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
보통 '평범하다'는 건 '특색이 없다, 뛰어나지 않다, 특별하지 않다, 그냥 보통이다.'라는 뜻으로 통해.
특히 예술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하다는 평판은 곧 사망선고와도 같았어.
그런데 평범하다는 게 정말 그렇게 나쁜 뜻일까?
한자로 ‘평’자는
평평할 ‘평’, 그 외 고르다, 판판하다 가지런하다란 뜻이 있어.
‘범’자는
무릇 ‘범’, 대체로, 전부란 뜻이 있어.
엄마식으로 해석하면 평범하다는 건 평평하고, 고르고, 가지런하고, 정리된 판판한 땅이야.
왜냐면 평평하고, 고르고 가지런하고 판판하려면 기반이 탄탄하고 단단해야만 가능하거든.
너무 멋지지 않니?
그 땅은 기반이 단단해서 푹 꺼지지 않을거야. 그 땅은 가지런해서 무엇이든 단단하게 자랄거야.
어딜가든 엄마에겐 미혼모의 자식이란 꼬리표가 붙었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았던 차별을 받았기에 어릴때 엄마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해지는게 꿈이었어. 눈에 튀지 않는 무채색이고 싶었어.
그래서 남들처럼 되고 싶어서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평범은 너무 먼 이야기 같았어.
평범하다는 게 그냥 남들처럼 보통의 삶을 사는 거라 생각했는데
보통의 삶이 되어서도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평범은 보통이 아니라 판판하고 단단하고 가지런한 무엇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가진 내면의 토대가 평평하거나 가지런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스폰지처럼, 모래밭처럼 진흙탕처럼 쑥 빠지면 다시는 못 올라올것처럼 불안했거든.
그 사람의 토대가 평평하고, 고르고, 가지런하고 정리되고 판판한건 정말 대단한 거야.
사람도 자아를 이루는 토양이 단단해야 하거든. 그래야 나 자신이 될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의 토대 혹은 토양은 주어지는게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고 해석하고 만들어 가는 거야.
우린 못 움직이는 무력한 식물이 아니니까 땅이 마음에 안들면 바꿀 수 있어.
나만의 밭에 다시 좋은 흙으로 채울 수 있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이왕이면 좋은 것들로 단단하게 만들면 돼.
내 삶이 비로소 가지런해진 것은
너를 만난 이후이고,
많은 실패를 겪은 이후야.
우리 모두 토양을 고르게 만들어야 하고
그 토양을 토대로 꿈을 꾸자.
문제 없는 삶을 꿈꾸지마,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한 삶을 꿈꾸도록 해.
너의 토양에 좋은 문제들이 가득하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