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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Oct 06. 2021

내 밥벌이에대한 만족도

-아무튼 출근을 보고 나서

  이 프로그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사실 <하트 시그널>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천인우(IT 엔지니어)와 이규빈(5급 공무원)때문이었다. 사실 그들의 스펙은 하트 시그널에 출연했다는 것 자체로 증명된 것이었지만 연애 프로그램에 나온 순정남의 모습과는 다른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접해보지 못한 직업과 삶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천인우가 나온 회차에 출연한 은행원 이소연의 브이로그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출근과 동시에 일이 몰아치는 것은 예삿일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힘든 티를 낼 수 없고,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인 세계이다 보니 특히 어린 나이에 고졸로 영업점에 입사해 9년 만에 본사까지 오게 된 그녀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능력만 있다면 학력은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입사하고 나서의 문제이지 입사를 위해서는 학력과 스펙은 필수이다. 채용의 과정은 공정해야 하기 때문에 대졸과 고졸의 역차별은 지양해야한다. 하지만 본인이 일에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이 있다면 고졸이라는 학력에도 사내에서 저 정도 위치까지 갈 수 있다는 귀감을 보여준 것이 이소연의 사례가 아닌가싶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주류회사의 첫 여성 영업팀장 유꽃비였다. 그녀의 입담만큼 흥미로웠던 것은 주류회사에 입사하게 된 계기인데, 대학시절부터 술을 워낙 좋아했고 돈 내고 다니는 대학교도 이렇게 힘든데 돈 받고 다니는 회사는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할까.라는 생각에 어차피 힘들 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라며 주류회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녀의 브이로그에서 단연 주목할 점은 ‘첫 여성 팀장’이라는 점인데, 롯데칠성 정도의 회사라면 여느 회사가 그러하듯 경직된 사내문화와 단단한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녀평등으로의 길이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유리천장을 뚫고 고위직으로 올라가기 위한 길을 멀고도 험하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이 시기 즈음 여성들은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를 자의든 타의든 관두게 되는데 이러한 양상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더 가속화되었다. 그녀가 대단한 것은 첫 여성 팀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일도 육아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꿋꿋이 해내는 이 시대의 승리자이자 위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좋았던 지점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었다. 우리의 주위에 있는 흔한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던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과거엔 공익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이웃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야심한 시간에 횡단보도 정지선을 지키는 양심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하거나 국민들의 독서를 독려하기 위해 일반 시민에게 책을 선물하며 책 읽기 열풍을 불게 했던 공익적 프로그램이 방영을 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익방송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의 고급스러운 일상이나 값비싼 육아용품을 이용해 아이를 키우는 모습들이 아무런 필터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무튼 출근>은 우리가 한 번쯤 마주쳤을 집배원, 미용사, 은행원. 그리고 매일 아침 날씨를  예보해주는 기상예보관,  내가 운전하는 차의 안정성과 속도를 위해 최상의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타이어 디자이너,  원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항공사 파일럿의 일상을 보여준다. 우리 주위에 살아가는 그들이 자신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하루하루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보여주며 과연 밥벌이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제시한다.


  이곳에 출연한 그들의 삶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의사, 수의사, 변호사, 경찰관, 소방관 등의 직업군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일만이 위대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주위의 이웃들이 직업과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모두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또한 직업에 귀천이 없는 만큼 직업에는 성별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남자 미용사, 여자 목수, 여자 관리자, 여자 파일럿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목수는 힘세고 거친 남자들이 하는 일, 미용사는 섬세하고 손이 야무진 여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깼으면 좋겠다. 이런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 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만이 누구도 해내지 못한 ‘혁신’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핸드폰 하나만으로 전화, 문자, 인터넷, 영상통화, 심지어 영상편집까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남극에서 연구하고 있는 연구원 박지강은 방송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예전에 같이 세종기지에서 근무했던 박사님께서 ‘연구자라는 길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이 밥은 어떻게든 벌어먹으니 이왕 힘든 거 연구라도 즐겁게 하세요.’ 호기심에 지원했던 월동대가 나에게 삶의 여유와 연구자로서의 가치관을 완성시켜 주었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곳, 바로 남극이다.”  이 말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물론 돈과 같이 경제적, 물질적인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수입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내가 내 일에 만족하고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언젠가 세상이 날 알아보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부와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재단해 놓은 선을 따라 직업을 평가하거나 예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은 밥벌이가 아닌 내 가치를 입증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존귀한 밥벌이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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