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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Nov 05. 2021

<이터널스>그렇게 망작일까?

가자, 진실의 방으로



*스포가 포함된 글입니다.





 이터널스를 보러 갔다. 마요미 보러


 사실 듄(DUNE) 뽕을 심하게 맞은 터라. 듄이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마블인데, 우리의 10년 우정이 있지. 하는 생각에 개봉일에 맞춰 미리 예매를 해두었다.



 아무래도 지금 코시국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중앙 좌석보다는 2명씩 일렬로 앉는 구석 자리를 선택하게 됐다. 대부분 이 자리에 한 명이 예약하면 바로 옆자리에 굳이 누가 앉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쾌적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블 영화답게 극장 안은 사람들로 꽉 찼고 어느 순간 내 바로 옆 자리도 누군가가 발권을 해놓았다는 예약불가 표시가 되어있었다. 영화 시간이 되어 자리로 가보니 웬걸.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 남자아이가 엄마 혹은 아빠로부터 선물 받은 듯한 장난감 가게 쇼핑백을 소중하게 꽉 쥔 채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 시국에 옆에 누군가 앉는다는 부담감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극장 안이 조금 후덥지근했기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외투를 벗었고, 후리스를 입은 옆자리 꼬마 신사에게 '더우면 외투 벗고 봐도 돼.'라고 할 뻔...(직업병) 했으나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어린이 세계의 국룰이기때문에 오지랖을 잠시 넣어두고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엄마 혹은 아빠가 극장 어딘가에 계시겠지만, 이 아이는 홀로 모르는 사람 옆에 앉아 한껏 경직된 상태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임시 보호자'가 돼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직업병, 155분 동안 임보 함.)



 아이는 영화가 상영되었던 약 155분 동안 단 한 번도 엄마를 찾거나 산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초등학생 저학년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쿠키 영상 2개도 야무지게 챙겨 본 꼬마 신사는 자신의 짐을 챙겨 사람들 틈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여즘 애긔들은 혼자서도 영화 잘 보는구나. 이 할미는 대학생 때 처음으로 혼자 봤는데...








 개인적인 감상평을 말하자면 이터널스는 '다양성을 존중' 하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이터널스란 존재가 무엇이며 지구에 왜 왔는지, 그들이 지구인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였고, 어떤 것을 전파하였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친구이자 가족으로 함께했던 그들이 애정, 애증 관계로 인해 틀어지고 결국엔 신념마저 바꿔버리는 선택을 하게 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극 중반에 나온 BTS의 노래 제목이 <친구>이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각자의 신념과 뜻에 따라 움직이는 능동적이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해가는 모습이 1편 다운(인물 소개, 캐릭터 정립)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인물 소개로 인해 극이 지루하다는 평가는 시리즈 영화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히어로 캐릭터에, 이 정도 네임밸류를 갖고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이 정도 전개를 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연출력에 박수를 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반응과 평점이 사실은 놀랍고 당황스럽다. 이게 이 정도로 비난받을 영환가?

특히 영화에 대한 비난 중에는 소수자에 관한 것들이 대다수였는데, 이터널스 중 한 캐릭터가 동성 부부라는 설정과 그 부부의 키스신에 대한 장면 때문에 나온 논란이었다.



 사실 동성애 부부의 등장 씬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지구를 구하러 가야 하는 배우자가 걱정되는 상대 배우자의 모습만 보였을 뿐이다.


목숨을 걸고 세계를 구하러 가는데 눈물의 이별 키스가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키스신이 나왔던 장면에서는 '우왕 쩐다. 이걸 상업영화에서 해내다니! 역시 마블.' 이라며 마블 예찬만 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다른 커플의 진한 베드신과 키스신이 나를 당혹시켰다.


'이거 12세 맞아?'


옆의 꼬마 신사의 눈을 가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게 12세가 맞나. 어떻게 하지. 전전긍긍.

나의 동공 지진과는 별개로 마블 치고 진했던 애정신은 계속됐고, 옆 자리 꼬마 신사의 눈치를 슬쩍슬쩍 보게 됐다.



파스스... 하얗게 불태웠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 부부의 키스신 때문에 이 영화가 15세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이성애 커플의 배드신이 12세인 건 말이 되고?







 동성 부부의 키스신이 상업 영화에 나올 수 없는 시대라면 아시아인인 마동석도 마블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을 거다. (과거엔 그랬었고.)


 마동석이 마요미이고 아트박스 사장이고 진실의 방을 좋아하는 형사건 아니건, 그것은 우리만의 생각인 것이고, 할리우드는 그 배우가 어떤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건 어떤 사람이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알았어도 그냥 애이시안 마초맨 정도로 웃고 넘겼을 듯.)




 사실 놀랐다.

 마동석이 꽤 많이 나와서. 그리고 꽤 멋있게 나와서. 그리고 잘 싸워서.

마동석이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멋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마초 캐릭터를 어떻게 소비하고 대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벼르고 갔다. 마동석을 엄청 좋아하거나 팬은 아니지만 마동석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잘 드러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영화를 보러 갔다. 희화화하거나 티켓 셀러였다면 나 또한 이번 영화를 비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로이 자오는 달랐다.

 사회적 소수자들을(아시아, 장애인, 동성애) 희화화하지 않았다. 그들을 불쌍한 존재로 만들거나 가볍게 소비하지 않았다. 마블같이 사이즈가 큰 상업 영화에 소수자들을 캐스팅하였고, 다수자들과 다름없이 캐릭터를 소비하고 드러내었다. 소수자건, 다수자건 그들은 자신의 무기와 강점을 가지고 신념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길가메시의 '마동석'과, 마카리 역의 '로런 리들로프'였다. 한 명은 아시안인이고, 한 명은 청각장애인이다.




 마동석 출연을 기대했던 팬들에겐 만족감을 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마동석 싸울 때 내 모습. 보여줘! 마!!



마동석이 나와서 불꽃 싸다구를 때릴 때마다 통쾌했다. 보이느냐 K-싸다구의 위력.




감독은 그를 하나의 캐릭터로 돋보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동석은 보여주었다.


보아님 웃으셨답니다. /메인 댄서의 자리는 마요미 당신의 것.







 Q. 산만했다. 지루해서 집중을 못했다. 기존의 마블과 달랐다.


 A. 내 옆에 초등학생은 집중해서 잘 보던데.




 기존의 마블 스토리와는 확연히 다른 색깔과 속도의 영화였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해 실망하는 팬들이 많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이돌도 10년 동안 비슷한 패턴, 비슷한 컨셉이면 욕먹고 인기가 떨어진다. 10년 동안 보았던 덩치 큰 우락부락 백인 히어로, 치명적이면서 섹시한 여전사는 이제 진부해졌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미국의 자본력을 앞세운 CG나 배우 빨, 스토리텔링 등으로 어떻게든 버텨왔던 마블이지만 이것이 앞으로의 10년에도 먹힐지는 의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페이즈 4의 막이 올랐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패턴의 캐릭터와 그들의 삶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생각이 정말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Latte is horse(라떼는 말이야...)나 꼰대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기계만, 정보 통신만, 세계정세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Q. 동성부부의 키스신을 본 어린아이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겠냐.  

A.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랑' 이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의 사랑, 남자와 남자의 사랑, 아시아인과 백인의 사랑,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소수자의 애정행각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불편하다고 표현하는 것.

모두 하나의 인격체인 그 사람의 자유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뒤쳐지는 것도 그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흐름에 따라 진화하지 않는 종은 도태된다.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으니,

 나 또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온 세월을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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