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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Dec 15. 2022

돌아오지 못한 여인들<사라진 소녀들의 숲>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을 읽고







서평단에 신청할 때만 하더라도 무슨 내용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세계가 주목한 K-스토리”

“2022 포브스 선정 가장 기대되는 작가”

“2021, 2022 2년 연속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최종 후보작”




 이런 거창한 수식어가 독자에게 주는 것은 기대감보단 의심에 가깝다.

 (수식어만 창창한 작품에 많이 당해본 자만이 갖고 있는 의심병.)



‘1426년, 조선 소녀 13명이 사라졌다’는 소개 글을 읽고  이미 히트에 성공한 <파칭코>와 비슷한 스토리일 것이라 예단했다. 한 가지 이야기가 히트하면 복제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니 나의 의심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책의 첫 페이지엔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인사말이 있었다. 인천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캐나다에서 보낸 작가는  ‘공녀 제도’에 대 우연히 알게 됐고 그것에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과거 낯선 캐나다에서 여동생과 둘이 살아가야 했던 작가가 소원했던 자매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주인공을 자매로 설정했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 ‘민환이’가 여동생 ‘민매월’에 느꼈던 애증의 감정이 대화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고집부리는 동생에 대한 미운 감정과 아버지로부터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감정이 상충되며 내면의 갈등이 고조된다.



 부모의 사랑을 나눠갖는다는 것은 자매에겐 꽤나 어려운 일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었던 불편한 상황과 내면의 감정을 거침없이 써 내려간 것이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아… 자매는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애증관계 그 자체다.) 







<줄거리>

 조선 초, 제주에선 소녀들이 연달아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13명의 소녀가 실종되고, 민 종사관의 큰 딸 민환이는 아버지가 해당 사건을 조사하다 사라졌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5년 전, 자신과 동생 민매월이 살해당한 여인의 시신 옆에 기절해 있었던 ‘숲 사건’. 민환이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어린 시절 살았던 제주도 노원리엔 신병으로 인해 심방(무당)에게 맡겨졌던 민매월이 살고 있었고, 서먹했던 자매는 아버지의 실종으로 인해 다시금 만나게 된다.


 자매가 조우하던 날, 1년 전 실종됐던 고현옥의 시신이 산에서 발견되고 민환이는 수사관이었던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지목하는 상황에서 민환이는 벌어진 매월이와의 관계를 다시 잇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어느새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하얀 가면을 쓴 사내가 칼을 들고 숲을 배회하던 그 장면을…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천선란 작가의 추천사처럼 줄어가는 페이지가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력이 강한 소설이다. 모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민환이의 상황처럼 마지막까지 범인의 정체를 잠작조차할 수 없었다. 결국 책 말미에 범인은 죗값을 받게 되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 느껴지는 감정은 당시의 권력층 모두가 사실은 공범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잊고 있던 역사에 대해 허주은 작가는 조선이란 유교 국가에서 열여덟의 소녀가 사내들 못지않은 거침없고 냉정한 수사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말 또한 기존의 한국형 소설의 클리셰를 벗어나 민환이가 수사관으로, 언니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걱정과 응원을 동시에 하게 만든다. 



 오랜 세월 캐나다에 살며 한국 문화를 잊고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녀는 한국의 피를 갖고 있는 한국인이며 그녀가 그려낸 소녀들은 한국의 유교문화를 깬 당차고 멋있는 소녀들의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은 영화 <혈의 누>처럼 조선을 배경으로 한 심리 스릴러 수사극이 그리운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오랜만에 시간이 아깝지 않은 400페이지 짜리 소설을 읽었다. (뿌듯, 만족)






*해당 도서는 창비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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