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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Jun 22. 2020

세브란스 투어

큰 아들 정기 검진이 있어 다녀왔어요. 

큰 아들 세브란스 진료가 있는 날이었어요. 

1) 요속, 잔료, 소변검사 2) 비뇨기과 진료 3) MRI 촬영 4) 신경외과 진료 순으로 예약되어 있었는데 여러 가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어요. 


둘째와 셋째 부랴부랴 챙겨 등원시키고 바로 신촌 세브란스로 출발했죠.  

그런데 6개월 전 병원에서 진료 전 3일 동안 방광 일지를 기록해 오라고 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린 거 있죠. 이틀밖에 적어가지 못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는데 다행히 비뇨기과 소견은 문제없음으로 나왔어요. 


처음으로 수면마취 없이 MRI 촬영을 했어요. 보통 기계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크서 아이들이 무섭고 놀라 해서 초등학교 저학년도 마취 없이 하기 어렵다고 해요. 우리 아들 역시 장하군! 이죠. 


결과는 2년 전과 동일하게 '척수신경 끝 신경총부분이 유착된 것 같이 보인다', '지방들도 보이고..'


"두고 봅시다"
"2년 뒤에 봅시다"
"겁먹을 필요는 없고"
"수술 다시 하면 돼"


병원을 이용하다 보니 의사 말 한마디에 감정선이 오락가락하는 게 보호자 마음인데 너무 쉽게 이야기하신다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나 달리 선택할 감정적 태도가 없고 이 분야의 명의가 겁먹지 말라 하니 겁먹지 말아야지, 해보자는 검사 잘 받도록 챙길 뿐이에요. 


MRI 결과가 찜찜해도 달리 방법이 없어요. 신경학적 이상 증상도 없는데 수술을 섣불리 해 버릴 수도 없고요. 6개월마다 비뇨기과 검사를 통해 뭔가 문제가 보이는 듯하다 싶으면 신경외과 검사를 앞당겨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해요. 


이 날 아들이 원하는 아침 군것질, 점심메뉴, 돌아올 때 호떡까지... 심장이 제법 있는 큰 아들에게 신났던 날이기도 했어요.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6개월마다 찾아오는 검사일이 싫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사실 MRI 비수면으로 하자는 설득도 세브란스 가면 맛있는 거 먹어야 하는데 수면마취를 하면 금식도 해야 하고 마취 풀리고도 바로 밥 못 먹는다고 했더니 즉각 성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안 비밀이랍니다. 


집 주차장에 들어오니 오후 3시.


집에 들어가려니 아들이 주차장에서 축구를 하자고 하네요? 날도 덥고 2번 3번 하원 시키기 전에 잠깐 쉬고 싶었는데...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날도 날이니 만큼 그냥 하자는 대로 축구를 했어요. 땀 대박 흘리면서 말이죠.


오늘, 생후 100일 좀 지나서 신경외과 큰 수술을 했던 녀석이 정말 많이 컸고 잘 커줬다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아들의 병명은 "지방 척수 수막류" 희귀 난치성 질환이에요. 이 의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이고 재발도 확률로 이야기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자라는 동안 사는 동안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는 거죠. 


자식에 대해 불필요한 욕심을 가지지 말라는 신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요. 건강하다는 이유 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즈음 세브란스 진료는 자식농사에 대한 교훈을 정기적으로 주는 채근담 같습니다. 아들과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세브란스 투어는 싫지만 싫어할 수 없는 그런 여행이네요. 


그런데 다음 진료는 12월 큰 아들 생일날이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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