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필 Jan 16. 2022

#8 종로에서 신과 함께 1

내가 좋아하는 것(3) 종로


스물일곱의 나이에 가출을 해 간 곳은 종로였다.




왜 하필 종로였을까.



종로에 지인이 사는 것도 아닌데 나는 멀고 먼 종로에 가는 것을 수고스럽다 생각하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의 기준이 한강뷰 아파트라면, 나는 한강뷰 대신 궁세권을 택하겠다.

꼭 좋은 집이 아니어도 좋다.

좁고 낡은 집이라도 괜찮으니 한 번쯤은 옛 가옥이 켜켜이 쌓여있는 종로, 그리고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가까운 궁세권에 살아보고 싶다.


출근길에, 혹은 산책길에 만나는 아침 궁세권은 밤과는 다를 테니 말이다.





서울에서 가장 기운이 센 곳이 광화문 일대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풍수지리학적인 측면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니 차치하고서라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곳은 맞는 것 같다.



강남이나 광화문이나 도로가 넓고 오고 가는 차가 많은 것은 매한가진데 왜 광화문 일대만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좋은 시기가 10대였다면 지나가는 자동차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은 광화문 일대라 할 수 있다.













재작년이었던, 2020년 11월의 조계사엔 핑크 뮬리가 한창이었다.









만신창이가 돼서야 퇴사할 수 있었던 그곳은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곳이었다. 퇴사일까지의 과정도 정말 기가 막혔는데, 질투라는 감정이 사람을 저렇게 추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던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곳도 그곳이었다.



이런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회복하기 위해 택했던 것은 템플 스테이였다.

종교가 없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조계사는 워낙 내가 자주 들렀던 유적지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 경험차, 멘탈 회복차 1박 2일 템플 스테이를 신청하게 됐다.





오후 2 30 사찰 안내소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 문진표를 작성하고 방을 배정받았다. 내가 선택한 템플스테이는 '휴식형 템플스테이' 였는데, 발우공양과 같이 도전하기엔 망설여지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패키지였다. 발우공양은 아무래도 코시국에 하기엔 어려운 일이니 아마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하지 않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4층 구석진 곳이었다. 워낙 잠자리를 가리기도 하고, 템플 스테이에 대한 약간의 편견 같은 것도 있었던 터라 내가 1박 동안 묵게 될 숙소가 어떤 곳인지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보통 템플 스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창호지 붙은 옛 한옥에 숟가락을 자물쇠 삼아 달빛을 그림자 삼아 올빼미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곳은 서울 종로 한복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였다.





이렇게 넓고 깨끗한 방에서 보는 대웅전 뷰라니














템플 스테이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108배



사실 개인적으로 108배를 하고 싶어서 신청한 것도 있는데, 실제로 내가 아는 지인분은 종교가 없는데도 관절에 좋다며 운동삼아 하는 분도 계시니  정도면 108배가 확실히 불교의 꽃이라   있겠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쓰이는 것이니 말이다.



말로 들었을  108배가 엄청 힘들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땀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생각보다 참여자는 저조했는데, 나 포함해서 세 분정도만 108배를 하기 위해 약속된 프로그램실에 집합했다.


1배를 할 때마다 스크린에는 다양한 문장들이 나왔다.





수행문 안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이라.

없는 말을 지어내어 상처 줬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퇴사를 했으니까.






108배를 하는 도중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그분도 많이 아파보셨을 거다.








용서란 게 무엇일까.










그 날밤도 여느 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퇴사한 지 5일이 채 되지 않았고, 몇 달 동안 자다가도 숨이 쉬어지지 않아 깨기를 몇 번.

그날도 가슴이 답답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 상처 줬던 그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전 직장 상사는 옛날 사람이었다.



나이가 아니라 사람을 부리는 방법이 옛날 방식이었다.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고 그것이 기강을 잡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그 사람.

자신의 방식과 생각에 결과가 조금도 부합하지 않으면 특히 자신과 친한 사람이 아니면 면전에 대고 비난과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







며칠 전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퇴사 직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은 나를 반가운 지인인 것처럼 알은체를 했다.



황당했다. 나에게 그런 모욕과 욕설을 하고선 그것 때문에 내가 나간 것을 뻔히 아는 사람이 그런 반가운 얼굴을 하다니. 독한 말로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과거는 새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는 말이 진짜였다.




어이가 없다는 눈빛을 보내니 그의 표정에서 역으로 황당하다는 내색을 비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질러대는 욕설과 없는 말을 지어내 오고 갔던 험담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을 생각은 없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꼭 용서해야 할까.






퇴사 날까지 나는 웃음과 예의를 잃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그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하직원을 괴롭힌다고 하더라도 상사나 연장자를 들이박는 순간 예의 없는 사람, 싹수없는 별종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사필귀정.









결국 그 사람은 돌고 돌아 본인이 한만큼 고대로 돌려받았다.

나 말고도 적은 많았으니 나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간혹,


과거의 일은 잊자. 잊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뺨을 맞은 게 본인이라면 그렇게 쉽게 잊으라 말할 수 있을까.




잊고 잊지 않고는 맞은 사람이 결정할 일이다.

용서 또한 마찬가지다.







108배를 하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절대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고.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지는 않더라도 용서는 하지 않겠다고.







우리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니까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간혹 조계사에 들른다.




마음이 괴로울 때, 나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럴 때마다 간절히 기도한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모략하는 사람들로부터 불의에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을 달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7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