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이리의 형제> 서평 글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I am a brother to dragons, and a companion to owls.
구약 성경 <욥기> 30장 29절
하늘 아래 유난히 사랑스러운 도시. 하유랑시.
어느 날, 하유랑시에 전에 없던 존재들이 나타났다.
맹수의 눈을 지닌 '그들'은 늘 어딘가에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존재들.
'그들'이 하유랑시에 나타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들 중 가장 약한 개체인 '노단'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다.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온 노단에게 이곳 하유랑시는 마지막 희망과 같은 곳.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터를 잡고 인간들의 생명을 흡수해 자신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
이곳이 주인이 되기 위해 그가 처음 한 일은 '연준'이란 인간 소년을 부하로 삼는 것.
자신을 위해 일할 첫 부하로 막강한 힘을 가진 인간이 아닌 자신처럼 연약한 소년을 첫 부하로 삼은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연민 때문이었을까. 동정 때문이었을까.
이들의 관계가 영원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 순간 떠돌이 '유랑'이 나타나 그들의 관계를 흔들어 놓게 된다.
영원을 약속했던 30일의 마지막 날.
노단과 연준은 예상치 못한 운명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되는데...
처음 서평단에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서평 쓰기에 자신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게다가 상대는(?) 어린이 도서니 글자 수도 크고 행간도 넓어서 늘 해왔던 대로만 하면 글쓰기를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웬걸,
속도감 있는 문체에 그렇지 못한 장면들로 인해 롤리 폴리 5개를 먹는 동안에도 글자 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못했다.
책을 읽을 땐 별생각이 없었다.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읽어도 좋을 만큼 커다랗고 빳빳한 책의 질감이 마음에 들었다.
1시간~2시간 만에 읽고 넘길 수 있는 시원시원한 전개도 좋았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이 책이 보통의 어린이 판타지 클리셰를 깨는 작품이었다는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꽤 많은 이들이 어린이 책은 유치하고 별 도움도 안 된다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을 대하는 일을 하고 그들이 읽는 책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느낀 어린이 책의 매력은 읽는 동안 느껴지는 울림이 웬만한 베스트셀러보다 더 크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행처럼 지나가는 에세이 류보다 짜임새와 개연성까지 있어 속세에서 더럽혀진 내 눈을 정화할 수 있다는 의외의 힐링 포인트까지 있다.
어린이 도서가 주는 매력은 닳고 닳은 성인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원초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동안 사회생활하느라,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잊어버렸던 꿈과 희망, 사람으로서의 도리, 주위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예의. 그리고 어린 시절 꿈꿔온 대로 살아오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
그것이 어린이 책이 갖고 있는 큰 무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어린이 도서들은 교육적 메시지를 줘야 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내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예로 들어 주인공이 누구이니, 그의 편인 누구는 위기 상황에서 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각성하고 결국 악당을 물리친 다음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정의를 수호하게 된다. 는 식의 뻔한 흐름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이리의 형제들>에서는 주인공 옆에 있던 주요 캐릭터가 죽어버린다.
어린이 판타지 클리셰를 깨는 작품.
이것이 내가 <이리의 형제>가 예측할 수 없는 어린이 판타지 소설이라 정의 내린 이유다.
악에 동참하는 이들, 희생당하는 이들, 알고도 침묵을 지키는 이들, 맞서 싸우는 이들...
주요 캐릭터가 급작스럽게 죽어버리자 현재까지 나온 캐릭터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예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뒷면의 소개글이 인상적이었다.
인간과 괴물,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소설의 큰 특징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그저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 해 몸부림치는 것일 뿐인데.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한지, 선 긋기가 참 어려웠다.
Q. 순진한 인간을 꼬드긴 노단은 악당일까?
그건 아니다.
그도 그저 자신의 무리에서 더 이상 밀려나고 싶지 않아 하는 한 마리의 불쌍한 맹수일 뿐이다. 그는 본능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늘려 줄 인간을 구했을 뿐이다.
Q. 유랑에게 동조한 연준에게 잘못이 있을까.
이것 또한 아니다.
그는 진실을 몰랐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유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인간처럼 살고 싶어 자신의 조직과 생명을 포기한 존재일 뿐이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자신의 행동과 말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신중하지 못했던 점이다.
내가 만약 노단이라면, 내가 만약 연준과 유랑이라면...
그들의 행동에 대해 뭐라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들의 행동을 쉽게 비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마무리를 보여준 1편이었기에, 앞으로의 전개 또한 알 수 없었다.
그저 맨 첫 장에 나온 성경 구절로 더듬더듬 추측을 할 뿐이었다.
성경을 잘 몰라 처음엔 위의 구절을 해석할 수 없었는데,
종교인인 주위 분들에 물어보니 '욥'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 을 말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욥기>라 한다.
내가 이해한 욥기 30장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욥기> 30장 내용 29절
옛날에 하나님이 아끼던 ‘욥’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궁핍한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렸고, 아픔을 겪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했다.
그의 가족과 그의 이웃은 그런 욥을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고난과 시련)이 닥치게 된다.
뼈를 깎는 고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그를 괴롭게 했다.
그의 아픔이 그의 잘못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그를 조롱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나는 이리의 형제, 타조의 벗’ 이란 뜻은 결국 자신의 주위엔 이리 와 타조 같은 들짐승만 있을 뿐 자신을 돕거나 구원해 줄 존재가 아무것도 없다는 상황을 쓸쓸하고 자조적으로 빗대어 말한 것이다.
하지만 욥은 이 시련과 고난이 결국 예수님이 겪은 고난처럼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이 겪어야 할 숙명 정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이를테면 영웅 서사에서 보이는 통과 의례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내용은 <이리의 형제>라는 제목처럼 노단이 영웅(하유랑시의 주인)이 되기까지 홀로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게 될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자, 그에게 고난과 시련을 줄 대상이라는 것이 결국엔 그와 같은 동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는 약해요. 인간들보다 강하지만 우리 사이에서는 제일 약하죠. 저를 제대로 된 일원으로 취급해 주지도 않잖아요? (p.20)
'그들'은 약한 개체를 끼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약한 개체를 쫓아내거나 처단한다.
'그들' 은 웬만해선 그들의 존재를 인간들에게 노출하려 하지 않는다. 종족의 노출은 곧 종족의 파멸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엔 그들의 실세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약한 개체인 노단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뼈를 깎는 고통)으로 인해 그들의 정체가 인간들에게 노출될 위험에 빠지게 됐고, 2편부터는 그들의 종족이 일의 원흉인 노단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상황으로 극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 노단의 아빠(하나님)는 노단이 어떤 원망을 하더라도 도와주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게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것 같다.
노단이 죽더라도 말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타조의 역할을 할 캐릭터인데 해석에 따라서 기존에 등장한 캐릭터 혹은 새로운 캐릭터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타조는 이리와 다른 종이다. 이리와 타조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 노선을 갖고 있는 두 존재가 결국엔 마음을 맞춰 동맹을 맺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리의 피를 갖고 있지만 그들과 다른 종족인 인간처럼 살고 있는 '유랑'이 노단이 현재로선 유력한 타조라 생각한다.
물론 이건 나의 궁예다.
서평 글을 쓸 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 헛스윙까지 한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쭈구렁 방탱이이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한 노단의 미래처럼, 나의 서평 글도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과연 노단과 나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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