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업공방 디렉터 Oct 17. 2020

육아휴직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일상들

육아휴직이 가져다준 선물

올해 3월부터 육아휴직을 맞았다. 처음에는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직장은 직장대로 가족들에게는 가족들대로 신경이 쓰였고 등원시킬 때 마주치는 애기 엄마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휴직 자체가 부담되었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육아휴직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책도 보고 아내와 대화도 하면서 육아휴직의 목표를 나름 정리했다. 


육아휴직 마칠 때쯤 아이들이 "아빠 휴직해서 정말 좋았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육아휴직 1년은 성공이다. 




위 목표로 육아휴직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감사하게도 어느 날 아이들이 저녁을 먹다가 외친다. "아빠 퇴사해! 퇴사해!"(동영상 있으니 나중에 공개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이런 반응이라면 정말 땡큐다. 지난 휴직 생활을 돌아보며 휴직 이벤트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소소한 일상을 떠올려 보았다. 


아이들의 머리 셀프 컷

1년간 벌지 못하는데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계산과 '나중에 남겨질 추억거리'라는 생각의 합작품 이었다. 첫 셀프 컷은 영상으로 만들어서 소장하고 있다(아래). 머리 자르는 것을 싫어하는 둘째와는 지금도 매번 실랑이를 해야 하지만 부족한 아빠 실력을 믿어주고 맡겨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왠지 짠한 마음이 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HXQs0YcT0xQ



딸내미 머리 묶어주기

3월부터 출근해야 하는 아내에게 2월 말에 부랴 부랴 배웠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없어 43개월 지금껏 길렀으나 아직 한 묶음으로 깔끔하게 묶이지 않는다. 그래서 양쪽으로 나눠서 묶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별것도 아닌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진땀을 빼기도 했다. 지금은 후다닥이다. 딸도 아빠 많이 잘한다고 격려를 해 주지만 매일 똑같은 스타일로 해주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면 "라라야~ 이쁜 머리 하고 싶으면 엄마 출근하기 전에 묶어 달라고 해~" 한다. 육아휴직이 아니었더라면 딸이 스스로 머리를 묶을 수 있을 때까지 딸내미 머리 묶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uK64W9MTs


안정기 퓨즈 교체

살고 있는 집은 2012년 지은 집이다. 수명이 5-6년으로 알려진 형광등 속에 들어가는 안정기 퓨즈가 내가 휴직하고서 계속 수명을 다하고 있다. 퓨즈가 나가면 불이 켜지긴 하지만 수없이 깜빡이는 증상에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건물 반장님께 문의해보니 자신도 전기 공사하는 지인한테 맡겨서 4-5만 원에 갈았다고 했다. 괜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 찾아보니 전기 공사 달인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안정기 퓨즈, 형광등 소켓을 인터넷으로 1만 2천에 구매해 뚝딱 설치했다.  4만 원은 아낀 샘이다. 돈을 아낀 것도 좋았지만 무언가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달달했다. 


아침에 킥보드 질주 등원

집이 약간 언덕에 있다. 때문에 아침에 킥보드로 골목을 질주하는 행운이 나와 아이들에게 주어졌다. 아들 1 아들 2는 스스로 운전해서 달리고 나는 딸내미 킥보드 뒤에 한 발을 딛고 골목을 미끄러져 간다. 5-7분 정도 질주인데 바람도 시원하고 정말 기분이 최고다. 아내는 감히 엄두를 못내는 일이지만 아빠인 나와 결이 딱 맞는 활동이다. 영상으로 만들고 싶으나 아직 손을 못 댔다. 남겨두고 싶으니 곧 작업에 들어가기로 하자. 


도서관 다니기

https://brunch.co.kr/@onlyloveot27/72

https://brunch.co.kr/@onlyloveot27/44

위 두 권의 책을 읽고서 도서관 다니기를 조금 더 하게 되었다. 훌륭한 독서가가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게 책과 자주 만나고 친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주 들락 거리는 방법이 좋다고 한다.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은 후에는 일주일에 한 두번은 어린이집 하원 하고서 아이들과 도서관으로 간다. 스스로 책을 골라보라고 하는데 너무 좋아한다. 책을 고르는 일이 사소해 보이지만 독서가가 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공부머리 독서법 저자는 말한다. 육아휴직이 아니었더라면 아이들과 도서관을 간다? 정말 꿈과 같은 일이다. 


아이들과 산책(둘레길 걷기)

휴직하기 전에도 운동을 주 5회는 해왔다. 휴직하고서 주차장에서 아들1과 줄넘기를 했고 확장되어 달리기와 산책으로 이어졌다. 내가 좋으니 아이들과도 함께 하고 싶어졌다. 한 번 두 번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걸었다. 아직 산책 자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나왔을 때 만나는 맛집, 길에 핀 꽃, 아빠랑 짧지만 달리기 이런걸 아이들이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강릉여행

7월 중순 4박 5일로 다녀온 강릉여행은 특별했다. 엄마 없이 아빠와 첫 장거리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좋았다. 식당이나 어디 들어가면 눈초리가 좀 이상하긴 했다. 강릉 여행은 따로 글을 써야 할 듯하다. 그리고 휴직이 끝나긴 전 제주도 한 달 살기도 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꼭.


이 모든 게 육아휴직이 아니었다면 연차 내고 큰 마음을 먹고 해야 할 일들이다. 육아휴직 기간에 다른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육아휴직 다운 시간으로 나와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놀아주는 게 아니라 함께 노는 시간이 아닐까 다시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년 이맘때엔 이 시간이 그립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