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보고.
언뜻 들어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제목.
처음엔 제목이 선뜻 와닿지 않았다.
운이 좋아 영화 시사회를 가게 됐을 때도
왜 그 영화 있잖아.
박찬욱 감독이 칸에서 상 탄 그 영화.
뭐였더라. 헤어진...
아무튼 오늘 그거 보러 가는데...
입에 붙지 않았던 그 이름이.
영화를 다 본 현재.
입 안에 선명히 남아버렸다.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을 하다.
영화 전체를 관통한 제목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헤어질 결심'에 대한 진짜 의미를 알아버린 순간.
마음이 '턱' 하고 내려앉았다.
형사와 용의자의 러브 스토리.
어쩌면 뻔한 이야기.
<헤어질 결심>은 그 뻔한 이야기마저 숨 막히게 치명적으로 그려냈다.
<화양연화>를 오마주 한 듯한 화면 구도는 그처럼 강렬한 톤을 쓰지 않고도 그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설명해준다.
<화양연화>가 붉음으로 사랑을 표현했다면, <헤어질 결심>은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없는 색으로 그들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초록색. 혹은 파란색.
묘한 그들의 관계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제 색을 바꾼다.
형사가 살인 용의자를, 용의자가 형사를.
서로를 관음 하고, 서로를 기록하다,
마. 침. 내.
서로에게 미완이 된다.
박찬욱 감독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캐릭터, 미장센, 하드코어.
그의 영화엔 늘 진취적이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친절한 금자 씨>의 금자, <박쥐>의 태주, <아가씨>의 히데코와 숙희.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솔직해질수록 그의 영화는 빛을 발한다.
금자 씨는 살인, 태주는 변신, 히데코와 숙희는 파괴란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에 도달했다면
서래(탕웨이 분)는 결심으로 자신의 목적에 도달한다.
두 배우는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했지만
박찬욱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마음 놓고 둘의 케미를 즐길 수 없다.
누구의 뚝배기가 언제 깨질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상대는 박찬욱이니까.
그런 지점에 있어서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와 비교해 박찬욱 특유의 색깔이 덜 드러난 작품이다.
드러내지 못한 게 아니라, 드러내지 않은 거라 보는 게 맞을 거다.
영화를 보는 동안엔 이 영화가 스릴러라고 생각했다.
미끼를 물면 안 돼. 상대는 박찬욱이야.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가 로맨스 영화임을 인정했다.
분명 스릴러인데 심리적으로 간질간질했다.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는데, 자꾸만 그 끈을 놓고만 싶었다.
박찬욱은 '로맨스릴러'라는 장르를 이용해
'박찬욱 표 심리 로맨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두 명의 명감독이 있었다.
한 명은 관객이 자신의 연출한 의도를 이해해주길 바랐고
한 명은 자신의 필름 안에서 관객이 마음껏 헤엄치길 바랐다.
박찬욱은 관객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공들여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어디로 도망갈 수 없게 그곳에 붙잡아 놓았을 뿐이다.
한동안은 이 영화와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 이 영화는 세세한 내용을 스포를 당하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다. 관객 모두 극장에서 오롯이 이들의 이야기를 즐기며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아이폰 쓰시는 분들 영화 보실 땐 핸드폰 꺼두시길.
#박찬욱 #헤어질 결심 #탕웨이 #박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