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배움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실습이 시작되고 나면 실습생들은 다양한 방식과 경로로 배우기 시작한다. 선생님들의 강의와 과제를 해결하면서 배우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배움은 실습의 꽃인 '치료 참관'일 테다. 실습의 8할은 차지할 정도로 실습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며 가장 생동감 있게 작업치료를 배울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배운 공부가 실제로 어떻게 써먹어지는지 그 연결을 확인하는 게 실습이니까 의례 당연한 것이다.
'치료 참관'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저마다 다양하다. 뭐하나 놓일세라 수첩에 이것저것 적느라 바쁜 친구들이 있다. 반면에 치료사를 보는 것인지, 클라이언트를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멍 때리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의 치료를 참관하러 오는 학생들에게 나는 2가지 주문을 한다.
나도 신입일 때는 실습생들이 질문하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다. 바쁘다는 핑계는 댈 수 있지만 쫓아다니며 질문을 하면 피할 방법이 없다. 학생이 질문을 했는데 답변을 못할까 긴장이 되기도 했다. '내가 신입인 줄 알고 일부러 골탕 먹이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질문 공격을 방어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 짓는 일이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지나고 보면 질문을 많이 했던 학생들과 더 친해진 걸 보면 나도 마음을 더 주었던 게 사실이다. 분명한 건 학생들의 질문 덕분에 더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아는 것이 더 선명해졌으며 고로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치료 참관의 어떤 유형이든 그냥 보지만 말고 반드시 질문거리를 생각하라고 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능동적 사고 행위이며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배움의 영역에서는 이를 호기심이라고 한다. 호기심과 애정 없는 배움은 성장과 변화로 연결되지 못한다. 실습이 끝나는 동시에 희미한 여운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만다.
질문을 하든 하지 않든 실습의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실습생은 그렇지 않은 실습생 보다 훨씬 많이 배울 뿐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여운을 실습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아무 질문이나 막 던지면 될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묻는 게 낫긴 하다. 하지만 '질문의 질이 답변의 질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질문의 좁으면 좁은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질문을 많이 하라'는 조언과 함께 연결해서 하는 조언이 있다.
이 환자분 진단명이 뭘 것 같아요?
내가 실습하던 때에 치료사 선생님이 치료 도중 한 질문이다.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나는 치료사 선생님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분의 팔이 어느 쪽인지, 환자분이 또 어떤 신체, 인지적 문제를 갖고 있는지 찾기 위해 눈을 굴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씁쓸한 질문과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질병으로 모든 일상생활과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단절되어 병원살이를 시작한 클라이언트 앞에서 우리는 그분을 진단명 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급 이름이 그 사람이 어떤 직원이고 상사인지 말해주는가? 엄마이고 아빠라고 하면 다 같은 엄마 아빠인가? 똑같은 교복을 입으면 다 같은 학생인가? 환자복을 입고 있으면 다 같은 환자인가? 당연히 아니다. 이렇게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진단명은 질병의 기전을 정의하고 그 기전에 따라 증상과 예후를 판단하게 돕는다.
진단명은 클라이언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다. 그런데 그뿐이다. 그런데 현장에서의 문제는 클라이언트를 '질환'이나 '진단명'으로 정의 내릴 뿐 아니라 그 시각으로 모든 평가와 치료를 채우려는 데 있다.
뒤에서 더 언급하겠지만 손이 마비되어 느끼지 못했던 손에 촉각을 느끼게 하거나 집지 못했던 페그를 집어낼 수 있게 하는 게 작업치료가 아니다. 작업치료 범주는 그 보다 더 크다. 질병과 사고로 중단되었던 일상의 삶이 다시 살아지도록 돕는 게 작업치료다. 그러니 당연히 작업치료사의 시각은 진단명보다 넓고 깊어야 한다. 클라이언트의 삶을 이해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습생들이 '이 클라이언트는 어떤 사람일까?'를 궁금해하고 질문했으면 한다. 물론 이 질문의 중심에는 '작업'이 있다. 이 분은 과거에 어떤 역할과 작업을 영위하며 살아왔을까? 이 진단을 받은 후 어떤 '작업'과의 연결이 단절되었던 것일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면 '어떻게 하면 이 분이 자신의 '작업'을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작업치료 다운 작업치료를 시행하는 치료사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질문의 방향을 '질환'에 두지 말고 '작업'에 두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