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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미나리'곱씹을수록 인생영화

지금 행복해야 하는 이유

by 작업공방 디렉터



영화 '미나리'는 윤여정 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다. 어버이날 연휴를 기념하며 우리 가족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영화 '미나리'를 선택했다. 유명한 영화라지만 관련해 뉴스도 보지 못했고 인터넷 검색한 번 해보지 않았다. '이민 가족' 이야기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배경 정보 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약 두 시간 정도였고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돌아다니고 몸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화장실만 두 번 이상 들락거리며 영화에 거의 집중하지 못했다. 손주 데이비드가 할머니 윤여정에게 오줌을 먹게 한 장면에서만 아주 즐거워했다. 영화가 끝날 땐 나도 약간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갈등과 해결이라는 극적인 요소도 거의 없고 결론이 해피엔딩도 아닌 '그냥 그렇게' 이어지는 삶을 보여주고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영화 속 장면들을 곱씹어 보게 만들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내가 아내에게 나누었던 영화 '미나리'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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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에 남았던 영화 속 장면이 몇 개 있다. 먼저 주인공 제이컵과 모니카가 크게 다투는 장면인데 두 번으로 기억한다. 농장 앞에 덩그러니 놓인 트레일러 집에서 토네이도가 몰려온다는 예보를 들으며 불안에 떨다가 결국 제이컵과 모니카는 크게 다투게 되었다. 또 한 장면은 어렵게 재배한 농장물을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겨우 찾고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함께 살자는 아내 모니카와 농장에서 성공을 이루고 싶다는 제이컵이 심하게 싸우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내가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던 어느 때를 떠올리게 했다.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과 손짓이 너무도 생생했다. 부부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갈등을 마치 표본을 뽑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남자는 보통 성취와 성공 지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반면 여자는 지금 현재 관계 중심적인 방식으로 역할을 인식하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갈등의 결이 너무도 비슷했다. 명작이 될 수 있는 요인이 이런 부분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현실적이라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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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영화라 막연히 '재미'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할머니 윤여정의 등장으로 일어나는 일상의 소소한 웃음거리들이 담기긴 했지만 보통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재미'의 요소는 없었다. 감독이 일부러 의도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던 한국 이민 가족 이야기다. 당연히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스토리가 이어지는 게 관객 입장에서는 무언가 '짜릿', '뭉클' 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영화는 그런 해피엔딩 결론으로 담지 않았다.


윤여정의 할머니 역할이 이 어려운 이민가족의 국면을 바꾸는 어떤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물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부부에게 심장병을 앓고 있는 손주 데이비드를 봐주고 끼니를 챙겨주는 역할로 분명 도움이 되긴 했을 테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할머니 윤여정은 갑작스레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오히려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지만 그 기대만큼 살아지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나중에, 언젠가 미래에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이 영화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행복요소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불행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때도 있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늘 반복되기 마련인데 영화는 그 평범한 사실 자체가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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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막 자라니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다.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윤여정이 미나리를 따면서 한 대사다. 이 대사에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인생에서 행복의 요소와 감사의 이유는 늘 일상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영화에 두 장면이 오버랩된다. 심장병을 앓고 있던 데이비드가 검사 결과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들이 기뻐하는 장면과 제이컵이 모든 것을 잃고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 마지막에 장모님(윤여정)이 심어 놓은 미나리 밭에 가서 "장모님이 뿌려 놓은 미나리가 이렇게 많이 자랐네" 하며 미나리를 따는 장면이다.


전 재산을 들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농장을 잘 일구면 행복할 것이라고 아등바등 아내와 갈라져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다투며 살 동안에도 아들 데이비드의 심장병은 낫고 있었다. 또한 윤여정이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미나리 씨는 자연스레 흐르는 물가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살 때가 있다. 우리가 아등바등 살고 있을 때에도 행복은 늘 우리 곁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미나리는 너무 흔해서 발견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일상의 행복을 상징한다. 감독은 지금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행복도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나중에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자라고 있는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며 사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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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뒤섞여 반복된다. 앞으로 계속 행복할 것 같지만 갑작스러운 불행은 경험하기도 한다. 불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서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제이컵이 애써 재배한 농작물 창고가 불타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나와 가족들은 "어떻게 어떻게"를 난발했다. 제이컵이 얼마나 고생해서 일구어 낸 결과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이컵은 농작물 창고를 잃었지만 가족을 얻었다. 창고가 타버리지 않았으면 가족은 수년간 떨어져 살게 되었을 게 분명하다. 더 시간이 지나서 제이컵이 만약 농장일에서 성공하고 다시 가족을 만나게 되는 언젠가 이 가족은 행복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고 지금 현재에서 발견해야 하는 가치임을 영화는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의 장면들 하나하나 곱씹어 볼수록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어제는 치료시간에 환자분들께 영화 '미나리'이야기를 해드렸다. 자신이 당한 당혹스러운 불행을 공감하면서도 나중에 행복이 아니라 지금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함을 함께 공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치료시간에도 나중에 몸이 다 나아야만 행복과 만족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그리고 지금도 이미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이유들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는 치료여야 하지 않을까? 남아 있는 몸의 불편함(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치료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쌓이고 쌓여 나중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갑자기 뿅 행복한 삶이 나타나는 게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알 듯 행복감을 평소에 느끼며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발하게 행복의 이유를 발견하고 누린다.


미래의 행복이 아닌 오늘 그리고 지금의 행복을 발견해 보자.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몸에 좋은 미나리는 늘 우리 곁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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