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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Mar 06. 2021

[복직 일기] 길었던 한주를 복기하다

1년 육아휴직 공백과의 불편한 만남

어리바리한 13년 차 작업치료사

우리 병원은 20년도 3월부터 회복기 병원 지정으로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바꾸었다. 코로나 폭격까지 겹쳐 고생을 제곱으로 하면서 회복기 병원에 맞는 시스템과 팀 간 의사소통을 위한 체계를 구축했다. 출근해서 보니 병원 직원 선생님들이 고생한 흔적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치료 코드, 평가 코드도 바뀌었고 PT와 병동과 원무팀 간에 소통을 위한 시간표와 기록들도 다 새롭게 구축한 상태였다. 이 말을 바꾸면 '1년의 공백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해야겠다. 


다들 본인들 치료하고 업무 하느라 나까지 챙기기는 어려웠다. 어리바리한 신입처럼 때마다 일을 당하면서 배우는 한주였다. 걸려온 전화를 응대하고 있는데 "어어~ 주임님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받을게요"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배우는 나는 13년 차 작업치료사였다. 



휴가 대행과 내 치료 사이의 간격

1년 만에 작업치료사로 돌아왔다. 길게는 6개월 짧게는 2개월 정도 치료를 진행하던 선생님의 환자분들을 내가 맡게 되었다. 10년 넘게 해오던 치료인데 하며 치료 자체가 어려울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1년의 공백은 분명히 존재했다. 막상 종이에 적힌 치료 내용만 보고 치료에 들어가려니 살짝 긴장되는 게 아닌가.


전달받은 페이퍼에는 환자분들의 정보와 해왔던 치료 내용이 적혀있었다. 하루 이틀 휴가 대행 치료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종이에 적힌 대로 치료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나는 담당 치료사로서 이분들의 남은 입원 기간을 책임져야 하기에 휴가 대행 치료와는 무게감이 달랐다.


어떤 동기와 필요에 의해 이 운동과 활동이 진행되었는지,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었고 치료사가 바뀐 이 시점에도 해왔던 대로 치료를 진행하기 원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종이에 적힌 치료 내용 이면에 담긴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치료를 시작한다는 게 내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는 긴장이라는 감정 상태로 내면화되었던 게다. 나흘 동안 대면하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남은 기간 이분들의 삶에 작게나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작업치료사 되길 간절히 바란다.


다행인 건 이번 주 신환 1명을 받았고 다음 주 신환 2명을 더 받게 된다. 위에서 내가 말한 긴장의 원인을 생각한다면 당행인 상황이다. 처음부터 직접 상담하고 치료 계획을 환자 보호자와 함께 설계해 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예전에도 신환자를신환을 기다릴 때 살짝 설레었는데 원무팀에서 보내온 신환 소식을 보자 긴장보다는 설레는 감정이 빼꼼히 얼굴을 드러내는 것 같아 반가웠다.



환자분들을 바라보다

전달받은 치료의 맥락을 몰라서 긴장했다는 부분도 있지만, 액면으로는 환자분들과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보청기를 사용하시는 분이 두 분이 계셨는데 두 분 중 한 분은 보청기가 고장이 났는지 내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하셨다. 처음에는 소리를 크게 내어 소통하려고 했으나 나중엔 손짓과 표정을 더 사용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KF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니 표정과 입 모양을 드러낼 수 없고 소통은 더 어려웠다. 나머지 한 분은 그나마 잘 듣는 편이셨지만 구음장애가 있으셔서 하시는 말을 내가 알아듣지 못 하는 일이 발생했다. 청력이 있음에도 알아듣지 못하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청력의 부재로 상황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답답하실까?' 생각했다. 목소리도 크게 내시지만 밝게 웃으시며 치료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주고 계시는 분이다. 어머님은 좋은 선생님 만났는데 3월 중순에 퇴원하는 게 아쉽다는 말씀을 벌써 하고 계신다. 이분들을 통해 치료사로서 내가 배우고 성장할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난감한 일이 더러 있겠지만 배우는 자세로 남은 치료 시간을 채우겠다고 다짐해본다.



나를 맞아 준 코로나 백신 주사

출근 3일 차 때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았다. 독감 주사를 맞고도 한 번도 열이 나는 등 이상 반응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아서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타 병원 선생님들이 백신 주사 후 근육통, 오한, 발열 증상이 있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예외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주사를 맞은 날 저녁 10시를 지나니 몸에 큰 근육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도 띵하고 몸살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얼른 병원에서 챙겨 준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따뜻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출근해서도 체온을 쟀는데 37.8도가 나왔다. 언제 본 숫자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낯선 체온이었다. 총 타이레놀 3알을 복용하고서 일과를 마무리했다. '코로나 이 녀석이 센 놈은 센 놈인가 보다.' 생각했다. 1년 만에 출근한 신고식 제대로 한 셈이다.



복직을 앞두며 한 나와의 약속

올해 버킷리스트에 올린 내용 중에 '걸어서 출퇴근하기'가 있었다. 한참 러닝에 집중할 때 '이제 몸을 챙깁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평생 해오던 방식의 운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체중을 줄이거나 러닝 기록을 단축하는 것과 같이 숫자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나 내 몸이 즐겁다고 느끼는 운동을 선택하고 경쟁이 아닌 몸과 마음의 균형을 목표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중의 하나가 요가이고 또 다른 하나가 걷기다. 4일 출근 중에 단 하루만 버스를 탔고 이후로는 30분 정도 걸어서 출퇴근했다. 아침 공기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분주하다는 핑계로 못다 한 부모님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치료실에 도착해서는 치료 준비를 마치고서 따뜻한 보이차 한잔과 15분 요가를 하며 여유를 최대한 만들려고 노력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잘 이루어야 작업치료사의 역할도 균형 있게 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올해 요가와 걷기를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21년 열심히 작업치료사로 성장해보자

작업치료라는 직업의 가치와 철학은 생각할수록 참 인간적이다. 사람이 더 그 사람다워질 수 있도록 돕는 치료가 작업치료다. 1년의 공백은 사실상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겸손히 배우는 자세로 빠르게 적응하여 팀과 병원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글 쓰는 작업치료 모임을 통해 작업치료 현장 이야기를 글로 꾸준히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바빠지더라도 그 정도의 여유를 확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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