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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Feb 20. 2022

<미나리>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어

영화 <미나리> 리뷰




 내가 어렸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시기 즈음부터 드림은 더 이상의 드림이 아니라는 사실도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 이 글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빠인 '제이콥(스티븐 연 분)'은 큰 꿈에 부풀어 있다. 그는 미국에선 자신이 꿈꾸던 큰 일과 큰돈이 가능하다고 믿는 '아메리칸드림'에 젖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큰 일이란 'Garden'이 아닌 'Big Farm'에서 매년 3만 명씩 이주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채소를 팔아 큰돈을 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꿈에 가족들의 동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내 '모니카(한예리 분)'는 남편 말만 믿고 따라온 아칸소주(주)에서 마주한 새 집(이라 부르고 wheel이 달린 이동식 트레일러)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집은 집이라 부를 수 없이 몹시 낡았고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에도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위태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그 집의 상황처럼 제이콥 가족의 균열도 조금씩 시작되게 된다.


 제이콥의 원대한 꿈과는 별개로 현실적인 부분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집의 위치는 도심지역과 멀기 때문에 심장이 약한 아들 '데이비드(앨런 김 분)'에게 응급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직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당장 베이비 시터를 구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내 모니카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이 어떤 일을 하는 데는 다 그 이유가 있다.



 우리 세대라면 또 그 이전 세대라면 많이 듣고 자랐을 이 말. 가부장적이었던 우리네 아버지 세대들은 오로지  떳떳한 가장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계획한 무언가가 성공해야 가능하다고 믿었다. 자신이 하는 일엔 늘 이유가 있고, 계획이 있기 때문에 잠깐의 희생과 고생은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던 그 시절. 하지만 가족이란 단순히 남편, 부인, 자식 1, 2로 구성된 집합이 아니다. 살과 피가 섞여 가족이 되지만 그들은 엄연히 개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입장과 상황이 다른 엄연한 객체이다.


 


 가장이라는 이름 하에,  제이콥은 자신이 벌이는 계획에 대해 모니카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허리케인 같은 말싸움을 벌이게 된다. 싸움 후, 부부는 한국에 있는 모니카의 엄마 '순자(조여정 분)'의 미국행을 합의한다. 균열이 가던 가족이 유일하게 합의한 내용이 순자의 미국행이었다.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만큼, 실제로 당시 미국 이민자 가족의 삶과 그들이 어떻게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적응했는지, 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듯 보여준다.



부부는 평일에 공장에서 일한다.

그들이 일하는 공장은 흔히 말해 '쓸모 있는' 병아리를 구별해 내는 감별사들이 일하는 곳이다.



실제 당시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눈이 좋고 손이 빨라야 할 수 있는 병아리 감별사 일을 했다고 한다. 암컷 병아리는 알을 낳을 수 있지만 수컷 병아리는 별다른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쓸모없는 존재'였고, 이들의 성별을 최대한 빨리 감별해 내는 일은 농장주의 입장에선 중요한 일이었다. 쓸모없는 수컷에게는 먹이 한 톨, 식수 한 모금조차 아깝기 때문에 생산성이 있는 쓸모 있는 암컷은 살려두고 남은 것은 모두 폐기한다.





그렇게 분류된 수놈들은 공장 한편에서 산채로 폐기된다.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자 아들 데이비드는 아빠 제이콥에게 연기의 정체를 물어본다.










수놈들을 저기서 폐기하는 거야.






한국말이 서툰 아들 데이비드는 '폐기'가 뭐냐고 물어본다.







제이콥은 빨아들이는 담배처럼 씁쓸한 표정으로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한다.







수놈은 맛이 없어. 알도 못 낳고, 아무 쓸모없어.
그러니까 우리(남자)는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야.






이주민 가족의 가장으로서 그가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는지 그 무게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자신도 폐기되는 쓸모없는 수놈이 되지 않기 위해 그는 무리해서 농장을 사들였고, 가족들을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아내 모니카와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간다. 대화 없이 진행되는 일로 인해 그들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갔다.




그 당시 여자와 남자의 입장 차이가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여자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가족과 모든 것을 공유하며 기쁨과 슬픔, 고통을 모두 나누고 싶어 하지만 남자는 가족들과 그러한 것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듦을 공유하는 것조차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쓸모없는 수놈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시 가부장적인 시대적 특성인지 아니면 남자가 가장으로서 갖고 있는 책임감 때문인지 혹은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남자는 자식과 부인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설령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을 감수하는 경우라도 말이다.













아빠, 미국 채소를 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이콥의 고집은 작물을 심을 때도 나타난다. 제대로 된 Big Farm 농사 경험이 없는 그가 토양이 다른 미국 땅에 미국의 것이 아닌 한국의 채소를 심는 것은 뚝심보다는 무모함에 가깝다.







매년 미국으로 오는 한국인이 3만 명이나 된대. 다들 한국 음식이 그립겠지? 그럼 우리 같은 한국농장은 어떻게 될까?



 




아빠는 미국에 이주하는 한국인들이 매년 3만 명씩이나 되니 그들을 겨냥해 미국 땅에서 한국 채소를 심어야 한다고 한다. 농업용수를 확보할 때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한국인은 머리를 써야 한다.'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고집불통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제이콥이 꿈꾸는 아메리카 드림이 허황됐다는 것은 아들 데이비드의 이부자리 실수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분명 데이비드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봤는데 눈을 뜨면 침대라는 것이다.



이에 모니카는 일을 보기 전에 '이거 꿈이야?'를 외쳐보고 시도해 보라고 한다.



이건 허황된 꿈이야.




이런 팽팽한 긴장감을 1차적으로 녹인 것은 한국에서 미국로 건너온 모니카의 엄마 순자의 등장이다. 아이를 봐줄 베이비 시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그녀의 등장은 베이비시터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순자는 제이콥과 달리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고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라는 미나리를 근처의 냇가에 심는다.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에서 해왔던 방식대로 고집불통으로 일을 하던 제이콥과는 달리 순자는 자연스럽게 미국에 뿌리내린다.



보통의 미국 할머니와 다른, 그렇다고 한국 할머니의 전형이라고 볼 수 없는 순자는 데이비드에게는 불청객이다. 한국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할머니처럼 스윗하지도, 쿠키를 만들지 모른다. 게다가 보호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순자는 심장이 약한 데이비드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영화의 갈등은 역설적이게도 제이콥의 희망이었던 농작물이 전부 불타며 해소된다.

자신의 전부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걸었던 농작물이 불타게 됐을 때, 제이콥의 심정이 어땠을까.



제이콥의 고집에 지쳐 가족으로서의 마지막을 고했던 날 모니카는 불타고 있는 농작물을 누구보다 열심히 구해낸다. 그리고 제이콥의 꿈이 불타고 있음에 누구보다 슬퍼한다.






불편한 동거로 인해 티격태격했던 데이비드와 순자도 이 화재로 인해 진정한 가족이 된다. 심장이 약해 뛸 수 없는 데이비드는 자신의 잘못으로 불이 났음을 자책하는 순자를 붙잡기 위해 뛰어간다.




그들의 꿈이 한 줌의 재가 되던 날 그들은 결국 가족이 된다.





<미나리>는 미국 영화치고는 담담하게, 누군가 죽거나 하는 큰 사건 없이 끝이 난다.



혹자는 너무 담담해 지루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담담한 영화도 강력한 힘과 울림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느낀 바 있다.

우리네 삶처럼 담담하고 소소했기에 그리고 한 번씩 오는 위기를 겪었기에 이들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이야기처럼 공감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는 미나리처럼



쓸모없는 수놈은 폐기되지 않는다.

그 수놈에게 가족이 있다면 가족으로 인해 구원받게 될 것이고, 가족으로 인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는 미나리처럼 우리가 어디서 뿌리를 내리든 가족이 함께한다면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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