드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예의 바르게 알지?"
"알았어, 알았어, 내가 밖에선 한 '예의' 하거든.
나 간다. 다녀오겠습니다."
오후 4시에 나간 강똘똘군은 밤 9시 30분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야구방망이 모양의 응원 도구를 목에 걸고
한 껏 흥분된 채.
참치는 센스없게 빈손으로 왔었고.
야구는 졌지만 응원이 너무 재밌었다고.
치킨과 떡볶이를 먹었는데 매웠지만 아주 맛있었다고.
응원가를 외우고 싶었는데
차에서 내리니 생각이 안 난다고.
그러게 뭔가 흥얼거리는데
노래는 아닌데...응원가였구나.
열 두살 한 여름밤의 야구장 추억하나가
똘똘이의 마음 한 켠 저장되었으리.
엄마 아빠 동생이 없는
친구들과 친구 아빠와의 추억.
매운 치킨과 떡볶이를 먹느라
땀은 뻘뻘 났겠지만
목청껏 소리도 질러보고
수 많은 인파속에서 깔깔 거리면서
웃기도 했겠지.
엄마도 그래.
너 만할 때 친구들과 처음 갔던 놀이공원의
추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깜깜한 밤이 되서야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마법의 성'노래를 그렇게 불렀어.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나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 걸.
공주처럼 살 줄 알았는데. 풉.
그 친구들은 잘 있나 모르겠네.
이젠 이름도 얼굴도 희미해진 친구들.
그나저나
야구장 비용도, 제이 아빠 커피값도
엄마한테 달라고 하지 않고
용돈으로 쓰다니, 칭찬해. 칭찬해.
엄만 요즘 네가 퍽 든든해 졌어.
너의 미래를 한 껏 기대중이야.
하지만 티내진 않을려고 해.
네 날개가 가벼웠으면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