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OH TWINS U와 H의 관계성
나에겐 위로 언니 한 명이 있다.
자매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으면 나중에 자식을 낳았을 때 큰 아이가 딸이면 둘째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 조기에 선언했다. 드센 첫째의 바로 밑 동생의 삶이 어떤지를 알고 있기에. (정확히 말하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은 거였다.) 아마 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인이 되어서도 자매 장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자매 장녀 특유의 동생한테 대하는 화법이 나로 하여금 친언니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니, 내 친언니도 아닌데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시키지?' 무수리 노릇은 어린 시절 집에서도 충분히 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 친언니가 뭘 시킬라치면 도끼눈을 뜨고 "시키지 말고, 언니가 해."라며 선을 긋는다.
그래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나의 절친들은 대부분 남매 장녀들이다.
기분 탓인가 싶어 일일이 나열해보니 정말 심적으로 의지하고 신경전 없이 대한 건 대부분 남매 장녀들이었다. 심지어 남매 장녀 중엔 나보다 어린 친구도 있다. 그런데 진짜 누나(?)처럼 든든하다. 그리고 남매 장녀들은 나의 적당한 개김(?)도 인정해준다. 어휴, 이 줘빱. 이러면서. 아마 남매 장녀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전투 끝에 얻은 맷집 덕분인 것 같다.
이런 나의 남매 장녀 애찬론 덕분에 처음 만난 사람 중에 남매 장녀가 있다면 별다른 내외 없이 마음을 쉽게 여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남매 장녀만 우주 최강 일론 머스크 장녀고 자매 장녀는 뉴클리어 밤처럼 구리다는 뜻은 아니다.
위에서 남매 장녀가 어쩌고 자매 장녀가 어쩌고 했지만 사실 이런 것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집에선 남매 중 둘째가 어떤 집에선 자매, 형제 중 둘째가 구제불능일 수도 있고 결국엔 집 안 분위기에 따라 첫째든 둘째든 어느 정도 장단점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매든 자매든 형제든 어렸을 때 동기(同氣) 간의 성향이 잘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요즘엔 부모님들이 본인들이 어렸을 때 겪었던 미묘한 차별을 자식에게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녀들을 대할 때 부단히 노력을 하시는 것 같다.
남녀차별과 관련된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킬 때 '집에서 차별받는다고 느껴본 적이 있니?'라고 질문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대답한 아이들은 대부분 동기들 간에 사이가 애틋하다. 그런 동기 관계가 되기까지 부모님들의 엄청난 인내와 섬세함이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런 좋은 풍조에도 불구하고 입시와 학업 때문에 동기간에 미묘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특히 그 동기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OH TWINS H는 OH TWINS U의 쌍둥이 남동생이다.
U가 나보다 먼저 학원에 다녔고, H는 내가 입사하고 두 달여 있다 등원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기존에 맡아보던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바빠 H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H 자체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어쩌다 말을 걸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로 지냈었다.
시간이 흘러 어쩌다 H도 나와 같이 공부를 하게 됐고, U와 H 둘을 한꺼번에 같이 보게 되면서 평온해 보였던 쌍둥이들의 삶이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둘이 장난을 친다고만 생각했다. 동기간에 장난을 치는 건 당연한 거니까 방해되지 않으면 별다른 제재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신경전 한복판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쟤는 이거 왜 안 해요?
쟤는 왜 지금 가요?
왜 쟤만 저거 주세요?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의 행동에 촉각을 세우며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형제, 자매들은 나이 차이와 발달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레벨의 책을 읽게 되지만 U와 H는 같은 레벨의 책을 읽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H의 습득력이 누나 U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같은 시간 동안 책을 읽어도 H는 훨씬 더 두꺼운 책을 단시간에 읽어내고 진단과 글쓰기까지 끝내버렸다. 하지만 U의 속도는 H보다 더뎠다.
쌍둥이라 하더라도 원래 사람마다 학업 습득의 차이는 있으니까 U의 더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사람이라면 당연히 남들과 다른 거라고, 각자만의 속도가 있는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U와 H의 어머님께 연락이 왔다. 주 4일 나오던 U의 스케줄을 주 3일로 줄여야 할 것 같다고.
이유인즉 U가 미술 심리 치료를 받으러 다니게 됐다는 것이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나이 차가 나는 형제, 자매간의 학업 차이에도 어린 마음에 비교를 하게 되고 상처를 받는데 하물며 한날한시에 태어난 나의 반쪽이 나보다 공부를 잘한다면 어떤 누가 대범하게 받아들이겠는가. 아무래도 부모님 입장에선 잘하는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더 해줬을 테고, 같은 공부를 해도 뒤로 밀려나 있었을 U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됐다.
게다가 U의 성격이 H보다 섬세했다. H는 내가 어떤 쓴소리를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단순한 녀석인데, U는 작은 말 하나도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U의 속도가 느려도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고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다 갈 수 있게 웬만하면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다행히 나의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어머님께서 감사 인사를 전하셨다. 아이가 이곳을 참 좋아한다고. 늘 H와 비교당했는데 이곳에선 H보다 칭찬을 많이 받아서 아이가 이곳을 참 좋아한다고.
이 일이 있고부터 U와 H의 신경전을 무심하게 지나가지 않았다.
U를 약 올리며 자극하는 H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놓았고, H의 성적과 속도를 하나하나 신경 쓰지 말라고 U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너희는 이 공간에서 서로 모르는 존재라고. 각자의 것에만 집중하자고.
그리고 비교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던 U에게도 말해주었다.
넌 이미 잘하고 있고, H가 너보다 문제를 잘 풀진 몰라도 글은 네가 훨씬 잘 쓴다고. 각자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른 거라고. 아이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동정하거나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말해주었다.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U와 H는 지금도 건강하게 학원을 잘 다니고 있다.
아이들이 앞으로도 각자의 장점을 부러워하되, 서로를 경쟁 상대라 여기지 않고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는 동기간이 됐으면 좋겠다.
유달리 능글능글 장난을 잘 치는 OH TWINS H.
H에게 압수해 온 물건을 안 돌려줬다면 내 전리품은 이미 한 박스는 채웠을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H의 생각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