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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Apr 23. 2020

9살 아들, 이제야 조금 알아가고 있어요

관계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3월 개학이 미뤄지고 4월로 넘어가더니 2주 라이브 특강을 연이어 진행한 후 개국이래 처음으로 온라인 개학이 강행되었다. 덕분에 큰 아들과 빼도 박도 못하게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지만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색이 정말 다채롭다. 둘째는 매우 적극적이고 빠릿빠릿하고 호기심 대장이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다. 반면 첫째는 딱 FM 스타일이다. 착하고 바르고 온화한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좀 느린 편이다. 솔직히 아빠인 나는 둘째 스타일과 잘 맞는다. 왜? 시원시원하니까.


아빠 경험을 인생에 쌓다보니 내 인내심의 용량이 형편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전에도 모르진 않았지만 큰 아들과 밀착해서 함께 있다보니 아주 적나라한 내 모습(괴물로 바뀌는)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런 아빠와 하루 종일 함께 보낸다니, 학교 개학이 미뤄지면서 진정 괴로웠던 것은 큰 아들 녀석이 아니었을까?


아들과 온종일 시간을 보낸 지 한 달 하고 2주가 되어간다. 그 사이 우린 많이 친해졌다. 내 느낌엔 그렇다. 동생 둘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올 땐 손을 잡거나 어깨춤에 손을 서로 얹고 집을 향해 걷는다. 오늘 공부 후 뭐하고 놀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아무 말 없이 걸을 때도 있다. '휴직이 아니었더라면 아들과 이런 시간은 불가능했을 텐데' 이런 생각이 스치면 휴직을 하면서 따라붙었던 모든 잡다한 걱정들은 바람에 날려 바닥에 나뒹구는 벗꽃처럼 훌훌 날아가 버린다.

동생들 등원시키고 큰 아들과 집으로 산책

무엇보다 나는 지금 큰 아들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있다. 앞서 '모든 면에서 좀 느린 편'이라고 했는데 한 달 가까이 지켜보니 느리긴 하지만 이건 내 기준인 것이고 아들은 속도와 관계 없이 모든 일에 꾸준함으로 대응했다. 초기에는 아들의 느린 반응에 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곧 날카로운 눈매와 목소리로 쏘아 붙여 아들 녀석을 주눅들게 했다. 정말 그랬다.


한 달을 넘긴 지금은 인내심 부족한 아빠괴물이 불쑥 나타나도 그러려니 하고 아빠괴물도 괴물로 변신해 봐야 얻는 것보다 잃는게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아빠와 아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더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들에 대한 시각도 나의 태도도 점차 다듬어지고 있는 중이다. 아들에게 보이는 성실함은 속도보다 몇십 배 큰 덕목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때, 나 스스로 '참 형편없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왜 나는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지 못할까?' 였는데 이 아이의 성실함과 꾸준함은 앞으로 살아 갈 인생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자산이 되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인정하듯 지속할 수 있는 힘은 강하지 않지만 변화와 성장의 핵심이다


다만 아들 스스로 이를 자신의 강점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등떠밀지 않는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그 바탕 위에 가치와 의미를 지닌 일에 자신을 내어 놓는다면 속도가 느린 자신을 보듬으면서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성장 과정을 돕고 지지하는 사람이 부모이고 아빠일 것이다. 지난 한 달 반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은 본연의 아빠 역할을 다시 확인받는 시간이었다.


이렇듯 함께 한 시간만큼 아빠와 아들은 함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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