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독도 여행기(2020.11)-1편
울릉도, 독도.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뱃멀미와 예상치 못할 기상이변을 감수하고 가야 할 만큼 함부로 도달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불반도의 건들지 말아야 할 성역, 3대가 덕을 쌓아야만 갈 수 있는 곳, 독도. 우리는 독도를 들어가냐 들어가지 못하냐를 두고 본 적도 없는 조상님을 소환하고는 한다.
나 또한 오래전부터 울릉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짧은 여름휴가 기간 동안 뱃멀미로 생고생을 할바에는 안정적인 여행지를 택해 안락한 휴식을 보내고픈 욕심이 컸기에 이 두 곳에는 먼 미래에나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운명의 수레바퀴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돌아가듯 갑작스러운 퇴사로 예상보다 빨리 울릉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울릉도행을 결정했다.
비행기 한 대 뜨지 않는 곳이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보니 자유여행보다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패키지여행은 학교 다닐 때 이후로 처음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단체 생활을 싫어하고 다양한 연령대, 이를테면 중년 어른들의 쓸데없는 오지랖을 상대하기 싫은 마음에 늘 여행은 자유 여행을 고수해 왔다.
살면서 제일 영양가 없는 생각이 ‘나는 절대로 그렇게는 안 해.’이고, 3n 년을 살다 보니 ‘나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니 세상살이가 참 그렇게 편할 수 없더라. 쓸데없는 고집이나 꼰대 마인드를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고집 그만 부리고 패키지여행 한 번 떠나보자, 혹시 알아? 낯선 만남, 낯선 여행지, 로맨스, 성공적.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디폴트 값이 그렇지 뭐.
갑자기 일정을 잡다 보니 울릉도행 패키지도 몇 개 남지 않았다. 때는 11월. 곧 울릉도, 독도 패키지가 마감되는 시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11월 13일발 2박 3일 울릉도 패키지를 예약할 수 있었다. 여행사 상담직원은 수화기 너머로 접안시설 파괴로 독도 입도가 불가능함을 다시 한번 주지 시켰다.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의 육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프로 계획러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말하나 마나 한 주의사항이었다. 이미 수십 번 ‘입도 불가능, 선회 관광’과 ‘내년에 입도’를 저울질 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사실 입도를 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독도 그 자체가 중요했다.
2박 3일 일정 중 배를 타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기 때문에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아무래도 ‘뱃멀미’였다. 많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울릉도행 배 멀미가 얼마나 지독한지 강제로 알게 되었으니 ktx만 타도 멀미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사실 배를 타는 것은 도전에 가까웠다. 같이 가는 일행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에게 몸을 의탁이라도 했을 텐데 투어버스를 타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나의 팀원들에게 배팅을 하기엔 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우리 친구 네이버를 통해 알게 된 뱃멀미 극복법은 다양했다. 밥을 너무 많이 먹지도 또 굶지도 말 것, 출항 30분 전에 멀미약을 먹을 것, 음악은 듣지 말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을 것, 눈을 감고 있을 것, 그냥 밤을 새우고 배에서 기절할 것. 음, 부족했다. 마침 배를 자주 타는 사람을 알게 되어서 그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조언에 따르면 배를 많이 타보고 많이 토해보고 몸을 적응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 답은 먹토 먹이구나.
디데이 마이너스 일. 출발 8시간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약국에 가서 멀미약 3병을 구매했다. “저 내일 울릉도 가요. 독도 들어가려고요.”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괜히 지껄여 본다. 그냥,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비장한 마음을 품고 편의점에 들어가 도시락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2박 3일 일정이지만 짐이 많다. 섬의 날씨는 예측불가이고, 또 나는 보부상이니까. Hoxy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면 어쩌지, 근데 근처에 편의점이 없는 거야, 거기는 섬이니까 편의점도 일찍 닫겠지? 지혈이 안되면? 상처에 세균이 들어가면 어쩌지? 아, 나 파상풍 주사 맞았지. 파상풍 주사 맞은 다음날 팔이 엄청 아팠는데, 사실 그거 우리 믕이가 맨날 물어서 맞았던 건데. 그때 맞길 잘했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 대일밴드를 챙기자.
고작 2박 3일 여행인데 누가 보면 울릉도 접수하러 가는 줄 알겠다. 또 나만 심각하지.
새벽 4시. 잠실역 4번 출구. 롯데마트 앞 집결.
잠실은 새벽인데도 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다녔다. 누가 시비 걸까 봐 일부러 최대한 다크 다크 한 복장을 입고 왔는데,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정시에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그러니까 잠재적으로 나를 도울(?) 수도 있는 나의 팀원들은. 버스에 실려 가로등도 제대로 켜지지 않은 도로를 따라 묵호항으로 향했다.
오전 6시 47분. 동해시 묵호항.
추위에 떨며 실려 실려 온 묵호항. 강원도는 거의 10년 만에 온 것 같다. 아, 이곳이 흔한 강원도의 바다 마을인가. 산토리니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마을은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타야 할 울릉도행 배는 9시 출항 예정이었다. 여객 터미널도 열지 않은 시간. 2시간 동안 ‘알린’과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알린.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 같은 존재랄까. 나는 여행 동반자로 ‘알린’을 선택했다.
오전 9시. 출항. 씨스타 1호.
집에서 출발한 지 6시간 만에 울릉도행 배를 탈 수 있었다. 고생스러운 길이었지만 밤을 새운 덕분에 배에서 무사히 기절을 할 수 있었다. 파도가 잔잔했다. 마치 나의 방문을 환영하듯. 3시간 동안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비교적 안전한 항해를 했다. 사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찍기 시작했다. 정신을 붙잡고 눈을 떠보니 저 멀리 섬이 보였다. 울릉도였다. 아, 결국 사고를 쳤구나. 나란 인간, 여기까지 왔어. 450명 정원의 씨스타 1호는 그렇게 울릉도에 무사히 안착했다. 집에서 출발한 지 9시간 만의 일이었다.
오후 12시. 사동항. 해바라기 앞에서 집결.
나의 2박 3일 팀원들이 누구인지 사동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노년의 부부, 아들, 그리고 그의 이모. 나를 포함한 우리 투어의 멤버는 총 5명이었다. 모든 퍼즐은 맞춰졌다. 진실은 단 하나. 잠실역 셔틀버스의 인원, 씨스타 1호 안의 인원은 서로 다른 투어 회사 여행객이었고 사동항에 도착해서야 각자의 가이드를 따라 뿔뿔이 흩어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5명이 묵는 숙소에 각자의 방에 짐을 풀고 지정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안내에 따라 큰 관광버스에 탑승하니 버스 가득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누구신지… 잠실에서 본 인원들과 다른 낯선 사람들과 함께 울릉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알게 된 사실인데 버스 안에 타고 계셨던 그 낯 선분들은 우리와 같이 묵호항에서 울릉도로 온 인원이 아니라 후포항에서 울릉도행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던 것이었다. 이거시 바로 말로만 듣던 K-패키지 투어인가?!
숙소가 있던 도동항은 흔히들 생각하는 조용하고 소박한 어촌마을의 모습이었다. 세로로 길게 형성된 지형, 좁은 마을의 골목, 오밀조밀 모여있는 건물들, 도동항을 감싸고 있는 거친 암석들. (최근에 본 영화 ‘루카’의 배경과 닮은 풍경이었다.) 그중 으뜸은 역시 오징어. 빨래보다 많이 널려있는 오징어는 울릉도의 특산물이 왜 오징어인지 짐작하게 해 줬다.
울릉도는 도로가 좁아 대부분이 일방통행이다. 초보 운전자가 렌트를 하면 난감한 상황이 꽤 벌어질 듯. 육지에서는 공사 중인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일방통행을 하지만 여기는 당연하다는 듯이 신호에 맞춰 차량들이 대기하고 통행하고 울릉도만의 시간에 따라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갔다.
도동항이 울릉군청 같은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면 저동항은 천금 수산, 독도 문방구, 저동 커피 같은 인스타 핫플이 모여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개인 여행객들은 이곳 저동항에 숙소를 잡는다고 한다. 저동항에는 밤새 오징어를 잡아온 선박들이 오징어를 거래하고 그 자리에서 해체하는 거대한 수협활어회센터가 있다. 울릉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매장이라고 한다. 첫날에는 오징어 거래 후 남은 오징어 눈알을 청소하는 어민의 모습만 보였다. 눈알 파티.
관광버스 기사님은 한두 번 인솔해본 것이 아닌 솜씨로 좁은 도로를 운전하며 울릉도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그분의 입담에 맞춰 창밖의 풍경은 조금씩 바뀌었고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자연은 특유의 거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거침. 울릉도를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는 ‘거칠다.’였다. 제주도가 인간의 손길을 탄 거대한 암석이라면, 울릉도는 아직 인간의 마수(?)가 뻗치지 못한 영화 아바타 속 미지의 행성이었다. 인간은 자연의 순수를 동경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우위에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매년 겪는 태풍 하나에도 번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의 것(도로, 방파제, 터널)을 보면 한없이 하찮은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밤 9시. 숙소.
사실 나는 인프피(INFP)다. 여행 첫날. 나는 숙소에서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우선 전날 밤을 새운 영향도 있겠지만 내가 원해 울릉도까지 왔으면서 뜬금없는 향수병 비슷한 것이 생길락 말락.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인프피가 그렇다. 인프피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성격이 지랄 맞다. 내가 내 비위 맞춰주기가 너무 힘들다. ;_;
오전 6시. 숙소.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향수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원래 인프피가 그렇다. 이해하려고 하면 골치 아프다. 7시까지 지정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야 했다. 드디어 독도에 가는 날. 날이 맑다. 전날의 우울감은 어디에 갔는지 도동항의 골목길이 우리 동네처럼 친근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전 11시. 사동항.
오전 관광 일정을 소화하고, 독도행 배에 탑승하기 위해 전날 입도한 사동항으로 향했다.
손마다 태극기가 가득. 나는 안 샀다. 꾸깃해지는게 싫어서. 자리에 앉자마자 첫날 뱃멀미를 안 한 노하우를 살려 또다시 기절했다. 2시간 뒤. 분주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드. 디. 어. 불반도의 급발진 버튼. 두유 노우 독도에 도착했다. 이 정도의 날씨와 파도라면 당연히 독도 땅을 밟아볼 수 있었지만 9월 초에 울릉도를 강타한 태풍 ‘마이삭’으로 인해 접안시설이 파괴되었고, 입도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30분 동안 동도와 서도를 도는 선회 관광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들 볼멘소리를 했지만 나는 그런대로 만족했다. 뱃멀미를 하지 않고 잔잔한 파도를 타고 여기까지 안전하게 온 것은 모두 내가 공덕을 잘 쌓은 덕분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 눈치 빠른 캐릭터가 제일 오래 살아남 듯. 나도 그렇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밖으로 나갔다. 재빠른 행동 덕분에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문화시민이지. 만족할 만큼 많이 찍은 것은 아니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양보했다. 6.25 때 난리는 난리가 아니었다.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독도를 찍기 바빴다. 옆에 사람을 밀치고. 광적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독도 입장에서는 조금 무서웠을 것 같다.
아쉬운 30분의 관광 끝에 배는 뱃머리를 돌렸다. 왠지 모를 자부심이 생겼다. 배를 타고 독도까지 왔다는 배 부심.
독도 관광(선회 관광 포함)을 한 관광객은 승선권만 있으면 독도 명예 시민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나도 이제 독도 시민이다. 이중 시민권자.
5년 뒤에는 울릉도에 공항이 생겨 지금보다 많은 관광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울릉도 관광은 배다. 배를 타고 울릉도를 가지 않은 사람은 신이 아니다. 친일파다.
오후 4시. 저동항.
4시간이 넘는 독도 여행 끝에 드디어 맞게 된 자유시간. 도동항은 숙소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지만 저동항은 늘 관광버스를 타고 지나다니기만 했기 때문에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었다.
저동항에는 유명한 곳들이 많았다. 독도 문방구, 저동 커피, 천금 수산. 이 세 곳은 꼭 들러보고 싶었는데 그중 천금 수산은 트럼프 방한 때 만찬에 오른 ‘독도 새우’를 파는 맛집이었다. 나는 계획 파라 사전에 천금 수산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했다. 메뉴판을 보니 여느 관광지가 그러하듯 이곳 또한 대부분의 메뉴가 2인 세트가 기준이었다. 아무래도 독도 새우는 일반 다른 새우들과 다르다 보니 2인 세트가 12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대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독도 새우는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에 2인 세트를 사려했다.
하지만 사전에 조사한 영상 중에 독도 새우 세트의 새우들은 모두 살아있는 생새우였고 아무리 혼자 온 여자 손님이라 할지라도 그 살아있는 새우의 껍질을 까서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그 말인즉슨, 내가 그 많은 살아있는 새우의 머리를 따서 꿈틀거리는 발을 무시하고 내 목구멍으로 넣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 난 평화주의자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새우를 해체하는 영상을 봤다.
불가. 결국 새우튀김으로 합의했다.
오후 5시 30분. 도동항.
새우튀김을 먹는데 밥이 빠질쏘냐. 밥을 사기 위해 ‘이사부 초밥’에 들렀다.
독도 새우와 초밥의 만남. 친일파인 듯 밀정인 듯. 그 시국과 코 시국의 만남. 딴짠단짠단 짠.
나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 날 것은 먹지 못하지. 주방장님께 부탁을 해 그나마 먹을 줄 아는 붉은 것들로 포장해왔다.
오후 6시. 숙소.
식탁이 없는 조그만 나의 방. 캐리어 위의 한일전. 독도 새우냐 초밥이냐.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보자면 역시 독도 새우가 최고였다. 지금까지 먹은 새우는 쓰레기가 아녔을까 할 정도였다. 생새우와 초밥의 대결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독도 새우는 튀김인데도 엄청난 풍미를 자랑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입안 가득 고소함과 쫄깃함이 촥. 새우가 아니라 고기를 먹는 것 같았다. 혼자 그 많은 새우와 초밥을 다 먹었다. 그 정도의 맛이었다.
밤 8시 30분. 숙소.
동해안 오징어 포획량이 늘었다는 8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벌써 육지.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24시간 전에는 집에 가고 싶어 우울했던 주제에. 정말 나란 사람, 맞춰주기 힘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