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카와 함께하는 엉망진창 일상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나는 분리불안이 심한 편이다.
한때는 안 쓰는 휴대전화로 캠을 설치해 집 밖에서도 믕이의 상태를 체크하곤 했다.
여행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자주 가는 편이 아니니 가는 동안만이라도 여행에 충실할 법 한데, 내 신경은 늘 다 큰 일곱쨜 강아지에게 향해있다.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고 있는 건지. 눈곱은 누가 떼주고 있을지. 물은 제때제때 갈아주고 있는 건지.
걱정이 지나칠 때는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외박이 잦은 편이 아니니 집에 있을 때 녀석은 늘 나와 한 침대를 쓴다.
디럭스 싱글 사이즈 침대엔 믕이와 나 단둘뿐.
내 하루의 마무리는 녀석의 몸에 내 몸을 기대어 살아있는 존재에서 느껴지는 온기로 피곤했던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다.
강아지의 누룽내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지난 7월.
이러한 마무리에 공백이 생겼다.
30분 전만 해도 나와 잘 놀던 녀석이 갑자기 구역질을 하고는 아래로는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질 못했다.
함께했던 몇 년 동안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단번에 녀석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늘 다니던 동물병원에 갈 수 없었다.
축 늘어진 믕이를 안고 아빠와 함께 인근 신도시의 24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차 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녀석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는 내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한 시간의 대기 끝에 겨우 받은 진료.
피검사 결과
수치가 좋지 않았다.
아이가 평소와 다른 것을 먹은 게 있냐는 질문에 기억을 되짚어 봐도.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간식을 먹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쇼크는 대부분 뭘 잘 못 먹거나 벌레에 쏘이게 되면 나오는 증상이라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평소와 달랐던 것은 없었다.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입원 치료를 하며 상태를 지켜봐야 했다.
더불어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만약의 상황도 대비하시는 것이 좋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입원 수속을 하고 보호자 이름에 서명을 하는데 괜히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본인은 위 동물의 입원과 관련하여 예상되는 사고, 예후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받고 이해하였으며 담당 수의사의 판단에 의한 모든 의료행위 및 적정 처리 절차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동의합니다.
위 기간 중 발생되는 모든 경우...(중략)...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음을 서약합니다. 또한, 위탁기간 이후 연락두절이 일주일 이상 지속될 경우, 소유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함에 동의합니다.
응급 상황 시 심폐 소생술 시행 여부 (오, 엑스)
(심폐소생 비용 발생)
위 모든 사항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이해하였으며, 동의합니다.
보자 또는 입원 의뢰인 : (인)
우리 아이 아직 살아있는데 심폐소생술이라니.
심폐소생술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무겁게 짓눌렸다.
믕이와 산책했을 때 찍었던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 보았다.
내가 보지 못한 사이에 무언갈 주어먹었던가.
벌 비슷한 게 믕이 근처에 있었던가.
오늘 산책 괜히 나갔나.
원인이 될만한 것을 하나하나 되짚어봤자 결국 답은 내가 다 잘못했다 였다.
누가 먹지 못할 걸 떨어뜨렸데도. 벌이나 벌레가 널 쏘았대도 결국엔 널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내 잘 못이 크지.
내가 다 잘못했다.
반려동물과 생활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울 때 가장 큰 문제점이 그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주인으로서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있다.
새벽 4시
믕이를 입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겨우 침대에 누웠다.
한 여름임에도 이불이 어찌나 썰렁하던지. 있어야 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슬퍼졌다.
믕이가 입원했던 며칠 동안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이의 건강상태가 아니었다.
자기가 버림받았다고 오해할까 봐.
자기를 버리고 가버렸다고 오해할까 봐. 그렇게 생각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이런 그리운 마음과 별개로
면회는 하루에 한 번, 1분 남짓.
아주 짧은 눈인사로 진심을 전했다.
너를 버리지 않았다.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마음 같아선 주사를 꽂고 있는 아이를 안아 들고 싶었다. 그렇게 낑낑거리는 아이를 달래며 병원 로비에 앉아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아이의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까.
오히려 나의 그런 행동이 믕이와 다른 아이들, 그리고 아이를 케어해주는 분들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매정하게 아이를 외면하고 나왔다.
나흘 후, 믕이는 퇴원했다.
간수치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
통원 치료를 하며 약을 꾸준히 먹였다. 믕이의 간수치는 정상이 됐지만 예상치 못한 다른 질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믕이의 요관에 돌이 끼어있다.
믕이를 오랫동안 봐주셨던 동네 병원으로 가 아이의 상태에 대해 상의를 했다.
요관에 낀 돌을 제거하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을 한다고 100프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에 따라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수술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특히 수컷의 경우엔 수술이 더 어렵고 아이가 많이 아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처방식을 먹으며 돌이 크기를 줄여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달.
믕이는 여전히 처방식을 먹는다. 물과 사료 외에 어떤 간식도 주지 않고 있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나의 하루는 아이의 배변패드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혈뇨를 보게 되면 응급 상황이기 때문이다. 늘 마음을 졸이며 살고 있다. 하지만 믕이의 몸에 칼을 대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으니 이런 마음고생은 조금도 문제 되지 않는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이런 수고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반려동물과 함께 된 순간
치유할 수 없는 큰 병을 앓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강아지는 죽어서 분리불안을 멈출 수 있지만 주인은 강아지가 죽고 난 뒤에도 분리 불안이 계속된다.
우리는 그것을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