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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이모 May 17. 2022

잠시만 서른아홉 좀 미룰게요

37.6이  딱 좋아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았던, 캔디에게 존경을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아도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한 달 넘게 나를 괴롭히고 있는 안구 건조증, 알러지성 결막염, 염증성 결막염 3종 세트 덕분이다. 세 가지가 함께 찾아오니 알았다. 시리고 아픈 건 이빨만이 아니란 걸.




미모의 8할을 담당하는 눈을 아쉽지만 안경으로 가려야 한다. 3번 압축한 비구면 렌즈 밖으로 세상을 본다. 렌즈의 두께를 줄여보려 세 장의 심사임당을 바쳤건만, 안경테 안 박힌 렌즈는 식탁 위 유리 같다. 콧 등위 앉힌 이것은 마스크 줄과 합심해 구렛나루 속 뾰루지를 낳기도 한다. 여러모로 반갑지 않은 안경 생활에 이제는 익숙해져야 한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던 비처럼 나의 안구 또한 태양과 함께 전자파도 피하고 싶었나 보다. 제대로 삐졌다. 다니던 안과에서 치료의 진전이 없자 ‘의뢰서’를 써줬다. 노트북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안구의 수명도 짧아진 듯하다. 줄어든 안구의 수명만큼 콘텍트 렌즈와의 이별도 임박했으리.




번호표를 뽑으란다. 은행이 아니라 안과에서. ‘눈알’을 위한 상담 창구는 다양했다. 각막, 망막, 시력교정, 노안클리닉, 드림렌즈, 백내장, 녹내장 등... 많고 많았다. 각막 진료를 위한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접수증에 있는 숫자가 눈에 띈다. 37.6, 뭐지?












그것은 국제적이고 공식적인 나의 만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였다. 서른 아홉이 아닌 37.6세.



올레, 안과에서 젊음을 찾다니!



사실 ‘웰컴 투 마흔’이 이토록 싫을 줄 몰랐다. 때는 스물 아홉, 깨를 볶고 기름을 짜던 신혼이었던 지라, ‘웰컴 투 서른’이 가능했다. (자가는 아니지만) 내 집이 있다는 것이 묘한 성취감을 줬고, 새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가 환희였다.



64배속으로 30대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리모콘 뒤로 감기 버튼을 몇 번이나 누른 걸까?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하는 사이, 9개월이 아닌 9년이 지나갔다.



서른 아홉이 되고는, 30대로 살 수 있는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매순간을 아쉬워했다. 문과 출신 내가 이렇게 숫자에 집착하기는 처음이다. ‘마흔이 되기까지 팔 개월 남았구나. 아니야, 아직 오천 칠백시간이나 남았는걸? 아니야 삽십사만 오천 육백분 이나 남았다고.’




40대가 되기 전 내게 허락된 시간을 엿가락 마냥 한도 끝도 없이 늘리고 싶었나 보다. 다행히 국제적인 기준을 적용했을 때, 21개월이 더 늘었다. 고로, 마흔이 되기까지 29개월 또는 870일, 정확히 20.880시간이 더 남은 것이다.





‘아직’ 2030세대 라며 여유있게 우겨 볼 참이다. 8할의 미모를 되찾으면 어쩜 가능할 것 같다. 그간 혹사당한 각막에게 아낌없이 인공눈물을 선사하리. 목구멍의 지름을 늘려 매일 같이 오메가3도 삼켜보리. 태초의 각막으로 돌아와 주길. 처음 느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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