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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Aug 26. 2022

선생님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7 프린스와 그루트에게 느껴진 고통 '봉오동 전투'



 프린스는 누가 봐도 선비 과다.



 학원 커리큘럼 상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지 않지만 매사 열심히 하는 프린스가 기특해 녀석에게만 글쓰기 숙제를 내주고 있다. 숙제를 그만 내줄까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이의 적극적인 요청에 일 년이 넘도록 숙제와 첨삭은 계속되고 있다.



 보통은 신문이나 논술 주제에 따른 글쓰기를 시키는데, 역사적인 사건을 아이가 꼭 알고 넘어갔으면 할 땐 해당 주제와 관련된 영화를 보라고 하는 편이다. 이번 글쓰기 주제는 8.15 광복절을 맞아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는 것이었다.








어남류



국권 피탈 후, 우리 군이 일본에게 최초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 그리고 전투를 지휘 한 홍범도 장군. 그의 유해는 작년(2021년) 꿈에도 그리던 고국산천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화는 15세 관람 등급임에도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편이라 13세 아이가 봐도 될지 걱정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역사이니 꼭 한 번쯤은 보게 하고 싶었다. 숙제를 내준 다음날 SBS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기에 아이에게 숙제를 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뒤, 프린스가 해온 숙제를 검사했다.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프린스가 동생 그루트 이야기를 꺼냈다.

 형이 숙제하는 걸 보고 그루트가 옆에 앉아 영화를 본 모양인데 중간중간 잔인한 장면이 나와 보다가 말았다는 후기를 들려주었다.



'그래. 사람 팔, 다리가 숭덩숭덩 잘리는데, 애들이 보기엔 좀 잔인하긴 했지.' 그렇지 않아도 숙제를 내주며 영화가 좀 잔인하니 그루트 같은 애기가 보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주의를 주긴 했지만 워낙 우애가 좋은 형제다 보니 영화를 같이 본 모양이었다.





 숙제 첨삭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그루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잔인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루트는 연신 중얼거렸다.



'으... 너무해. 어떻게 그렇게... 있어. 잔인해 진짜.'

 역시 애기가 보기엔 좀 잔인했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그루트의 입에서 '불알'이 나왔다. 일하다 보면 아이들이 불알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 '왜 갑자기 불알 타령이야.' 별 대수롭지 않게 듣고 있는데 그루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근데 그거 진짜 뜯은 거예요?"



"뭘 뜯어?" 시선은 과제물에 고정한 채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영화에서 유해진이 일본군 불알 잡고 뜯었는데..."



?????????? 응???????? 불알 이야기가 왜 그렇게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프린스가 키득거렸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했다. 그러니까. 그루트가 너무 잔인해서 영화를 끝까지 못 봤다고 한 장면은 사람이 죽는 장면이 아니라, 유해진이 일본군 장교의 불알을 뜯은 장면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장면인데, 그루트에겐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사람 머리가 잘리는 것보다, 호랑이가 산채로 난도질당하는 것보다 고작 일본군 불알 뜯기는 장면을 갖고 충격받았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네게... 뜯긴 것도 아닌데 왜 잔인해?"  

 고작 영화 속 캐릭터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심지어 우리 민족을 학살하는데 앞장선 일본 장교의 것이 뜯긴 건데 통쾌한 게 아니라 잔인하다고?






그루트가 비장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없으니까 모르는 거예요."





 아... 그랬다... 난 없었다.

 





 문득 명작이라 평가받는 007 카지로 로열의 영화 한줄평이 떠올랐다.

 

명작의 강렬함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은 후기가 액션, 시나리오, 캐릭터에 대한 것이 아닌 불알 고문씬...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루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조금씩 퍼즐이 맞춰졌다. 없는 자는 절대 알 수 없는 있는 자들의 고통.




 그건 그냥 영화라고 실제로 뜯지 않았다고 그루트를 안심시켰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천차만별이다.


 나는 우리 민족정신을 대표하는 호랑이를 잔인하게 살육하는 장면을 보고 잔인하다 느꼈고, 프린스는 일본군과의 전투 장면이 잔인하다고 느꼈고, 그루트는 일본 장교의 불알이 뜯기는 장면을 보고 잔인하다 느꼈다.






 형의 숙제로 인해 본의 아니게 고통받았던 그루트.

 그래도 이번 숙제를 계기로 아이들이 우리 조상님들의 업적을 알고, 배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자신의 청춘을 바쳐 후손들에게 우리의 말과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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