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일지 말고 나의 작업노트
실습도 엄연히 3, 4학년 교과 과정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매일 일지로 남겨야 하고 교수님들께 검토를 받아 점수에 반영된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실습 담당이 1주 차에 실습일지 작성법을 교육하고 1:1 첨삭도 해주고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실습일지로 정말 기록해야 할 것들을 잘 기록하고 있을까? 기록은 기록 자체보다 기록 후 다시 볼 때 의미를 갖게 되는데 과연 실습일지를 학생들이 다시 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실습생들의 뒤 호주머니에는 손바닥만 한 수첩을 꽂고 다닌다. 치료 참관을 하다가도 무언가 급히 적는다. 궁금해서 보려고 해도 보여주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실습생이 치료실에 놓고 간 수첩을 볼 수 있었다. 이름도 없어서 누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용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는데 치료 참관 때 만난 클라이언트의 정보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메모를 하는 이유는 저녁에 돌아가 제출용 실습일지를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실습 기록에 대한 조언을 주고 싶다. 나는 2008년도 모 대학병원에서 실습을 했다. 무엇 하나라도 더 배워가겠다는 마음으로 학교 제출용 실습일지 외에 나만의 실습 일기를 썼다. 작년 사망선고를 받은 외장하드가 부활하면서 10년 전 실습 시절 고문서를 발견했다. 부끄럽지만 그 시절 나만의 실습일지를 공개한다.
지금 보니 정말 부끄럽다. 그러나 그 시절 얼마나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았는지가 느껴진다. 양식도 실습 시작하면서 만든 기억이 난다. 일기처럼 하루 일과를 돌아보며 수첩에 기록한 내용을 다시 옮겨 적으면서 답을 찾은 것은 적고 더 궁금증이 생긴 것들은 다음날 질문할 내용으로 적어두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오늘 실습을 하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또 모르는 건 무엇인지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메모는 글쓰기를 거쳐야 부족한 부분이 채워져서 쓸모 있는 아이디어로 바뀐다.
<메모 습관의 힘>을 쓴 신정철 작가님이 한 말이다. 작은 수첩에 기록한 본 것, 들은 것 그리고 궁금증이 일어난 것들을 저녁에 일기 쓰듯 나만의 일지로 적어보면 오늘 내가 무엇을 봄으로 배웠는지 어떤 것을 더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까지 조금 더 선명해진다.
학교 제출용 실습일지 말고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실습 경험을 적어보라!
정리하자면 손 수첩에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하루 실습을 돌아보며 아래와 같은 내용을 기준으로 더듬어 보는 것이다. 기록 양식이나 방법은 자기에게 편한 대로 하면 된다.
오늘 실습 때 무엇을 보았고 어떤 생각했는지(클라이언트의 행동 주고받은 말, 치료사의 행동과 말 등)
무엇을 질문했고 답을 들었는지
더 공부해보고 싶은 궁금한 것은 무엇인지
내일은 어떤 목표로 실습에 임할 것인지
오늘 실습을 돌아보며 앞으로 내가 취할 행동/계획은 무엇인지
정보를 수집하는 메모보다 중요한 것이 내 생각을 수집하는 메모다.
실습이라는 자극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때를 놓이지 말고 적어두어라.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야 습관이 삶이 바뀐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더욱이 작업치료사의 길을 걷게 될 자신의 미래의 삶을 떠올려 보면서 매일의 실습 경험이 나에게 준 의미와 목적을 적어 본다면 자신이 어떤 작업치료사가 되고 싶은지, 그래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길은 그렇게 걷는 것이다. 작업치료사라는 Work이 여러분의 진정한 작업이 되려면 내가 걸어온 걸음을 돌아보며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내디뎌야 한다. 나만의 실습을 기록해보는 작업이 여러분이 가야할 가고 싶은 작업치료사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안내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