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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음식 다루기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하루 세끼 챙기는 육아빠의 소소한 이야기

by 작업공방 디렉터
입맛은 평생 갑니다. 열다섯 살까지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달라지죠. 기억에 남는 맛을 갖고 있으면 무엇보다 값진 보석입니다.

<소중한 것은 모두 키친에서 배웠어>라는 책에서 평생 요리를 배우고 가르치며 부엌에서 익힌 삶의 지혜를 나누는 저자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요리' 챕터에서 나눈 글귀다. 이 글을 딱 읽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스쳤다.


나의 어린 시절 입맛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중 하나는 누룽지를 즐기는 입맛이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압력 밥솥에 밥을 지었는데 식구들의 밥을 그릇에 담고 나면 작은 가스불로 압력 밥솥 바닥에 남은 밥을 누렇게 눌린다. 그럼 엄마는 식사를 하시다가 "윤호야 압력 밥솥에 물 좀 부어라." 하신다. 나는 솥에 물을 한 바가지 부으며 구수하게 퍼진 누룽지의 결과물에 내가 뭐라도 기여했다는 생각에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따뜻하고 구수한 누룽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 입맛이 이어져 나는 지금도 누룽지를 좋아한다. 내 입맛을 물려받아서 인지 아이들도 누룽지를 좋아한다. 아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서 듣게 된 누룽지에 대한 뒷얘기는


어머니가 아침마다 누룽지를 끓인 이유는 할아버지 속이 좋지 않아 부드러운 누룽지가 민간 처방이었고 수년간 며느리의 정성 담긴 누룽지로 결국 할아버지의 속병이 나았다고.


할아버지 아픈 속병 덕에 손자는 구수한 입맛을 몸에 장착하게 되었다.


어릴 때 나는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 옆에 자주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살 위 누나는 없었다. 크게는 김치를 담거나 흔하게는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만들 때면 엄마는 "윤호야 소금 좀 갖다 줄래?", "살살 뿌려봐 봐~" 이러시곤 했다. 이렇게 어린시절 어머니 주방 보조를 하며 음식 간도보고 양념을 감으로 하는 법을 배웠던 게다.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자취를 처음 시작하게 된 아들에게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떡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셨다. 이때부터 나는 자취방에서 밥을 해 먹는 자취생이 되었다. 떡국 끓이기를 조금씩 응용해 국물 내는 법을 바꾸고 넣는 재료를 바꾸면 다양한 국 요리가 된다는 사실도 자취 실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맛을 내기 위해 소금, 간장은 어느 정도 넣어야 국물이 맛있어지는지도 몸으로 점차 터득하게 되었다.


결혼 초 아내가 음식을 망쳤다고 징징거리면 내가 불쑥 주방으로 가서 죽어가는 음식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기억도 난다. 어린 시절 정량 없이 감으로 요리했던 어머니의 감이 전달된 게 아닌가 싶다.


코로나 격리를 마치고 육아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이제 딱 한 달이 되었다. 육아휴직 전에도 가끔씩 요리를 해서 가족들과 즐기긴 했지만 삼시 세 끼를 만들고 챙겨야 하는 메인 역할로 부여받고 나니 음식만들기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일상이 되어버린 하루 삼시세끼



일주일 동안 어떤 메인 메뉴와 반찬을 만들지 고민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고민에 대해 차차 체계를 잡게 되리라 생각이 들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음식을 하고 맛이 나고 아이들과 아내에게 칭찬을 듣는 이 일상에 나를 더욱 치껴 세운다는 사실이다.


아직 한 달이다. 앞으로 한 달이 지나도 이 느낌이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이 느낌을 남겨두고 싶다. 한 평생 주방에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의 역할로 가볍지 않은 밥상의 무게를 감당해주셨음에 어머니께 감사하다. 또한 좋은 어린 시절부터 좋은 음식으로 보물과 같은 입맛을 물려받는 것도 감사하다. 그 밑천으로 나는 오늘도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고민하고 즐겁게 요리를 한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함께 담아서.


아이들에게도 좋은 입맛을 물려주고 싶다. 히야마다미 선생님의 말씀처럼 입맛은 평생에 값진 보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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