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이고도 스테디한 유혹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사사로운 상념과,
회사 모 쌍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꼬리가 꼬리를 물며 만들던 부정적 생각을
적어도 운동할 때만큼은 멈추게 되었다.
그때로 현재에 집중함이 무엇인지 배웠다.
운동할 땐 철저히 현존할 수밖에 없다.
운동 전의 나는,
과거에 머물러 미래 걱정까지 하고 살아
현재만 쏙 빼놓고 지냈다.
겁나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손은경 [헬스장 사람들]-
당신의 생각하는 편의점 스테디 셀러는? 그것은 아마 프렌치 카페가 아닐까? 2+1 마케팅, 색깔에 따른 다양한 맛과 용량으로 ‘악마의 유혹’을 한다. 카페라떼와 아카페라를 가뿐히 무찌를 수 있는 이유는 ‘이 커피를 마시면 나처럼 늙지 않을테다.’라는 원빈효과도 있을테다.
편의점을 장악한 것이 프렌치 카페라면, 지금 나의 유튜브를 장악한 것은 ‘악마의 전신운동’ 이다. 악마의 전신운동 속 재생목록은 무시무시하다. 20분 만에 허리 돌려 깎기, 흐느적거리는 팔뚝살 타바, 죽음의 타바타, 허벅지가 터지는 줌바댄스도 포함되어 있다.
세 남자가 학교와 일터로 떠난 아침이면 나는 비장하게 검은색 레깅스에 발을 찔러 넣는다. 언제쯤 걸리는 부분 없이 레깅스가 배꼽까지 올라 올려나. 두 어번의 끙차 후 홈트용 운동화를 신는다. Ready Set Go!
20분 동안 사정없이 흔들어 댄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로 폐를 펌프질하고 심장의 바운스가 손끝과 발끝까지 전달된다. 목젖 사이로 피맛이 올라온다. 등인지 가슴인지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소금물이 흘러내린다.
‘이정도면 됐어, 그만해도 돼.’ 악마의 속삭임에도 20분을 채우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계속된다. 공복 유산소 20분이면, 잠자던 나의 체지방을 깨워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어서 일어나 분해될 시간이야. 땀으로 오줌으로 변신해서 이곳에서 빨리 나가주렴. please’
공복 유산소 20분. 최근 빠지지 않고 지키고자 하는 나의 루틴이다. 체지방 대신 근육이 자리 잡기를, 그간의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기에 하루라도 안 하면 불안한 것이 되버렸다.
근육을 확장시키는 것이 운동이라면, 나에게 글쓰기는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행위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근육처럼,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글력’ 때문에 나는 매일 쓸 수밖에 없다. 부족하기 때문에 하게 된 것이 힘들고 귀찮더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 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끊임없는 지속이 향상을 불러온다는 법칙이 운동과 글쓰기에도 통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레깅스에 두 발을 끼워넣고, 노트북 앞에 두 손을 올려놓으며 엄숙히 나를 몰아세운다.
비록 내안의 악마가 유혹할 지라도
나의 근력이 글력도 키워 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