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저자 이혜진 교수님을 처음 만난 곳은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였다. 브런치 작가 등록되고 조금씩 글을 쓰고 있었을 때인데 제가 쓴 글에 댓글로 처음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필 타고 들어가 보니 이미 브런치북으로 아빠 간병 이야기를 완결한 상태였고 그 브런치 북의 글을 다듬어서 이번에 책으로 출간신거였어요. 때문에 책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고 응원을 하게 되더라고요.
간단하게나마 이 책에 대한 소감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입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어쩔 수 없이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을 희생해야 하는 고된 일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그 돌봄의 의미를 '희생'이라는 단어 하나에 무게를 다 실어버리지 않고 돌봄 과정에서 그냥 지나처 버릴 인생의 의미를 다채롭게 발견해주고 있다.
딸의 관점에서 엄마를, 그리고 아픈 아빠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작업치료사라는 재활 전문가의 관점에서 절대 돌봄이 필요했던 아빠의 간병 경험을 풍성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렇게 아빠의 기저귀를 처음 갈아보며, 아빠 옆에서 작은 인기척에도 깨어나 아빠를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20대는 이 사랑스러운 짐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내 밑으로 자녀가 두 명이 생기고 생각하니, 아빠의 삶에서도 나는 아빠의 사랑스러운 짐이었을 것이다. 아빠도 나를 지켰으니, 이제 내가 아빠를 지킬 차례다. 우리의 삶은 서로의 짐들이 모여, 버팀목이 되고 그 힘을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빠는 사랑스러운 나의 짐이었고, 나는 그 짐을 지키기 위해 힘을 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정말 부모 개인의 삶이라는 게 있기는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고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고 막내가 7살이 되었기 때문에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뿐해졌고 아내와 가끔 그때 힘들기도 했었지만 아이들 정말 이뻤고 행복했다고 오히려 그때 더 아이들을 사랑해주지 못하고 힘들다고 투덜댔던 때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돌봄의 의미는 기록되고 회상 될 때 더 증폭되는 건 아닐런지.
'갖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
신발을 사야 하는 상황에서 1. 저렴한 가격에 조건 부합 2. 중저가의 아빠 취향 3. 고가의 고기능에 아빠 취향 세 개의 보기 중에서 아빠가 고를 수 있도록 의사결정의 기회를 준 것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아빠는, 필요하진 않지만 원했던, 쓸모없지만 갖고 싶었던 신발을 선물 받았다.... 이 날의 기억을 추억하면, 원하고 갖고 싶었던 물건 자체가 필요하고 쓸모 있는 가치를 부여하고 있을지는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니 우리도 예쁜 쓰레기 샀다고 뭐라고 하지 맙시다.
아프고 환자가 되고 나면 의사결정권이 점점 없어진다. 오랜 시간 투병 중인 환자라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가족에게 무언가 요구한 것 자체가 과하다고 스스로 생각해 버릴 수 있다. 이미 힘든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고 그 마저도 짐이 된다는 불편한 마음 같은게 자랐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하고.
당사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을 존중하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설령 그 의사대로 결정해주지 못할 상황이라도 물어보고 양해를 구해서 하는 것과는 묻지 않고 그냥 해버리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사(의견, 판단)가 있고 자기 생각과 뜻을 표현하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살아야 살아 있다고 느끼는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 '필요한' 신발을 살 수도 있었지만 아빠의 의견을 묻고 아빠가 '원하는' 신발을 사주었던 저자의 마음씀씀이가 참 따뜻하게 남는다.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노년을 위해
'행복한 노년'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노년기란,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선택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올해 칠순이 되신 아버지, 이곳저곳 아픈 곳이 하나 둘 늘어가는 어머니를 떠올려 봤다. 노후, 남일이 아니다. 현실이고 진행형인 인생과제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서 열외 된 것 같은 착각을 했다. 부모님의 노후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부분을 지지해 드려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마주하게 될 일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4월부터 동네 데이케어센터 한 곳과 계약을 맺어 치매 어르신들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보통 프로그램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작하면서 모든 어르신들과 상담 및 평가를 진행하기로 했다. 기관에서 프로그램 전후 비교가 될 데이터를 요청한 부분도 있었지만 프로그램에 사람을 맞추기보다는 대상자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관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일을 번거롭게 하나 싶을 수 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어르신들의 욕구를 확인하고 낮 시간에 상주하는 곳에서 자신의 의사가 반영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 더 즐겁고 만족스러운 일과를 맛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려서 누구나 돌봄을 받으며 자라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간다. 인생의 막바지에는 어떤 형태로든 '돌봄'을 받으며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돌봄이 개인과 가족의 일이기도 하지만 고령화 사회를 코앞에 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활과 돌봄이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고령화 사회의 돌봄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풀어가는 데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돌봄과 케어라는 키워드로 쏟아져 나오는 정책 기사들은 시대 화두를 읽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했다면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살갗에 닿을 만큼 실제적인 형태의 돌봄을 미시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의 돌봄 찐 경험자로서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하고 작업공방에서 북토크를 열어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