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창비 교육 성장소설상 '100인의 심사단' 후기
* 해당 글은 12월 18일에 작성하여, 대상작이 발표된 금일(1/3) 올립니다.
11월에 기분 좋은 문자가 도착했다.
제2회 창비 교육 성장소설상에서 최종 후보에 오른 여섯 작품을 심사할 수 있는 '100인의 심사단'에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장차 한국 문학의 주역이 될 작가의 작품을 미리 읽어보고, 한 표를 통해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니.
(물론 나의 의견은 그저 전문 심사위원분들의 의견만큼 영향력이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즐겨 읽는 창비 '성장' 소설상에 한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소설상 후보작을 읽으며 느꼈던 소회나 앞으로 내가 작가로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좋은 가르침을 받았던 터닝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심사 방법은 간단하다.
6편의 최종 후보작을 읽고 나의 마음을 움직인 작품 한 편에 투표를 하는 것.
이것이 100인의 심사단에 주어진 미션이었다.
주어진 기간이 몇 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6편의 작품을 읽기에 시간이 빠듯하다 생각했다.
직업의 특성상 업무를 위해 읽어야 할 책이 많아 생각보다 시간 내기가 힘들었다.
'100인의 심사단'이 기존에 내가 해왔던 서평단과 달랐던 점은 작품의 얼굴인 화려한 겉표지나 사전 서평 글 없이 오롯이 글로만 평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는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생각보다 판가름은 금방 났다.
1차 기준은 팔릴 글과 팔리지 않을 글을 구분 짓는 것이었다.
표현이 조악하지만 책은 결국 많은 이들이 널리 읽고 향유해야 빛이 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눈에도 잘 읽히지 않는 글은 남들의 눈에도 똑같다. 길게 읽어 볼 필요 없이 1-2페이지 내에 문체와 표현이 매끄럽지 않은 작품이 보였다. 그렇게 드러낸 작품이 여섯 작품 중 세 작품이었다. 혹시 몰라 중반부부터 읽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기엔 부족했다.
2차 기준은 성장소설상의 취지에 맞느냐였다.
제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상을 만든 취지에 어울리지 않은 작품은 수상작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은 세 작품 모두 가독성이 좋고, 다음 내용이 궁금했지만 성장이라는 취지에 맞는 작품은 한 작품밖에 없었다.
성장 소설의 뻔한 클리셰에 고리타분함을 느끼는 독자도 있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고난을 발버둥 치며 성장하는 '성장 없는 성장 소설'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작품은 창비 성장 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아몬드>처럼 다양한 결핍이 있는 인물들이 각자의 복잡한 사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결국에는 상처를 보듬어 나가는 모습이 차기 성장 소설의 주역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의 소재 또한 화두가 되고 있는 제도적인 문제를 언급해 이를 주제로 독서모임 등에서 토론이 활발히 일어날 법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생각했다.
아아, 읽고 난 뒤 여운이 남은 작품은 오랜만이다. <아몬드> 이후, 인물들의 앞날을 응원하게 된 작품도 오랜만이다. 심사를 위해 글을 읽었을 뿐인데 서평이 쓰고 싶어 근질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작품은 최근 창비에서 출간한 성장 문학 중 가장 '성장'에 어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제목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제목을 지은 작가의 의도는 알겠으나 여섯 개의 작품 중 가장 기대가 되지 않았던 제목이 이것이었다.
제목이 눈에 띄었던 작품은 초장부터 필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머, 이건 수상감이야!’ 2페이지만 읽었는데도 수상이 확실해 보였다.
‘이건, 책 나오면 꽤 잘 팔리겠어. ㅇㄹㄷ 메인에 뜰 수 있겠는데?’
온갖 피드에 도배될 이 책의 미래가 그려졌다.
하지만 중반 지점부터 눈에 띄게 글에 힘이 떨어졌다. 갈수록 이야기에 몰입이 되지 않았고, 뒷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지 않았다.
또한 성장 소설 상의 클리셰를 벗어난 참신함은 있으나 너무 벗어난 나머지 '성장소설상'의 수상작이 되기엔 물음표란 결론이 나왔다. 성장 소설을 읽었다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읽은 기분이었다. 중간중간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내 귓가엔 내레이션으로 들렸기 때문일까. 시나리오로 바꿔 영화로 만든다면 재미있을 것 같지만 성장 소설 수상작으론 적합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작품은 성장 소설상보다는 창비 청소년 문학상에 투고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점에서 여섯 명의 작가 모두가 존경스럽다.
위의 나의 평가와는 별개로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 성장소설상에 도전장을 내민 작가 모두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미완' 전문인 내가 이번 심사를 하며 최종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돈과 시간을 들여 배우러 다니지만 정작 글을 쓸 때 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심사를 하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다는 글을 쓸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심사 마감은 바로 어제(20일).
주사위는 던져졌다.
과연, 제2회 창비 교육 성장소설상 수상작은 누가 될 것인가.
내가 선택한 작품이 수상작이 되어 상한가 치기를 바란다.
오늘도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알을 낳듯 작품을 써 내려가는 모든 작가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약 2주의 시간이 흐른 오늘 2023년 1월 03일
내가 투표한 <아빠를 조심해>가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내가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 그리고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작품이 대상작이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작가의 이름은 이지애 작가. 성장소설상 대상에 어울리는 글을 써낸 작가님의 책이 출간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겠다.
* 해당 도서는 창비로부터 심사를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심사 후기는 제가 개인적으로 올리고 싶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