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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Oct 06. 2021

홈리스? 하우스리스?

-노매드 랜드를 읽고 나서

“어디 살아?”


한참 재잘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눈치를 살핀다.


“땡땡 아파트요.”


십오 분은 걸어가야 하는 아파트였다. 그런데 왜 눈치를 보지? 너무 멀리 살아서 그런가?


“그런데 얘는 땡땡 아파트에 살아요.” 묻지도 않은 친구의 집 위치까지 알려 준다.


친구는 그보다 더 먼 곳에 살았다.



그날 밤.


낮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가 눈치를 보며 말한 이유가 아무래도 아파트 브랜드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화를 나누었던 장소가  매매가 16억을 호가하는 아파트 한 복판이었으니 아이의 반응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한편으로는 나이에 비해 명민하고 착한 아이가 그까짓 아파트 브랜드 하나에 기가죽는 현실이 어쩐지 슬프게만 느껴졌다.




34평짜리 5,000세대가 꽉 들어찬 부동산 핫플 가운데에 서 있다 보면


여기 사는 사람들이 차박 할 때 나는 차를 전전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내 집 마련 정말 가능한 일일까?





“한때는 정해진 대로 하면 (학교에 가면, 직장을 얻으면,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사회적 계약이 있었죠.”


“밴으로 들어갔을 때, 사회가 내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고, 흰색 말뚝 울타리를 두른 집에서 살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다음엔 삶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가요.” 그가 한 인터뷰에서 내게 말했다. “밴에서 사는 동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했습니다.”






‘노매드 랜드’를 읽으니 가뜩이나 우울한 현실이 더 우울하게만 느껴졌다.


청담동 까르띠에 건물주 정도의 재력이라면 이 책이 마냥 허구라고 느껴지겠지만 끝없이 개발되는 부동산 숲 속에 내 이름 적힌 명패 하나 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몇 년만 고생하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단 ‘희망’이 있었던 부모님 세대가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하우스(house)가 없는 것이지 홈(home)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홈(home)?


홈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홈이란 온기가 느껴져야 하는 곳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체온이 있는 것이 함께해야 그곳을 홈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동물을 기르는 것은 결국엔 누군가의 ‘체온’ 이 그리워서 이다.

하지만 책 속에서 노매드들의 삶은 찰리 채플린 영화 속 형태조차 기억나지 않는 차가운 톱니바퀴 정도로만 느껴졌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그들의 삶에선 이미 온기가 꺼진 지 오래인 것 같다.



미국 곳곳을 이동하며 노을을 지붕 삼아 수풀을 침대 삼아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경이롭고 대단하다 그런대로 치켜세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 따지고 보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도 노매드 아닌가.



그러나 좀 더 진화된 인류가 정착 생활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듯이


우리가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일상에서의 일시적 탈출이지 일상의 파괴는 아니다


돌아올 곳(house)이 있기 때문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위안으로 삼는 ‘안정감’이라는 것, 그게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가 덧붙였다. “사실이라고 믿어온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죠.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아주 깊이 박혀 있어요. 버리려면 철저히 때려 부숴야 해요.”




아마존을 전전하며  초과 수당 하나에 열을 올리는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노매드의 삶으로 떠민 사람들을 향해 돌을 던졌어야 했다.




홈인지 하우스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게 내 몬 누군가는 하우스도 있고 홈도 있고 요트도 있으니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책을 읽는 내내 “베테랑”의 대사가 떠올랐다.



처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노매드들의 삶을 경이롭게 봐야 할까. 정신승리로 봐야 할까.



하우스리스는 맞지만 홈리스는 아니라는 미묘한 선긋기는 그들 최후의 자존심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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