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두께는 얇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오히려 덧붙여서 문장을 탁하게 만드는 표현들을 일깨워주는 실용서의 위치로도 탁월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글을 고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과 고쳐진 글에 대해 '왜 고쳤는지'를 묻는 사람이 주고 받는 대사를 통해 진정 '내 글과 내 문장'이 무엇일까를 곱씹어 생각해 보도록까지 안내한다.
이 책의 전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문장을 어떻게 잘 다듬을 수 있는지 방법론으로 책을 채웠다면 아마 끝까지 읽지 못했을 거다. 20년 동안 문장 다듬는 일을 해 온 저자에게 조금은 다른 방식(질문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으로 책 초반에 등장한 '함인주'라는 인물이 책에 흥미를 증폭시켰다.
그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뜻밖의 만남, 마지막 반전까지 책에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더 이야기하면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 해야겠다. 부디 독자로서 이 책의 매력을 직접 당해보시길.
저자의 일이 문장을 다듬는 사람이라서 인지 그의 문장 자체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들이 좋았다.
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내 문장들이 한 줄로 서서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가을 햇살만이 마치 단체 손님인 듯 한쪽 자리를 차지한 채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제야 실내를 둘러보니 한쪽 벽에 요리 학원 이름이 적힌 벽시계가 보였다. 어쩐지, 요리 학원에서 배우고 이제 막 식당을 여신 모양이구나. 그 순간 기대가 가라앉으며 가을 햇살과 벽시계 그리고 척척해진 엉덩이까지 합세해서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청중을 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나를 바라보는 청중을 보면서 청중의 표정에서 내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청중과 나는 같은 걸 보고 있었던 셈이다.
1. 문장에 있어서 방해가 되거나 위치가 어색한 경우를 제거하거나 바꾸는 것이 글 다듬기의 핵심
- 서두에 다루는 '적.의를 보이는 것.들'에서부터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에 실린 습관처럼 불필요하게 붙여지는 것을 떼어 냈을 때 오히려 문장이 담백하고 깔끔해지는 느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도 남발하여 사용하고 있는 잘못된 습관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간다는 것
- "한국어 문장은 순서대로 펼쳐 내면서, 앞에 적은 것들이 과거사가 되어 이미 잊히더라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 요소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해야 한다."
3.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
- "문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거나(왜냐하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문장의 기분점을 문장 안에 두지 않고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게 되어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쓰는 문장의 주인에게 적당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성격도 부여해 주고 할 일도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온전하게 펼쳐지는 글을 쓸 수 있다."
마무리
글을 잘 쓰고 싶어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사실 내 결론은 처음부터 디테일하게 잘 쓰려고 보다 그저 꾸준히 쓰면서 하나씩 고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빠른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문장을 다듬고 있는 저자의 뼈 때리는 조언과 지적이 아팠지만 달달하기도 했던 이유다.
책을 덮으며 자연스레 저자의 다른 책에 관심이 갔다. '동사의 맛'부터 주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