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떼 시절의 선생님
하기 싫어요
또 시작이다.
속에선 천불이 나지만 좋은 말로 잘 달래고 구슬려본다.
조금만 더 하면 돼~ 이거 하고 빨리 가자. 응?
하기 싫어요. 집에 갈래요. 저 언제 끝나요. 몰라요. 안 할래요. 재미없어요.
그 밖의 TMI.
날마다 하는 실랑이지만 할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달래는 것도 한두 번, 달랠수록 응석만 늘어간다.
일 년이 됐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끊임없이 인내하는 것 or 단호하게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직 내공이 부족한 나는 한두 번 좋은 말로 안 되는 아이에겐 꼭 냉정하게 선을 긋고야 만다.
시무룩해하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가도 다음번에도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할 때마다 이제는 하얗게 재가 되어 해탈의 경지를 넘어 무의 영역으로 가는 지경까지 되어버렸다.
이런 실랑이가 버거워서 얘는 대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뾰족뾰족한 마음이 생기다가도 추억 속의 그 얼굴이 떠오르면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슬러본다.
추억 속의 그 얼굴.
그 얼굴은 바로 초등학교 4,5, 6학년 때 다녔던 보습학원 선생님이다.
선생님을 하고 제일 많이 떠올랐던 얼굴이 그분이었고 'TV는 사랑을 싣고'에 신청해 인사 한번 드리고 싶은 분도 그분이다. (물론 다른 분들도 더 계시지만)
찾을 정도로 애틋한 사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면 왜?
이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선생님의 얼굴이 유달리 떠오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이야 유치원 졸업 직전 혹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과목별 다양한 단과 학원을 보내지만 그 당시엔 여러 과목을 같이 가르쳐주는 보습학원을 보통 3~4학년 때부터 다녔다. (적어도 우리 동네는 그랬다.)
내가 다녔던 보습학원은 한 반 당 한 선생님이 국어, 수학, 과학, 사회 네 과목 전부를 담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선생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다. 네 과목 전부를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쳤던 분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대장부였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폭력으로 휘어잡지도 않았다. 무덤덤한 성격이었지만 꽤 섬세한 부분도 있어서 아이들의 개별적인 특성에 맞게 혼을 내거나 달래거나 할 줄 아는 무림의 고수였다.
유치원생의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아마 장성한 청년의 엄마로 중년을 편안하게 보내고 계시지 않을는지.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현재, 선생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선생님이 너무 잘 가르쳐주셔서 만나 뵙고 싶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선생님을 뵙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나의 나이 아마 12세.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좋아하고 카드 캡터 체리를 좋아했던 소녀.
그리고 꽤나 발랄했던 초등학생.
학교에서나 다른 학원에서는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지만
그 선생님께는 조금 달랐다.
분명히 선생님은 무서운 분이었는데 자꾸만 응석을 부리고 떼를 썼다.
하기 싫어요. 집에 갈래요. 저 언제 끝나요. 몰라요. 안 할래요. 재미없어요.
그 밖의 TMI.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서 떼를 쓰는 아이와 같은 떼를 쓰는 아이였다랄까.
처음에는 이 아이가 나한테 떼를 쓰는 것이 내가 만만해서 그런 건가 생각했는데 잠깐 과거 회상을 해보니 나도 그 선생님이 만만해서 응석을 부렸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만큼 조심하고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그 당시엔 그러한 것을 잘 몰랐다.
사실 20대까지도 그런 당연한 섭리를 잘 모르고 살았다.
처음엔 학원 다니는 게 좋았다.
선생님도 잘 가르쳐주시고 제일 친한 친구도 같은 반이었고.
하지만 오래 다닌 만큼, 환경과 선생님이 익숙해진 만큼, 지겨움도 커져갔다.
하기 싫어요. 집에 갈래요. 저 언제 끝나요. 몰라요. 안 할래요. 재미없어요.
그 밖의 TMI.
공부가 하기가 싫었다.
하기 싫으면 혼자만 조용히 안 하면 됐는데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선생님을 졸라댔다.
나자식. 대체 왜 그랬니???
요즘엔 아이의 수업 태도나 학업 성취 정도를 문자나 전화로 학부모님께 직접 공유하지만 그 당시엔 핸드폰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월말만 되면 아이의 학업성취도를 수기로 작성해 아이의 편에 보내곤 했다.
어느 달의 말일.
그날도 선생님은 우리에게 편지를 나눠주셨다. 비장한 표정으로.
평소와 다른 선생님의 비장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원래는 곧장 엄마 손에 쥐어 드렸는데 그날따라 느낌이 이상해 망설여졌다.
인생 12년 차. 세포들이 말했다. 그 편지를 열어보라고.
혼자 하기엔 죄책감이 들었는지 친구를 공범으로 만들었다.
착하고 순진했던 내 친구는 (지금도 착하다) 사탄의 속삭임을 뿌리치지 못했고 친구의 종용에 못 이겨 무단 열람이라는 만행 저지르게 된다.
편지엔 별 내용이 없었다.
그동안엔 말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었다.
그런데 웬걸.
편지엔 장문의 글이 쓰여있었다.
요즘 수업 시간마다 놀자고 하는 둥, 하기 싫다고 하는 둥 학습 태도의 문제가 보여... 집에서 지도 편달을(생략)
내가 그간 수업시간에 해왔던 진상이 편지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우리 바꿔볼까?
친구에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됐어!!! 나 집에 간다 안녕.
편지를 읽고 난 뒤의 느낌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선생님이 오죽 힘들었으면 이런 걸 편지에 썼을까였고, 다른 하나는 엄마한테 걸렸으면 나는 뒤졌다였다.
현생에 지치셨던 엄마는 다행히 그 편지의 행방을 찾지 않으셨고, 인생 12년 차는 엄마의 사인을 위조해 무사히 선생님께 제출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수업 시간의 내 모습은 살아있는 돌이었다.
일시적으로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어떤 곳을 가던 마찬가지였다.
이이이이. 저 집에 갈래요.
과거 회상을 하다 아이의 응석에 정신이 돌아왔다.
올 때마다 떼를 쓰는 너란 녀석. 한숨이 나온다.
아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 시절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선생님, 그 시절의 저를 대체 어떻게 감당하신 겁니까.
저 언제 집에 가요?
응석이 시작될 때마다 속으로 되뇌곤 한다.
그래.
이게 다 내 업보다.
선생님... 잘 살고 계시지요? 보고 싶습니다.
그때 제가 왜 그랬을까요.
연필 색깔 예쁘다.
선생님 가지셔도 돼요.
어? 네가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똑같은 거 집에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