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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Mar 27. 2022

#9 종로에서 신과 함께 2

내가 좋아하는 것(3) 종로



지난 이야기)



2021년 12월 24일

생일을 맞아 생일 케이크 예약을 시도해 보았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특수에 전화한 곳마다 예약에 실패하였고... 결국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종로에서의 호캉스행을 결정하고 말았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도 틈만 나면 가는 곳이 종로다 보니, 생일 케이크 대신 선택한 호캉스를 종로에서 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7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 편 참고















내가 원했던 호텔의 조건은 가격적인 부분에서 부담이 되지 않고,  조계사에서 가까우며, 5호선 광화문역에서도 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도에서 광화문 근처 호텔을 검색해보았다.






딱 한 곳.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곳.


호텔은 조계사 옆에 위치해 있어 객실에서도 조계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날짜를 고를 차례다.

하필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이었다. 1월 1일도 마찬가지.

이용객이 많은 크리스마스엔 호텔에 가기 싫어 하루 빗긴 12월 26일 일요일에서 다음날 27일 월요일까지 1박 2일 코스로 예약을 했다.


당시는 연말이었고 성수기의 다른 호텔들은 평소보다 비쌌다.




제주도 여행기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철저한 계획 파다. 임기응변에 약하기 때문

호캉스를 떠나기 전날까지 여행 일정 수정은 계속되었다. 가고 싶은 곳 중 일요일에 휴무를 하는 곳들이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운영시간이 단축된 곳도 많았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번만이 날은 아니니 여는 곳 중 최대한 가보고 싶었던 곳을 지도에 넣어보니 한가득이 되었다.










12월 26일 당일 아침.


날이 너무 추웠다. 뽐을 좀 내보려고 했는데, 최대한 두툼한 옷을 골랐다.


체크인 시간이 15시부터라 부지런을 떨려고 했는데, 그만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안국역에 도착하니 15시.

해당 숙소는 체크인 줄이 길기로 악명이 높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돌아다니다 천천히 들어가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마침 가보고 싶었던 브런치 집의 마감시간이 16시 30분이었고, 점심시간은 훨씬 지났기 때문에 여유로운 식사가 가능할 거라 판단됐다.

 








둠칫 둠칫.

또 시작이다. 종로만 오면 생기는 주체할 수 없는 내적 환호성.

종로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종로만 오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지나가는 새 한 마리, 지나가는 녹색 버스.

어디서나 볼 법한 무언가가 종로에서는 늘 특별하다.





브런치 집도 마찬가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있을 법한 인테리어와 메뉴인데 종로 뽕을 맞은 나에게는 이런 작은 것에도 비용 대비 최대의 만족감을 준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행복한 삶이라니 이 정도면 가성비가 좋은 인간이 아닌가.



얼죽아에게도 힘들었던 그날의 추위



끼니를 때우기 위한 밥이 아닌, 한 조각 한 조각 맛을 느끼며 주위의 풍경을 관찰하는 여유.

종로에서의 브런치 한 끼.







가을 이었... 아니 겨울이었다.













종로의 매력은 역시 옛 문화와 건축들이겠지만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나 홀로 생일 호캉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다 누리면서 놀다 가겠다.







그렇게 종로 뽕 맞고 구매 한 충동구매 물품.



종로 브런치 식당 갬성


마스킹 테이프 FLEX~

나쁘지 않은 소비였다.





원래 물건을 살 땐 열 번을 고민하고도 사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생. 일. 호. 캉. 스 하는 날이니까~







내일 출근 시간은 오후 1시.

현재 시간은 오후 4시.

출근까지 남은 시간 앞으로 21시간.











안국역은 남으로는 인사동, 동으로는 흥선대원군의 고택 운현궁, 북으로는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이 있기 때문에 전통이 그리울 때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20201011 광화문

우리의 전통 건축 기법은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다른 나라의 건축기법과는 달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건축물이 주를 이루었다. 자연과 공존을 도모 한 우리 조상들의 사고방식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길을 걸을 땐 새로 올라간 건물이 주위 환경과 얼마나 조화를 고려하여 올라갔는지를 보는 편이다.



독재 정권 시절 우리의 가치는 조화와 공존보다는 획일화된 개발에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개발엔 야만의 감성이 가득했다. 개발이 나쁜 것은 아니라지만 공존할 수 있는 개발은 돈이 들고 시간이 든다. 야만의 시대에 공존이란 키워드는 사치일 뿐. 그나마 보존된 건물이 대견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전통만 가득하던 종로에 어느 순간부터 작은 변화가 생겼다.



전통의 거리에 저세상 힙이 들어온 것이다.


파란 병 커피
31가지 아이스크림 집
매듭 도넛



안국역엔 이런 힙한 상점과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전통이 살아있는 동네에 이질감 없이 들어선 외국 음식 가게라니. 개화가 시작된 조선의 모습이 이랬을까.




이 정도 유명세를 갖고 있는 브랜드라면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올릴 법한데, 전통의 도시에 이질감 없는 모양새를 유지한 것은 마케팅 요소로 탁월한 선택이다.



어디서나 볼 법한 매장이 아닌, 이곳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것들.

그것이 전통의 도시 종로가 선택한 현대적인 개발이다.









과거와 현대의 공존은 이뿐만이 아니다.



안국역에 도착하면 종로가 어떤 곳인지, 우리가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는 스크린의 물결이 방문객을 반겨준다.


현대의 기술을 이용해 역사의 현장과 감성을 재현해내다.













출처 : 평창올림픽 개회식 SBS 중계화면


이로운 기술의 개발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안국역 근방엔 작은 평수임에도 끊임없이 방문하는 방문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는 특별한 곳이 있다.





카페 레이어드(cafe layered)




인스타 핫플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생일이 먹혀 생일 케이크 하나 얻지를 못했으니 뒤늦게라도 소소한 케이크를 준비해보고 싶었다.






여기 있는 것을 한 번씩 맛보려면 몇 번을 방문해야 할까.




테이블은 이미 방문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채워졌던 테이블이 비워지면 다음 방문객을 위한 테이블이 정리되고 단장됐다.




이곳의 인기는 굳이 안에 들어와 확인할 것도 없었다. 매장 밖엔 이 성지를 느끼고 즐기기 위한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으니까.



근방에 있는 더 유명한 베이글 집은 웨이팅이 1시간은 걸린다 하여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곳은 포장 손님에 한해서 출입이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나마 서 있을만한 공간도 달콤한 케이크와 스콘을 눈으로 즐기기 위한 관람객들로 인해 가득 차 있었으니 미술관 같은 차분한 여유로움은 느낄 수 없었다.



스콘 맛집이지만 어쩐지 케이크에 눈이 더 갔던 이유는 내 머릿속에 콕 박혀버린 생일을 놓쳐버린 생일자의 한때문이었다.





낯선 곳을 방문했을 때 실패 없는 선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사전에 조사해오기운에 맡기기. 이 두 가지가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운에 맡기기.

철저한 계획 파지만 가끔은 그런 조사마저도 겉치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원래의 나를 잊어버리고 평소엔 하지 않던 새로운 선택에 도전해보기이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중 덜렁 남아 있는 한 녀석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못나지도 않은 녀석이 어쩌자고 혼자 남아 있는 건지.








녀석을 두고 오면 내내 마음에 걸릴 것 같아 오늘 밤 나의 호캉스 초대 손님으로 녀석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체크인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로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설레는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까 샵에서 보조해주는 사람 있잖아. 정말 안돼 보이드 라."


"체크인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짐 맡겨놓고 밥이라도 먹고 올까?"


"아빠가 체크인하러 갔어!"






연말 특수에 크리스마스 특수. 가족끼리 연인끼리 한 해의 마지막을 함께 즐기러 온 사람들.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려 겨우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하던 어둠 속의 조계사.



6시밖에 안 된 시간이었지만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짐을 대강 풀어놓고 남은 호캉스 일정을 위해 서둘러 호텔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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