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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Sep 04. 2020

[책리뷰]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사상을 찾아가는 여행




간략평

올해 지적 대화 시리즈 세 권을 다 읽었다. 눈에 보이는 액면의 세상 굴러가는 원리와 법칙을 다양한 주제(1권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2권 철학, 과학, 예술, 신비)의 카테고리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장점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단순화 시키고 이를 그림으로 정리해준다. 또한 '중간 정리', '최종 정리' 를 두어 앞의 내용을 복습해 주니 책의 흐름을 놓이지 않게 해 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주제들의 방대한 이야기를 읽어감에 있어 독자가 지치지 않게 하는 이유다.


시리즈의 마지막 책인 이 책은 눈에 보이는 세상 이면에 숨어 있는 사상(세계관)을 일원론과 이원론의 세계관으로 단순화 시켜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거대한 사상 체계를 탐험하는 세계 여행을 저자의 가이드 받으며 다녀온 느낌이다.


나의 세계관을 재확인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란 사람은 서양철학 그러니까 이원론적인 세계관과 맥을 함께 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으로 세상과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지구상에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되었고 세상이 흐름은 일원론의 방향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도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기독교의 교리를 집대성한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의 철학을 받아들였고 이 전통은 17세기 종교개혁을 중심으로 더 세밀해지고 정교화 되었다. 나는 현재 이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종교개혁 전 중세 가톨릭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명상기도 등을 이야기하며 내부에서의 진리를 탐구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신앙인의 기준과 규범을 성경(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으려 했다)


내가 서 있는 개혁주의 진영에서 인간은 타락 후 내부에서 선한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신적인 영역(성경)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도움(은혜=은총)으로만 가능하다. 인간에게 있을 법한 절대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 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원하는 인간에게는 '나'를 알고 '세계'를 알고 '진리'를 아는 일이 그저 어렵고 불가능하게만 느껴진다. 이 막막함을 느끼는 인간은 내부에서 진리를 찾으라는 이야기가 반갑게 들릴 것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이해되었다.


시대의 흐름, 일원론적 세계관

저자는 대륙별로 나타난 거대 사상을 살피면서 중립적으로 사실을 단순화시켜 설명해 준다. 하지만 책 결론에 가면 서양에서조차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지지하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이는 다수가 될 것이며 이런 세계관을 앎으로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지평의 균형을 잡을 필요성을 언급한다. 더불어 '신비주의'를 표방한 기독교의 한 주류에서도 세계적인 흐름과 같은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오직 기독교만이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나에게 남겨진 생각은 일원론이든 이원론이든 각 세계관을 통해 '나'와 '세계'를 마주할 테지만 인간이 추구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신비에 가려 결코 인간은 알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세계관으로 '나'와 '세계'를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각자가 가진 세계관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하며 나와 세계를 이롭게 하는 '현재를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책의 제목을 얕은 지식이라고 달은 것처럼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베다, 힌두교, 불교와 같은 일원적인 사상에 대한 가르침에도 깊은 지식과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깊은 공부도 해보고 싶다.


더불어 내가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도 이원론이라는 큰 사상적 그림으로 소급해 단순히 설명했지만 '왜 이원론인가' 하는 역산을 한다는 생각으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정리된 기독교 교리와 가르침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더 큰 통찰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나에게 둘 중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나의 세계관을 우선 확고히 하는 것이 '나다움'의 길에 들어서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라야 나와 다른 많은 이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탐구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판은 기독교로 달고 있지만 그 이름에 걸맞는 내용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부류들 때문에 요즘 괜한 사람들이 고통을 맛보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다고 생각하는  아니라 진짜 알아야  것을 알고 믿었더라면 저런 무지하고 상식 이하의 행동은   없다. 제발 먼저 내것을 잘 알도록 하자. 그리고 조화를 위해 다른 앎도 추구하자.


이 책은 숲을보게 하는 책이다. 세부적인 지식을 알되 전체를 놓이지 않는 방식의 앎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숲을 보았으니 슬슬 나무도 탐구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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