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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Jun 28. 2022

<노 본스(NO BONES)>폭력이 일상이 될 때

-창비 <노 본스> 서평 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The Troubles를 배경으로 한 소설 '노 본스(no bones)'.




 The troubles는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과거 한 나라였던 아일랜드에 돌아가고자 하는 가톨릭 세력과 영국령을 유지하자는 개신교 세력이 충돌한 것을 말한다.
























 노 본스를 읽기 전에는  영국과의 합병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있다고만 들었을 뿐 이렇게 몇십 년 동안 한 지역에서 같은 동포끼리 갈등과 반목을 했던 역사가 있는지 잘 몰랐다. 




 처음 노 본스 서평단 모집 공고가 떴을 때, 그와 관련한 해시태그를 보고 지원을 망설였다.




#여성서사 #혐오 #폭력 #전쟁 




이 해시태그만으로 어떤 이야기일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사는 게 전쟁인데 굳이 내 시간을 들여 전쟁, 그것도 여성 서사를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전쟁이 발발하면 1차적으로 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어린이와 여자와 노인들이다.) 



 하지만 이 해시태그를 보고 있자니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을 사회적 약자들이 떠올랐다.





"내가 들여다보는 건 분명 글자인데 행간에는 십자포화가 쏟아진다."
-구병모(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작가님 추천사대로다. 

 이 책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은 '전쟁이란 단어가 포탄이 되어 나에게 쏟아진다.' 일 것이다.



 




 대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잠그고 빗장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동기 없는 범죄 가운데 또 하나가 일어났을 뿐. (p. 41)





 멀쩡한 청년이 길에서 칼을 맞아 죽어도, 군인들이 선량한 노인을 폭행해 죽여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이 두려워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 한, 두 명 죽는 것쯤은 그들에겐 으레 지나가는 일상 중 하나일 뿐이다. 



 폭력은 사람들을 마비시켰다.







 "우리는 시작이 조금 늦었지만 그렇다고 나를 실망시키진 않겠지. 내가 시킨 대로 정확히 해야 해. 얌전히 앉아 말 잘 듣고 야무지고 재빠르게 하는 거야. 모두 평화에 대한 시를 하나씩 써야 해."(p.46)






 책의 중심인물인 어밀리아는 북아일랜드 밸파스트 아도인에 살고 있는 8살 소녀다. 어밀리아는 낯선 군인들에게 서스름 없이 자신의 보물을 보여줄 만큼 천진난만한 소녀이다. 


 하지만 전쟁은 그녀를 더 이상 순진한 소녀로 놔두지 않았다.

 아홉 살이 되던 해, 어밀리아는 폭력적인 분위기의 학교에서 평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평화에 대한 시를 써 내려가길 강요당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어밀리아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평화를 반대한다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무 할 말이 없었을 뿐. 평화에 대해 아는 게 뭐지?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어밀리아가 아는 사람 누구도 평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p. 51)



 폭력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듯이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평화'는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단어다. 





 엄마의 싸움 규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두 가지가 있다. 이런 식이다.

규칙 1 : (ㄱ) 싸움을 걸지 마라. (ㄴ) 누가 먼저 싸움을 걸면 맹렬히 달려들어라. 그래야 이기든 지든 위신을 지킬 수 있으니. ...(중략)...(o) '이놈은 내가 죽인다'라고 생각하고 남은 평생 더 불쾌할 일은 딱 이거 하나뿐이라는 듯 죽어라 매달린다. 

...(중략)...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지만 규칙에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p.116)




 그녀에게 안식처가 돼야 할 집마저 그녀에게는 전쟁터 같았다. 결국 그녀는 열두 살이 되던 해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거식증을 앓게 된다.







 두 사람(어밀리아의 오빠 믹과 그의 부인 미나)은 동생(어밀리아)을 덮쳐 쓰러뜨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고 숨길을 일부 막고 동생의 몸 안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쑤셔 넣기로 텔레파시라는 해묵을 방법을 이용해 합의를 보았다. 이 일이 강간이라든가 그런 험악한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는데 자기들 논리로는 딱히 비사교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장난스러운 행동일 뿐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p.175)




책에서는 전쟁이 평범했던 한 마을을, 한 가정을, 한 소녀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짓밟는지 보여주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기분이 나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전쟁은 멋있고 위대하지 않았고 끔찍하고 역겨웠다.




 우리나라 또한 6.25 전쟁 중 이유 없이 약자라는 이유로, 적에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휴전 이후에도 거짓된 프레임을 뒤집어 씌어 소수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약자들을 희생시켰던 역사가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그저 과거의 일만이 아닌 현재.




 거대한 폭력 앞에 놓였던 개인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어딘가에선 어밀리아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이 숨만 쉬고 헐떡이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성별과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자신과 종교가 다르다고 그것을 '적'이라 단언하는 세상. 

 평화롭지 않은 시기에 평화를 강요하는 세상.

 내 이웃의 죽음에 둔감해진 세상.

 타인을 의심하고 혐오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세상.




 이 소설 속 이야기가 비단 20세기 후반 북아일랜드에서만 벌어진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과거의 우리나라가, 현재의 우리가 과연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운지 생각해 보게 된 소설이었다.











* 해당 도서는 창비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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