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간 아내와 역할을 바꾸었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났다. 새벽 1시에 누웠으니 6시간은 잤다. 건넛방으로 가보니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시계를 보니 아내가 아침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며 아내에게 묻는다.
"자기 콘푸라이트? 계란밥? 어떤 거 먹을래?"
"계란밥요~"
계란 프라이를 으깨어 밥과 간장 참기름을 끼얹어 아내 자리에 놓는다. 일찍 일어난 둘째가 자기도 계란밥을 먹겠다고 한다. 징징대며 일어난 딸을 껴안고 잠시 아내 밥 먹는 걸 지켜본다. 곧 일어나 계란 프라이를 한 개 더 하면서 아내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둘째에게 계란밥을 만들어 내어 놓고 나와 딸이 먹을 콘푸라이트, 우유, 그릇을 준비한다. 콘 프라이트를 한참 먹고 있는데 학교 가야 할 첫째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자기는 계란 프라이만 먹을 거라며 씻으러 간다. 콘푸라이트를 후루룩 먹고 일어나 세 번째 계란 프라이를 한다. 아내가 먼저 출근하고 뒤따라 첫째가 학교에 갔다.
둘째 셋째가 아침을 먹는 동안 등원 전 빨래를 해 건조대에 널고 갈 생각으로 수북이 쌓인 빨래 바구니를 챙겨 와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이번 주만 네 번째 세탁이다(주말에 두 번은 더 해야 한다). 세탁기가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청소기로 방청소를 한다. 아이들은 밥은 안 먹고 장난치고 놀고 있다. 청소기 필터를 휴지통에 털어내고 충전기 꽂아 벽에 세워둔다.
"그만 까불고 아빠 씻는 동안 다 먹고 그릇은 설거지통에 담가~!"
잔소리를 좀 발사해주고 씻으러 간다. 씻고 나왔지만 밥을 쥐꼬리만큼 남기고 계속 놀고 있다. 수저로 쓱쓱 긁어 한 입에 마무리해준다.
"이제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 입어~"
"네~~"(대답은 항상 잘한다)
6살 아들은 혼자 양치, 세수, 옷을 입는 것은 혼자 한다. 4살 딸도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혼자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준비를 할 동안 어젯밤 간식 먹었던 그릇과 아침에 나온 그릇들까지 가득 쌓인 그릇을 씻는다.
주방을 둘러보니 생수가 딸랑 1개 남았다. 생수와 떨어진 식재료와 먹거리를 쿠팡으로 주문한다. 문득 쓰레기 버리는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화장실과 방에 있는 쓰레기통을 가져와 종량제 봉투에 모은다. 음식쓰레기도 정리해 둔다. 아이들을 보니 세수만 겨우 하고 콧노래 부르며 놀고 있다.
보다 강도 높은 잔소리가 발사한다. 아이들 어린이집 갈 준비가 다 되었을 즈음 세탁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들린다. 빨래 통에 젖은 빨래를 가득 담아서 건조대에 널고 방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신발을 신고 출입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아빠 해라 머리 안 묶었는데?" 둘째가 말해준다. "아뿔싸"
후다닥 딸의 머리를 묶고 밖으로 나와 차로 어린이집까지 배달 완료한다.
집으로 오전부터 점심때까지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다행히 오늘은 아침에 아내가 닭곰탕을 먹고 싶다고 메뉴를 특정해 준 덕분에 고민을 덜었다. 등원시키고 가는 길에 정육점에 들러 닭을 샀다. 점심 먹고서 만들어 놓을 생각이다. 아침에 주문한 쿠팡 프레시가 빨리 배달되면 콩나물 무침까지 하고 안되면 여수 부모님이 보내주신 멸치만 볶아 닭곰탕과 먹을 생각이다.
코로나로 생활패턴이 오락가락 하긴 했지만 지금은 보통 이런 패턴으로 살고 있다. 보통 전업 주부들도 비슷할 것이고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아이 셋을 키운 아내의 생활은 8년 동안 이 생활의 반복이었으리라. 아이들이 훨씬 어렸으니 더 강도 높게 말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나는 어떠했나? 나의 바쁨과 늦은 귀가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아내도 아이들도 이해해줘야 한다고 여겼다. 오히려 각자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게 가정을 유지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출퇴근 없이 매일 반복되는 극한의 수고를 하면서도 티 나지 않고 개인의 커리어도 되지 못하는 전업 주부의 삶을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은 정반대로 상황이 돌아가고 있다. 아내는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당장 쓰러질 지경의 상태다. 준비해 둔 저녁을 먹고 나면 그대로 뻗는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 아프고 말기 때문이다. 아내가 잠든 사이 설거지하고 집 청소하고 가족모임 하고 양치시키고 책을 몇 권 읽어주면 밤 10시가 넘는다. 그제야 아내는 일어나 못다 쓴 일지며 업무를 12시 넘어서까지 마무리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에는 그 자체로 새롭고 좋아 보이는 면이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깊숙이 현실로 들어가면 처음에 좋아 보이던 것이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집에 들어오면 괴로움을 토로했다. 8년간 품에서 키웠던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했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도 없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직장의 문이 이미 열려 있으니까. 그렇게 아내는 역할 갈등을 겪다가 체념하며 엄마 역할 비중을 내려놓았다. 그래야 직장생활을 버텨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아내를 보며 예전의 나를 본다. 집에 왔지만 머릿속에 일 생각으로 가득했던 나를 본다. 같은 공간에 있고 시간을 함께 보내도 나는 카톡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고 머릿속은 계속 일 생각뿐이었다. 아내가 보다보다 한 뼈 때리는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아내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제야 핸드폰을 던져 놓고 시작한 한다는 이야기도 머릿속에 있는 것이 나올 뿐이다. 병원 이야기, 팀이야기, 치료하고 있는 환자 이야기다. 아내도 집에 와도 못 마친 일 때문에 동료와 카톡을 하고 생존에 필요한 이야기 정도만 겨우 나누는 것 같다. 아내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지금 나를 보며 예전에 아내를 본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며 아침 점심 저녁을 챙기고 오르막에 있는 집에서 쌍둥이 유모차를 밀어 등하원을 시켰다. 그럼에도 저녁밥은 항상 맛나게 차려 놓았고 집안 구조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 놓고는 퇴근한 내가 들어서자마자 "뭐가 바뀌었게?" 하며 기대에 차서 묻곤 했다. 이게 아내의 유일한 취미이자 여가였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하면 내심 서운해했던 아내 얼굴 이제야 보인다.
아내가 집에 오면 나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 어떤 집안일을 어떻게 했는지, 요리는 어떤 유튜브를 보고 어떻게 만들어서 이런 맛이 났는지, 내일은 아이들하고 무얼 할 건지, 집안일하면서도 내가 어떤 자기 계발을 하고 있는지 등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퇴근 한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다. 들어도 피상적으로 듣고 반응도 싱겁기만 하다. 얘기를 안해야 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 부부는 올해 역할을 바꾸어 살면서 과거에 자신을 보고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내가 다시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과거처럼 살지는 않을 거라고. 막상 직장인의 역할을 입고 나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서운함을 아내에게 다시 되돌려 줄 마음은 없다. 아니 다신 그러고 싶지 않다.
휴직 전 날마다 분주하게 살면서도 유일하게 참 잘했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금요일 저녁 아이들을 평소보다 일찍 재우고 아내와 넷플릭스 영화를 보거나 소소한 야식을 준비해 놓고 새벽이 넘도록 수다를 떨었던 일이다. 결혼 생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것 같았고 아내와 부쩍 친해진 느낌이 든 시간이었다.
개리 채프먼의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소개한다. 나에게는 '인정하는 말'이 사랑의 언어이고 아내는 '함께 하는 시간'이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랑의 언어다. 주중에 어떻게 살았든 금요일 저녁은 서로를 '사랑의 언어'로 마주하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맞벌이 부부든, 홀벌이 부부든 할 수만 있다면 한 번쯤 서로 역할을 바꾸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때 비로소 보이는 게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확인한 후 그 사랑의 언어를 표현해보는 시간을 마련해보길 추천한다.
한번 사는 인생에 만난 내 반쪽에게 서운함과 외로움만 안겨 주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밖에서 아무리 험한 일을 당했더라도 집에 오면 나를 안아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 살만하지 아니한가. 우리는 그렇게 살기로 결혼식 날 서약했음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