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카와 함께하는 엉망진창 일상
개조카 김믕의 까다로움은 어느 정도 나를 닮은 것 같다.
말티즈의 기본값이 까칠함에 있지만
녀석이 머리를 굴리는 것을 볼 때마다 내 배로 낳은 내 새끼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 나를 쏙 빼닮은 건지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치곤 한다.
강아지의 천성은 타고나는 부분이 있지만, 결국에는 어떤 사람과 어떻게 호흡을 맞추고 사회화를 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 몇 달 전 유기견과 관련된 연예인의 이야기가 화두에 오른 적 있었다. 해당 예능을 보지 않았으니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했을 때 유기견과 새끼 강아지는 비슷한 존재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이가 파양 된 것이 단순히 아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사람과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유기견이건 새끼 강아지 건 제대로 된 누군가와 함께 살며 호흡을 맞춰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상대방이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얼마큼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운명이 나뉘게 되는 것 같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상대적으로 강자인 인간이 그들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습성에 맞는 삶을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에 사는 물고기를 보고 바다에 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신혼 초에도 그렇지 않은가 상대방이 늘 사랑스러우면 좋겠지만 어느 순간 현실이라는 벽이 끼어버리면 불타올랐던 마음이 식거나 싸우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상대방과 함께하는 시간이 귀찮아지기도 한다는 것 말이다.
사람의 입장에선 창가 옆에 마련한 배변패드에 볼 일을 봤으면 좋겠지만 강아지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알턱이 없으니 자신이 원하는 다른 배변 패드 혹은 카펫 같은 곳에 볼일을 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 후 주인의 표정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반응을 통해 강아지는 조금씩 조금씩 실수나 판단 착오를 줄여나가게 된다. 주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내가 원하는 패드가 아닌 다른 패드에 볼일을 본다면 혼을 내거나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곳에서 볼 일을 보게 해주어야 한다.
바닥이나 이불에 볼일을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패드에 볼 일을 보겠다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자 한다면 서로의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호흡을 맞춰야 가능한 페어 운동이다 보니 일상은 늘 시행착오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이의 눈빛만 봐도 화장실이 가고 싶은지 물이 마시고 싶은지를 알아챌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면 이보다 더 짜릿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연애 드라마로 시작해 시트콤으로 살다 휴먼 다큐로 마무리하는 장르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